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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굶찮니 Nov 28. 2022

가챠(ガチャ)인생의 연속인 거야

누군가는 뽑아야 하고, 나는 뽑혀야만 하고

아쉽게도 도박 얘기는 아니다. 나는 도박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았다. 

하지만 이것도 틀린 얘기인 것이 도박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도박의 '상품'으로써 사회적인 역할이 주어진 채 30여 년을 살아온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대학이든 기업이든 누군가는 뽑아야 하고, 그 인간이 에이스일지 빌런일지는 두고 봐야 하는 것이니까.


이러한 시선이라면 나같은 취준생은 부글부글 속이 끓어오를 수밖에 없다. 열심히 뽑히려고 준비하면서도 뽑혀야만 살아남는 인생이라는 것을 아는데도 왜 안 뽑냐고 성을 내곤 한다. 우리는 스스로 SSR+ 별 6~7개의 레어카드라고 주장하지만 누군가의 입장에서는 그저 갈아야만하는 수많은 R카드 중에 하나라고 자꾸 그러니까. 


아마 직접 정크타임에 운빨똥망 가챠 휴대폰 게임을 돌리면서 왜 7성 안 뜨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더 빡치겠지만. 그렇다. 사실 회사에 지원해서 떨어질 때 깊은 회의가 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왜 그럴까. 사실 그 누구보다도 본인이 애매한 SR카드이거나 아니면 진짜로 R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안 뽑힌 거라고 스스로 납득하고 있기 때문에 화는 화대로, 집에서 우울은 우울대로 꾸역꾸역 먹고 있는 것이다. 본인의 가치를 올리면 간단하게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진짜로 스펙을 올려도 그걸 못 알아봐주는 경우도 간혹 있으니까. 아니면 자체적으로 ++, +++ 등급을 만들어내어 더 높은 가치를 요구하니까.


이 운빨똥망 인생의 시작은 어디였을까. 아마 공식적으로는 초등학교 반장선거가 아닐까 싶다. 나와 비슷한 연령의 수많은 초댕이들의 Pick을 얻어야만 한다. 그런데 이 '뽑힘'은 개개인 차가 있다. 나는 솔직히 조금 부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냥 일 잘할 것 같으니까 뽑혔다. 착할 것 같아서 뽑았다. 그것이 뽑기 기준이었다. 실제로 나는 초등학교부터 1년 단위로 수없이 많은 아수라장 학급회의와 스티커 관리, 정기적인 피자공급, 선생님과의 쇼부담당을 했다. 지금은 생각한다. 이게 반장인가 보급관인가.


당시에는 간절했던 뽑기도 있었다. 고등학교 진학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 윗세대들은 고등학교를 성적 순으로 갔다고 하는데 우리 대에 들어서는 주소지로 뺑뺑이를 돌렸더랬다. 즉, 원하는 고등학교를 가려면 그 고등학교 인근 주소지에 거주해야 하고, 실제로 주소지를 미리미리 옮겨 두는 애들도 있었다. 


중학교 때에 꽤나 허슬한 남자중학교를 거친 나로써는 새로운 세계를 갈망해 1지망에 남녀공학을 쓰고 2, 3지망을 될 리가 없는 극악의 명문학교 이름을 써 놓는 잔머리를 썼는데, 결국 1, 2, 3지망 모두 안 되고 집과도 꽤 거리가 있는 남고에 배정되어 폭망해버렸다. 더군다나 그곳은 별명이 '언덕 위의 하얀집'으로 불리우며 흡사 정신병동처럼 되어있었고, 분위기는 벽에 낙서가 없다뿐이지 영화 '크로우즈 제로'에서 나오는 고등학교의 약 5년 전 스토리쯤의 긴장감과 날 것을 간직한 학교였다. 쩡글!

인생의 가장 잔인한 뽑기의 첫 번째라면 입시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공부해야 좋은 대학교 갈 수 있다라고 믿기도 하고 설교하기도 하지만 2/3 정도는 틀려 먹었다고 본다. 열심히 공부해야 '뽑기 엔트리'에 내이름 겨우 올려 놓고 기도메타를 할 수 있는 것이지 그래 놓고 미끄러지는 경우도 수도 없다. 공교롭게도 이 글을 쓰는 얼마 전에 수능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별 사건이 많이 터진 모양이다. 이 글을 수능을 친 학생들이 볼지도 모르는 생각에 말해 두지만, 수능 잘 봐도 뽑기 인생은 끝나지 않으니 안심도, 낙심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내 사촌은 예대 쪽이었는데 3수를 해서 겨우 원하는 대학교 가서는 최근에 별안간 완전 새로운 분야로 틀어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대학에 떨어졌더라도 과몰입은 금지다. 


사실 맨탈이 깨지는 경우는, 깨져도 깨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경우는 취업 준비 시기일 것이다. 사실 이 기간은 제한도 없고, 없다가도 다시 들어가기도 한다. 한 달이 될지 일 년이 될지도 모르는 공허의 기간이고, 취업이 안 되어도 호소할 곳도 없는 리얼 월드다. 기약이 없다가도 기회가 갑자기 생기기도 하는 이상한 세계다. 


인생에 대한 자세가 지금보다 조금 더 진취적이었던 시절에는 내가 노력해서 이룩하면 가챠하는 것은 내쪽이고 내가 선택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만 고르는 것이 아니고, 사실 나는 뽑히는 입장이다. 확률을 올려야지. 하지만 지난번 어느 모 게임기업처럼 확률 공개는 안 하는 것이 국룰이다. 우리는 그 누구보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를 열심히하고, 직무 이해도를 높히면서도 그 어떤 수학자보다도 더 열심히 내가 뽑힐 확률을 하루에도 몇 번씩 계산해본다. 


호오, 인생패배자같은 발언이군요. 


여기까지 읽으면서 힐링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래도 빡세게 무언가 확률을 올리기 위해 준비해 본 사람들일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공감, 힐링을 주려고 이런 글을 '싸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어정쩡하게 "뽑아주세용 뿌우 'ㅅ'* "하는 친구들 읽으라고 쓴 글은 아니다. 이것은 병들고 찌들어 "이제 그만할까?"라고 생각하는 인간들이 읽어줬으면 좋겠다. 노력을 그렇게 했는데도 안 되는 것은 당신 탓도 있지만 그저 뽑기 확률에 안 걸린 것도 있으니 더 해보라고. 


나는 일이 없는 기간이 이따금씩 올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아직까지 뽑힐 만한 확률을 가진 인간일까. 자존심이 바닥이 치는 날도 있고, 이러다 우울이 오나 싶기도 한다. 하지만 나도 그렇고 모든 사람들이 어지간히 그놈의 '가치'는 이미 충분히 쌓았다. 이제는 본격적인 '가챠'에서 기도메타할 차례인듯 싶다. 또 이 소리조차도 개소리다 싶으면 이 글에 깊은 빡침을 느끼고 이악물고 더 하면 그만이다. 난 내가 써 놓은 글에 자가발전하듯 또 화가 나며 또 무언가를 외우고, 공부하고, 밖으로 돌아댕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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