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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굶찮니 Nov 20. 2022

유튜브에 점령당한 뇌구조

나는 모든 것을 알지만 아무것도 몰라요

"요즘에 이런 얘기들 있잖아요."


화두를 던지는 이런 말들이 단순하게 내가 직접적으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를 나눠 본 결과 이러한 것이 '화제'가 되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싶다. 위의 문장은 아래와 같이 번역이 가능하다.


"요즘에 저는 이런 유튜브 영상을 봤어요."


언택트 시대, 사실 언택트라는 말도 Nando 행님이 난도해버린 우리식의 영어라는 것을 이거 쓰면서 처음 알았다. 서로 안 보고 사는 시대에서 채팅이나 전화로 할 말도 한정되어 있을 거고, 인싸인 척하며 얘기를 해 봤자 결국은 레퍼런스 출처는 유튜브인데 애둘러서 위의 문장처럼 말하는 경우가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렇다. 내가 자주 그런다. 요컨대 '방구석 유튜버 시청자'가 되시겠다. 

이렇게 얘기하다가 누군가 '밈'같은 것을 들이밀면 오! 하면서 너도 봤냐? 라는 식의 대화가 오간다. 이것을 우리는 '알고리즘 중복현상'이라 부른다.


나보다 한술 더 뜨는 사람은 유튜브에서 본 어줍잖은 지식을 참고용이 아닌 그것 자체가 자신의 것인마냥 남을 가르치려 드는 사람들이 또 더러 보일 때가 있다. 소름이다. 당신은 내레이션이고 편집이고 아무것도 안 했잖아. 


인터넷이 한창 활성화될 때부터 이런 경우가 흔히 있었지만 요즘은 워낙에 10분, 5분, 3분 심지어 1분에 지식이나 정보를 알차게 압축시켜 잘 만든 영상이 많기 때문에 단기간에 잡지식을 쏟아붓기에 용이한 구조가 되었다. 짧은 대화라면 충분히 아는 척을 마음껏 할 수 있을 정도의 스펙을 갖출 수 있게 됐다. 무서운 세상이다. 똥간에서의 3분 정도 투자로 나는 처음 본 사람에게 전문가인 척 행세할 수 있다. 


나는 사실 이러한 방법을 잘 못 쓴다. '척하는' 것이 싫다기 보다는 참말로 머리가 나빠서 못 한다. 스르륵 보고 나서 뒤돌면 디테일이 기억이 안 난다. 


"파스타? 아, 그거 어렵지 않지."

"오, 너 파스타도 만들 줄 알아?"

"뭐, 그냥 면 삶고 소스 만들면 돼. 마늘 먼저 볶고, 아, 뭐 넣더라. 그리고... 어, 음..."

"뭐 넣어야 맛있는데."

"그 뭐냐, 뭐랑 뭐가 제일 좋은데. 그 '뭐'가 생각이 잘 안 나는데... 내가 유튜브 영상 링크 보내줄게."


뭐든지 알 수 있지만 머리에 제대로 든 것이 없다. 키워드만 잔뜩 나열되어 있고 나머지는 구글이나 네이버가 알아서 해주겠지 싶은 것이 고스란히 유튜브로 건너왔다. 조금만 더 잠식되면 안 먹어도 배부를 정도의 마인트컨트롤마저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요즘에 게임을 잘 안 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일까? 모르겠다. 시간은 많지만 게임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 귀찮아하는 이 간악한 마음은 급기야 게임 플레이 '요약'영상을 찾아보면서 '대리 플레이'를 즐기게 한다. 요즘 유행하는 STEAM 게임의 몇몇들도 스토리는 대충 안다. 그렇다. 맛은 모르고 '대충' 뭔지는 안다. 게임뿐 아니라 이제는 내가 인지하는 세상의 80%는 '대충'안 채로 지내는 것 같다. 


다른 나라의 언어가 배우고 싶어서 독학할 때는 유튜브의 도움이 컸다. 초장부터 비기너 책을 붙잡고 있는 것은 오히려 도움이 안 될 때가 많다. 일단 많이 듣고 흥미가 생겨야 하는데 그런 것에 있어서 유튜브는 좋은 '입문 선생님'이 된다. 어느 정도 수준이 올라갔는데 언어 공부가 너무 노잼이다 싶을 때도 효과는 있다. 그런데 참, 이것도 멍하니 보다 보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갱이처럼 스르륵 빠져나간다. 


유튜브는 나처럼 고독한 자들의 좋은 친구가 되었고, 발빠른 자들의 좋은 사업파트너가 되었다. 나는 가끔 어두침침한 음모론 이야기를 찾아서 파고드는 것을 좋아하는 데 가끔 이 유튜브가 머리를 장악하기 위한 고약한 큰그림이 아닐까 하는 망상을 해 보기도 한다. 침대 안에서 휴대폰으로 영상보면서 쳐 잠드는 내 육신이 너무나도 안쓰럽고 비참해보이기 때문이다. 


옛날에 어르신들은 TV많이 보지 말라고, '바보 상자'라고 부르시면서 멀리할 것을 당부했었다. 그런 연장선에서 유튜브랑 비교한다면 새총 대 ICBM이다. 나는 참말이지 눈깜짝할 사이에 뇌를 지배당했으면서도 그것을 거부할 엄두조차 안 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생각은 알고리즘처럼 꼬리를 물고, 나는 또 이 글을 업로드한 뒤에 새총이나 ICBM을 검색하면서 잡지식을 충족하며 잠들 것이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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