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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굶찮니 Sep 23. 2022

익숙한 땅에서도 쥐는 죽더라

그래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

나는 대낮의 도로에서 쥐포를 봤다. 

묘사하기에 따라서 상당히 불쾌한 내용이 될 수 있겠지만 있는 그대로 설명하자면 나는 태국의 도로를 지날 때 종종 도로위의 털무더기를 봤다. 쥐가, 널찍이, 깔려있었다. 

그쪽 에리어가 워낙 쥐들이 잘 돌아다니는 탓도 있었다. 식당, 시장가이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저번에 말했던가. 사람은 상식 밖의 정보가 들어오면 뇌정지가 온다고. 익숙한 다른 어떤 것으로의 환원이 실패하면 어버버버 하고 만다. 그래서 나는 그것이 아스팔트를 추가로 부어 놓은 둔덕인 줄 알았더랬다. 


나는 사실 그러한 쥐포를 딱 두 번 본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태국에서의 썰을 친구들에게 풀 때 무언가 계속 강조하고 더하기를 하는 내 자신을 깨닫고 만다. 요컨대 음식에 대한 것이 나오면


"태국 음식에? 그치 고수가 많이 들어가지. 그런데 고수가 아닌 것도 있어. 거기에서만 나는 야채도 겁나 많아. 태국 바질 까파오라는 것도 있고, 네가 먹은 거 그거 고수 아닐 수도 있어."


나는 아는 체에 대한 자기 검열이 심한 편이다. 그러기에 말할 때 조심조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제가 태국이면 급발진 버튼이 눌려 쉴 새 없이 떠드는데, 태국 음식도 무조건 야채가 많이 들어가는 것도, 모르는 야채만 넣는 것도 아닌데, 나는 어느 새인가 태국 음식이란 주제만으로 엑조틱(exotic)한 세계를 만들어내버린다. 


좋은 내용이면 그래도 좋은 술안주로써 좋다. 주제가 '쥐포'와 같이 '위생, 병해충, 극혐'의 키워드로 가버려도 이놈의 주둥아리가 급발진을 안 멈출 때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분명 엄밀히 따져보면 딱 두 번 쥐포를 도로 위에서 마주했을 뿐인데, 그것이 마치 '종종 있다.', '어느 구역에 가면 항상 있다.', '태국에서 운전할 때 쥐포를 조심해야 한다.' 등으로 확대되고 마는 것이다. 스스로 감탄했다. 이 정도면 나도 어엿한 선동꾼?


나는 그저 추억팔이하면서 주정을 부린다 쳐도, 그 와중에 태국에 대해 잘 모르는 이가 듣고 오해한다면, 태국은 항상 비위생적이고 거리에 쥐들이 들끓는 이른바 하멜른을 연상할지도 모른다. 


그런 내가, 익숙한 이 땅에서 로드킬을 목격했다. 내가 나고 자란 홍대거리에서. 

비둘기였다. 

깃털은 물론이거니와 그 안의 무언가들이 시뻘겋게 나온 적나라한 사체였다. 나는 내가 그렇게 비위가 약한 줄 몰랐다. 출근길에 보자마자 토가 쏠렸다. 뇌정지가 왔다. 불쌍한 생각보다는 그자리를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색이 선명한 것으로 봐서는 치인 지 얼마 안 돼 보였다. 


서울뿐 아니라 이제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하고, 치안도 잘 되어있고, 나름 많이 발달되어 있는 이 동네에서 정말로 신선하고(Fresh) 잔인한(Brutal) 죽음을 아무런 전조 없이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그리고 쥐포도 역시 보았다. 

요즘 이 동네에서 쥐포 보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 자체가 편견이었다. 이 친구는 치인 지 꽤 되었는데 완벽한 카펫이 되어 보호색 효과 더불어 아스팔트와 이미 하나가 되어 있었다. 


이런 일상의 충격을 두 번 겪은 글쟁이라면 교훈을 뽑아낼 줄 알아야겠다. '죽음은 항상 우리 곁에 있다.'정도인가? 아니지. 난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이 '이불 밖은 위험해'였는걸.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곳에서 맞닥뜨리는 위험이나 공포는 평소보다 배로 오는 법이다. 내가 그나마 공포 영화는 억지로라도 볼 수 있는 이유가 아마 이게 아닐까 싶다. '이제 무서운 거 나올 거야.'라고 모든 영화적 장치와 본능적인 예상 때문에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목적이 '놀라는 것'이니까. 


그렇다고 해서 태국에서의 쥐포는 예상은 했겠는가? 쥐 말고도 사실 수많은 생명체가 디폴트로 돌아댕기기 때문에 '산 것 중에서 죽은 것'이 출몰한다는 것 자체가 예상을 깨는 것이다. 위생의 문제로 보긴 어렵다. 


위생. 나는 예전에 태국에 대한 정보를 살펴보던 중 '태국의 장단점 N가지'류의 글이나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태국의 위생에 대해서 걱정한다고 소개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실제로 재래시장에 가면 생고기를 오픈해 놓고 판매하기도 하고, 바선생과 서선생이 시장 하수구를 제집 드나들듯(실제로 자기네들 집이 맞긴 하다만) 돌아다니는 걸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덥고 습한 것도 걱정의 이유 중 하나이다. 그래서 더욱 여기 사람들은 소독과 포장을 깔끔하게 하려 한다. 부작용으로 일회용 용기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편이지만 아무튼 그렇다. 


위생 상태가 좋든 안 좋든 인생에 한두 번은 쥐를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재앙이고, 죽어버린 이 친구들을 만나게 되는 것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 더 재앙이다. 결국 어딜가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너무나 무섭고, 또 아무리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날 것의 죽음이라는 것이 애석할 따름이다. 요즘은 모든 것을 다 안다, 통달했다 생각하고 다니지만 실상 데미지를 참 잘 입고 다니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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