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것도 좋은 거 많을 텐데
*이번 썰은 필자가 수업, 썰 등을 듣고 배우며 알게 된 것을 정리한 것입니다. 근거는 있지만 출처를 일일이 나열할 수 없으므로 무조건적으로 정설이라고 믿지 말길 바랍니다. 다만, 한국어교육을 준비하는 분들이라면 두 번 읽고 뒤로 가기 누르시길 바라며, 전공 선택에 있어서도 뒤로 가기를 심각하게 고민하길 바랍니다.
"후우, 니들은 한국어교육 하지 마라."
"왜요? 뿌우 'ㅅ' "
"씻푸얼! 하지 말라면 하지 마! 이 캨쉑히야!"
요즘 다시 취업 준비를 하면서 자기소개서를 쓰다가 키보드에 떨어진 눈물을 보고 "아, 뭐지."하면서 아련히 스쳐가는 옛 대학 시절을 추억하다 보니 내가 왜 이 빌어먹을 업계에 들어왔는지 그 첫시작이 떠올랐다. 쓰고 보니 '빌어먹을'이라는 표현이 참으로 격하고 상스럽지만 사실 내 처지가 그러하다. 비하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선택한 길이니 '이악물고 악으로 깡으로 버티기'에는 너무 힘들어용. 아무튼 그렇다.
사실 국문과 출신의 인재들이 그러하다. '무엇이라도 할 수 있지만,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전공이다. 나는 졸업 후 조교로 일하며 취업 조사를 분기마다 하게 되어 전화를 돌리곤 했는데, 주로 동기나 후배들이라 근황도 물어보면서 뭐 먹고 사는지 물어볼 기회가 있었다. 그들은 정말 '아무거나'하고 있었다. 방송작가라는 하드코어한 수라의 길을 간 친구들은 생각보다 별로 없었고, 마케팅이나 영업 쪽이 많았고, 출판사가 당시에는 많았다. 출판사는 선배들이 익히들 많이 가는 쪽이긴 했는데 좋은 소리는 많이 못 들어봤다. 박봉에 일은 오질나게 많다는 것이 공통 의견이었다. 뭐, 이력서를 100군데 찌르고 백 한 번째에 취업에 성공한 동기 하나는 '이럴 거면 경영이나 이과를 가는 게 나을 뻔했어.'라고 과사무실에서 토로한 적도 있다. 이게 내가 요즘 입버릇처럼 하는 대사가 될 줄은 몰랐다. 지금은 대세가 된 웹소설 계로 일찍이 성공하여 회사에서 한 가닥하는 작가나 편집자가 된 친구들은 지금도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 직업 정하기로는 얼리어답터가 된 셈이다.
나도 박봉이지만 책 냄새 좀 맡아보겠다고 워크넷 희망 직종에 출판사를 그득하게 집어 넣어 놓고 기다렸던 적이 있었다. 사실 그때는 군입대하는 그 묘한 기분이 슬쩍이 올라왔다. 시궁창인 걸 알면서도 뛰어들어야 하는 그 께름칙한 기분.
그러다가 나는 학교 교육장학금(꽁돈)을 소진해야 한다는 이유로 토익을 들었다가, 출석이 개판이 나서, 다른 루트로 소진하려던 찰나에 '한국어교원 양성과정'을 신청해 듣게 된다.
토익을 열심히 다녔어야 했다. 샹.
아무튼 120시간의 과정을 여름방학 한 달간 듣게 되었는데, 이게 듣고 나서 따지고 보니 생각보다 살인적인 스케줄이었다. 주 5회 매일 수업이 있었고, 수준은 대학 전공 수업인데 단기 주입 때려박기 느낌이었다. 교수님마다 수업 편차가 좀 있어서 우리는 일관적이 않은 그 난이도를 버텨가며 들었다. 힘든 것도 힘든 것이지만, 그것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나는 그 대부분의 수업에 재미를 느껴버린 것이었다.
사실 이때가 가장 돌아가고 싶은 세이브 포인트 지점 1이다.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동질감을 조성하기를 좋아하는데, 괴로운 고난이 연속될수록 '동기'라는 것을 만들어 같이 버티고 동병상련하며 나아간다. 그렇다. 나도 양성과정 동기들과 수많은 알코올을 쏟아부으며 기왕 왔으니 시험까지 봐 보자라고 다짐하고 말았다.
지금은 모르겠으나, 당시 한국어교원 3급 시험은 악명이 높았다. 필기도 빡세고, 면접은 합격률은 40퍼도 채 안 되었는데 그걸 합격해버리고 나니 이걸로 먹고 살아도 되겠다 싶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를 때였다. 실상 국내 대학교 부속 언어교육원 소위 '어학당'에서는 석사 2급만 뽑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몰랐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3급인데, 시험이 개빡세다 보니 뭔가 될 줄만 알았던 것이다. 후에 듣기로는 해외에서 교포로 지내는 분들이 현지에서 한국어를 종종 가르치고는 하는데 정식적으로 자격이 없는 것이 여러 가지로 문제의 소지가 될 것 같아 부랴부랴 만든 제도가 한국어교원 자격이고 3급 자격이라는 것이었다. 은퇴하고 하기 좋은 것이 또 한국어 가르치는 것이라 노인분들의 수요가 컸다.
어쩐지, 시험장에 할머니, 할아버지 투성이었다.
뻥 안 치고, 나는 2차 면접 시험 때 1차 합격한 동기 네 명과 양복입고 기다리고 있는데, 진행 요원인 줄 알고 시험장 물어오는 분들이 종종 있었다. 아뇨, 샹, 아니에요.
그러다가 마의 손길이 뻗쳐 내 머리를 어루만졌다. 교수님들의 대학원 러브콜이었다.
뭐, 비유하자면 행정보급관이 전문하사 말뚝박기를 권유하는 것과 느낌적으로는 비슷하다.
그렇게 나는 대학생 때 저지른 업보를 청산하기 위해 대학원에 가게 된다.
-2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