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알 수 없는 학생들의 심리
학생들을 대하다 보면 그들의 심리를 정말이지 미치도록 알고 싶을 때가 있다.
대부분은 생각하는 것이 거기에서 거기, 사람은 어느 나라나 어느 문화나 보편적인 부분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굳이 심리를 파헤쳐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가령, 수업이 12시 50분에 끝난다면 45분부터 주섬주섬 책상을 정리하면서 나랑 눈이라도 마주치기라도 하면 로드킬 5초 전 고라니 마냥 몸이 싹 굳어버리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아 전세계 사람들에게 '교실'이라는 곳은 한시라도 탈출하고 싶은 감옥같은 곳이구나하고 자연스레 깨닫고 만다.
하긴 누구나 학생 신분이라면 수업 종료 5분 전이면 지우개가루 털고 책 접고, 1분 전부터는 엉덩이가 들썩들썩이는 것이 정상이기는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이해가 안 가는 행동을 보일 때면 처음에는 그놈의 '다른 문화권'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개인의 문제인지, 아니면 오늘 날씨가 개떡같아서 그런 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기곤 하며, 나는 그럴 때마다 최근 유행한 디플 시리즈 '카지노'의 차무식 행님이 너무나도 부러워지고 마는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그런 사람은 개인 정보는 물론이거니와 사람 심리도 알아차렸을 것이라.
1. 뭐라도 해야지
이상하리 만큼 내가 시험감독할 때는 학생들의 커닝 시도가 적다. 다른 선생님들의 사례를 듣다 보니 나도 나중에 알게 된 것이다. 이 말은 전반적으로 학생들이 의외로 커닝 시도를 많이 한다는 얘기다.
사실 커닝의 빌미를 없애고, 오해도 없애기 위해서 선생님들은 많은 노력과 메뉴얼을 만들어냈다. 제일 대표적인 것은 시험장 전방에 비치하는 시계다. 학생들이 쓸데없이 시선을 돌리지 않게 하기 위한, 반대로 시선을 돌릴 필요가 없게 만드는 것이다. 간혹 눈을 돌렸다가 학생은 억울해하고, 선생은 물증이 없어서 다투는 경우도 드물지만 있다. 그래서 학생들이 볼 수 있게 시계는 시험 때만큼은 전방에 배치하고, 수업 시간에는 학생들이 시간에 너무 신경쓰지 않게 하면서 선생님들이 시간을 잘 볼 수 있도록 후방에 배치되는 디테일이 있다.
그래도 학생들은 시험 때 정말 다각도로 눈을 굴린다. 어떤 친구는 5분에 한 번 꼴로 계속 눈알을 돌리는 카멜레온같은 친구도 있었다. 동물 모사에 힘쓴 그 친구를 위해 나는 시험 도중에 친절히 맨 앞자리로 안내해 준 적이 있다.
또 한번은 태국에 있을 때 영어과 시험감독을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인원이 80명 정도로 두 섹션(반)이 같이 시험을 보는 시험장이었다. 한국어과 같이 한 학년에 한 섹션(40명 안팎)밖에 안 되는 아담 사이즈의 경우에는 거의 없지만 영어과나 경영과와 같이 몸집이 큰 마동석같은 학과는 시험 출제 자체를 A, B형으로 나누는 것이 국룰이었다. 그래서 한 줄은 A형, 한 줄은 B형 시험지가 나간다. 두 시험지는 페이지에 배치된 문제 순서도 다르고 보기 순서도 다르다. 그래서 바로 옆자리 커닝은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 오히려 두 사람의 성적이 서로 아작날 수는 있어도.
그러나 나는 목격하고 만다. 가운데 가장 뒷자리에 남학생, 여학생이 나란히 앉았는데 여학생이 미어캣처럼 빼꼼하고 남학생 쪽을 봤다. 그리고 1분 뒤에 남학생이 이번엔 여학생 쪽을 빼꼼하고 본다. 그들은 그렇게 몇 분여 간 자강두천... 도 아닌 이상한 레이스를 펼치다가 내 손에 의해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사실 그냥 놔둬도 별 문제는 없어보이긴 했지만.
2. 나는 기분이가 언짢으십니다
이건 내 자의식과잉일 수도 있다. 평소에 남 눈치를 좀 보는 편이니까. 하지만 내가 별 빌미를 주지 않았는데도 시종일관 표정이 굳은 친구들이 매학기 존재한다. 이런 종류의 학생들은 잘 웃지도 않고 반응도 별로 없어서 수업 진행에 있어서는 어떤 의미로 난감한 타입이다.
매 활동의 도입 단계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가벼운 질문을 학생들에게 던지곤 하는데,
"띠엔 씨는 한국에서 어디에 가 봤어요?"
(교사만 물끄러미 쳐다본다.)
"띠엔 씨, 동대문에 가 봤어요?"
(눈을 한번 깜빡인다.)
"동대문에 가요. 있어요?"
(뜸을 들이다가 옆 친구를 본다. 그리고 다시 교사와 집요하게 아이 콘택트만 한다.)
야... 너 3급이야.
물론 내성적이어서 그런 친구도 있고, 이해는 했으나 말이 유창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나는 꽤나 집요한 편이다. 교사가 학생과 대화를 포기하면 그것만큼 언어교육에서 치명적인 것도 없다. 계속 질문을 차츰 쉬운 단계로 내려서 어떻게든 대답을 유도해야 학생들은 말할 '자리'를 느끼고 편하게 대답하게 된다. 단답형 대답이라도 듣게 되면 그제야 나는 다시 단계를 올려 질문한다.
그런데 뭐, 정말 빡쳐서 대답 안 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
어떤 프랑스 학생이 있었다. 온라인이었는데 턱을 괴고 '한번 떠들어 봐라.'는 식으로 대답도 안 하길래 나는 상당히 충격을 먹었다. 역시 시민혁명의 나라에서 온 강력한 처자여서 그런지 호락호락하지 않구나 싶었다. 나는 종특, 문화로 가르는 일반화를 안 하려고 꽤나 노력하는 편이지만, 사람이라는 게 당황하면 멋대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나중에 상담을 통해 오해가 풀리기는 했지만 시종일관 입을 다물고 있는 그 학생을 보면서 정말 '뭔 생각일까?'라고 궁금해 하며 당황, 편견, 지레짐작을 반 학기 동안 하게 되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그 학생은 개썅마이웨이였지만 나한테 딱히 불만은 없었다고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안 좋은 일 때문에 각종 수행평가도 조졌고, 공부할 맛이 안 났다고 한다. 그녀는 중간시험과 기말시험도 일부러 안 봤다. 보통은 시험을 정말로 '시험삼아' 응시해 보기라도 할 텐데...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다시 들을 것이고, 다시 들으면 잘할 수 있다고 유창한 한국어로 이야기하는데 설득당하고 말았다. 그래, 그게 네 의지라면야.
3. 나는 한국어를 부수고, 한국어를 창조한다.
내가 극찬하고 봤던 일본 애니메이션 '코드기어스'의 명대사 중 하나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부숴버리고 다시 창조해냈다는 얘기인데, 학생들 중에는 간혹 창의력이 넘치다 못해 새로운 언어체계를 만들어버리는 학생들이 있다. 나는 처음에 흔한 번역기 실수라고 생각했다. 번역기를 사용한 아이들은 금방 티가 난다. 그리고 특정 국가의 친구들을 계속 상대하다 보면 왜 이렇게 번역이 되었는지도 어렴풋이 이해가 된다. 고로, 나에게 조금만 '딥러닝'할 자료가 주어진다면 나도 알파고처럼 번역기 냄새를 기가 막히게 알아채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친구는 쓰기에서 꽤나 특이한 버릇이 있었다. 지금은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정말 어색한 문장 구조로 썼는데, 문제는 이 친구가 평소 한국어로 말할 때도 이런 패턴으로 말을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대부분 이런 경우는 모국어 영향이 크다. 오류 분석에서도 모국어 영향이 차지하는 부분이 크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연구도 활발한 편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기회에 조금 더 외국어도 더 배워보자는 마인드로 임하고 있었다.
뭐... 그렇게 마음 먹고 정확히 3주 정도만에 포기했더랬다. 그들의 친구에게 듣기로는 모국어로 이야기해도 잘 알아들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냥 그 친구가 말 자체를 정말 특이하게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자신이 배운 한국어의 구조를 세분화하고 다시 재조합하는 미친 능력. 하지만 보통 사람은 알아듣기 힘든 그 미묘한 차이. 이건 뭐 링구아 프랑카도 아니고... 이렇게 또 하나의 공용어가 탄생하고 마는 것인가.
사실 학생들의 마음을 모두 알아버리면 맘 약해져서 수업 못 할 것 같다. 때로는 모르는 것이 약일 때도 있었다. 그렇다고 다 쌩까고 수업만 하기에는 내가 학생들에게 관심이 너무 많다. 관심이 많으면 다 알 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알게 되어버리는 것들이 많다. 그러다 보면 또 충격을 받기도 하고 더 어려워지기도 한다. 머신처럼 강의하지만 사실 고장나기 쉬운 소프트웨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