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둘이 안 맞는 것일 수도 있다
언젠가 내 제자들이 한국어에 능통하게 되고, 또 우연찮게 이 글을 읽고, 이 글을 싸지른 작자가 나임을 알게 된다면 참으로 미안한 얘기가 될 테지만, 나도 싫어하는 학생이 분명이 있다. 물론 그렇게 될 확률은 코인 투자로 테슬라를 매입하는 것과 같은 이치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이렇게 글을 시작하니 복권 마렵다. 왜 인간은 항상 돈에 얽매여 살아야 하는가.
하지만 오늘의 주제는 돈이 아니라 '미움'이다. 사실 조금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나는 학생이 무섭다.
이게 뭔 귀신이 씨나락 까먹다가 슬릭백 추는 소리겠냐 싶겠지만 진짜 그렇다. 안 그런 척하고 있지만 사실 언제 무슨 질문을 해 올지도 모르고, 언제 사고를 칠지 모르며 언제 또 슬금슬금 유급해서 같은 급에서 또 만날지 모르는 일이다. 같은 반에서 또 만나는 것은 나에게도 그 학생에게도 재앙이 아닐까.
무엇보다도 내가 말실수나 행동에 실수를 해서 그 학생과의 관계가 틀어질까 봐 그게 제일 두렵다. 뭐 한 학기보고 안 볼 사이고, 격일로 만나니 그게 대수인가 싶지만 한 학생과 틀어지면 그 친구들과도 틀어지고, 수업에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그 반 전체 분위기가 연쇄적으로 망가지면서 그 학기를 말아먹게 된다. 그래서 나는 확실하지 않은 경우 빼고는 잘 화를 내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학생들에게 나쁜 평을 받은 적은 거의 없다. 맨날 헤실짝헤실짝 웃어대면서 잘해주니까.
국내 어학당은 보통 2인 1조로 선생님 두 분이서 팀티칭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1, 2교시 3, 4교시로 나누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하루 단위로 나눈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자기도 모르게 두 선생님을 비교하게 되나 보다. 보통은 별 생각이 없이 다들 조용히 공부만 한다. 그런데 선생님과의 트러블이 생기면 얘기가 달라진다.
보통 매학기에 한두 명 정도는 학생들이 나에게 고자질 아닌 고자질을 해 온다. 'OOO 선생님이 저를 싫어하는 것 같아요.', '아니에요.'라고 달래 보지만 이미 얘는 볼이 벌써 제주도에 오름마냥 부어올랐다.
그럼 나는 또 아무것도 모르는 척 슬쩍 해당 선생님을 떠 본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선생님도 불만이 많으신 상태다. 결석도 자주하고, 물어봐도 애가 대답이 없고....
뭐 결국에는 둘의 상성이 안 좋은 것 뿐이라고 결론지었다. 내가 그 상황을 직접 본 것이 아니라 함부로 판단은 안 하려고 한다. 왜, 그런 것이 있지 않은가.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고 아무런 원한도 없지만, 보자마자 생물학적 거부반응이 오는 그런 사람. 그것은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의 기운이 잘못이다.
그리고 그것에 이유를 붙이기 위해 행동거지와 말본새 등의 근거를 뒤이어 붙인다. 서로서로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니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얘가 어색하게 대답하면 평소에는 넘어갈 말들이 '혹시 얘가 일부러?'라는 오해를 한다. 학생은 학생대로 말이 빨라지거나 평소보다 어조가 달라진 선생님의 태도를 보고 넘겨짚기도 한다.
물론! 선생님이 진짜 싫어해서 그렇기도 한다! 사실이다! 숨겨서 뭐하나. 강사실에서는 계속해서 오늘의 빌런상 어워드를 1시간 간격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그렇게 한다고 해서 점수를 깎거나 꿀밤을 먹이거나 하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선생님은 티를 내지 않으려 하신다. 아까 말했듯 '한 학기를 걸만큼'의 자신이 없으면 좋게 타이르고 만다.
그렇게 이쪽에서 말리고 저쪽에서 말리면서 계속 지켜보다 보면 언젠가는 저런 학생의 타깃이 내가 되는 날도 오겠구나 생각한다. 이미 몇 번은 노려졌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가끔 쪼르르 달려와서 근황보고 하고, 선생님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호감을 보여준 것에 고맙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입도 근질근질하다. 야, 그건 네가 학교 잘 안 나와서 그런 거잖아. 너 또 워크북 풀 때 휴대폰으로 틱톡 봤지? 숙제를 늦게 내니까 그렇지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