언어 교사라고 언어 공부 잘하는 것은 아니었나 봄

이론과 실전의 차이

by 굶찮니

한시적으로 백수가 됐다.

한동안 문을 겁나게 두드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여태 두세 군데를 두드렸고, 한 군데는 안 된다고 했다.

이 한시적인 백수가 영구적이 될까 봐 참 불안하기는 하지만 일을 시작해도 문제다. 실업급여를 신청했는데, 강의를 할 때보다 더 많이 나오는 경우가 생겨 내 메인 직업에 대한 회의가 느껴진다. 한국어 교원은 역시 돈 버는 직업이 결코 아니다. 얼마 전에 이 업계로 뛰어들려는 먼 학번 후배를 알게 되어 마주했는데, 술자리 내내 인터스텔라 책장 씬만 얘기했던 것 같다. 이 얘기는 기회되면 더 자세히 다루련다.


한시적인 백수는, 달리 말해 불안해하면서 노는 것이다.

지금 이 나이가 되니 노는 것도 영 시원치 않게 논다. 예전처럼 게임에 목숨걸고 인생을 투자하지도 못 한다. MMORPG가 제2의 인생인냥 파밍과 레벨업에 목숨을 걸었는데, 지금은 그런 인생을 사는 이들이 측은하게 느껴진다. FPS도 제법 자주 했었지만, 지금은 보는 것만으로도 피곤해진다. 롤? 열 판이면 열 판 다 수준 이하의 욕지거리를 보기 싫어서 채팅을 끄고 하면, 그냥 AI봇전하는 느낌과 별반 다르지 않고, 메타도 너무 빨리 바뀌어서 관둔지가 또 몇 년 되었다.

그렇다고 술을 옴팡지게 먹거나 클럽을 가거나 하는 것은 애초에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나마 술을 즐겼던 호시절도 이십 대 초중반이었지, 지금은 간이 허락을 안 한다. 간에 이어서 이제는 뱃살조차 이만하면 마이 뭇따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한다.


그러기에 나의 베스트 프렌드 중 하나가 침대가 되었다. 학창시절 늘상 불안하게 잠에 들었던 것이 한 맺힌 것일까, 이 육중한 몸뚱아리는 틈만 나면 뜨뜻하고 아늑한 이불 속으로 파고드는 것이다. 게으름의 수호신이 천고마비 계절의 시작부터 내 몸을 짓누르고 있다. 장점이라고는 밖에서 교통사고 날리가 없다는 정도가 될 것이다.


앞서 지원했던 여러 곳 중에서 몇 군데는 더 퇴짜 맞을 것 같아서 생각해 보았다. 사실 남들이 보면 나는 꽤나 여러 언어를 하는 재미있는 놈이다. 하지만 그것도 제대로 공부를 한 적이 거의 없다. '생존 언어'의 한계가 그렇다. 어디가서 굶어죽지는 않겠지만, 어딜 가도 일할 수 있는 요건은 안 된다.


이력서를 쓰면서 느꼈다. 명확한 자격증을 서른이 넘도록 한 개도 안 땄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당장에 원어민과 붙혀 놓으면 얼추 대화는 해도, 이게 업무로 들어가면 또 모르는 일이고, 이 기관들은 일을 시키고 싶은 것인데 차라리 서류에 몇 급, 점수 몇 점 써 있는 사람을 쓰지 나같이 애매하게 '대화 가능' 정도로 쓴 인간은 나같아도 안 뽑을 것 같았다. 왜 이 게으름의 신은 취업으로서 기본이 되는 과정마저 저지할 정도로 이 육신을 침대로만 이끌었던 것일까.


오늘 어떤 철부지 학생이 어른이 되는 것이 너무 어렵다는 취지로 채팅을 해 왔다. 평소에 철없이 놀기 좋아하는 한량 선생님인데 오늘 뭔가 단단히 현타가 왔는지 시리어스하길래 유년시절에 대한 추억을 얘기하다가 과거로 돌아가면 언제로 가고 싶냐는 질문을 주고 받았다. 학생은 고등학생 시절, 나는 대학교 시절이었다. 대학교 때가 제일 재미있고 버라이어티했지만, 사실 그 이십 대 초중반으로 돌아간다면 멱살잡고 뭐라도 공부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특히나 대학원은 가지 말라고, 연애는 어차피 2년도 못 가서 헤어질 테니 그 시간에 공부나 쳐 하라고.


놀기도 뭐해서 며칠 전부터 7년 전쯤에 사 놓은 일어 책부터 끄적끄적 보고 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전혀 성장하지 않았다. 나는 정말 시발이지 일어의 장단음이 너무 싫다. 한자 읽는 방법을 교묘하게 두 개씩 포개어 맞춰보라고 하는데, 나는 내가 지금까지 봤던 일어 콘텐츠의 문장들을 곱씹어가며 습관에 의존한 문제 풀이를 하게 된다. 그리고 틀린 문제는 또 틀리고 만다.


나는 학생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몇 가지 있다. 그런데 막상 몇 년만에 책상 머리에서 '언어'를 공부하다 보니, 세상 위선자가 따로 없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첫째, 언어는 즐기면서 해야 한다. -> 즐긴 것만 기억나고 더 하고 싶으면 어차피 공부해야 됌

학습동기에 관한 언급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재미없으면 공부가 아니라 고문이 된다. 사실 선생으로서 가장 노답인 경우가 학생 스스로 공부할 의지가 없을 때이다. 역버프로 나도 가르치는 거 때려치고 싶게 되면 더할 나위 없이 망겜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학생이 늘상 즐겜모드로만 쉬운 것만 해도 2년, 3년 공부해 봤자 더 늘지는 않는다. 나도 태국에서 2년 반동안 태국어가 늘었던 기간은 급속도로 늘었던 몇 구간 빼고는 늘상 같았다. 필요성을 못 느끼면 당연히 어려운 것은 뒷전이다. 나는 아직도 태국어 문서를 보면 현기증이 몰려온다.


둘째, 단어 공부는 선생님이 도와주는 데에 한계가 있으니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 막상 내가 해보니 노가다 그 자체올시다.


단어 공부에는 왕도가 없는 것 같지만 학생들에게는 절대 말하지 않는다. 노가다라고 말하는 순간 학습동기가 마리아나 해구 너머까지 떨어질 게 분명하니까. 대신 문장과 같이 외워라, 시간이 나면 비슷하게 생긴 단어와 연결해 연습해보고 어원도 생각해보면 다른 단어도 같이 습득할 수 있다고 영업용 멘트를 날리지만 뭐, 학생들이 나보다 공부 스킬은 더 좋을 테니 이조차도 말하면서 부끄럽기는 하다. 나도 솔직히 모르겠다. 이러한 스킬들을 총동원해서 매일, 꾸준히, 양조절하면서 해나가는 노가다가 단어 공부인데 솔직히 말해 뭐 같다. 나는 아이들을 공부하게끔 현혹시키는 말을 하면서도 늘 아이들이 대단하다는 경외감은 잃지 않았는데, 그런 내 자신의 양심에 기특함을 느낀다.


언어 습득의 플러스 요인에 대한 연구는 뭐, 지금도 계속해서 나오고는 있고, 특히나 현장에서는 시시각각 효과적인 방법(이었던 것, 아니면 을 것 같은 것)이 실험되고 적용되기도 하지만, 내가 배우는 입장에서는 전부 다 뭣같고 힘든 것이다. 앞으로 한동안은 고뇌의 시간으로 인생의 한 텀을 준비기간으로 두면서 공부도 하고, 고뇌도 해봐야겠다. 그리고 깊이 반성한다. 유학이든 뭐든 외국어 공부하는 학생들은 모두 대단한 것이다.

그동안 한국어 겁나 쉽다고 뻥쳐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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