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굶찮니 Oct 08. 2023

안전지대가 점점 사라져간다

방콕 시암파라곤 총격사건, 그리고 다른 사건들

10월 3일 오후 4시, 방콕 중심가의 '시암파라곤'에서 총격 사건이 일어났다. 


뉴스마다 보도가 다르지만 태국 현지인도 6명 가량 다치고, 3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돌아가신 분 중에는 미얀마 이주노동자도 있다고 하는데, 타국까지 와서 고생만 하다가 간 것 같아 더 마음이 아프다. 미얀마의 정권교체가 있을 즈음에 나는 태국에 있었는데, 치앙마이 미얀마 대사관 골목에 사람들이 난민처럼 우르르 몰려 앉아 기다리는 것을 본 적이 있어 저 나라 사정도 참 안 되었다 싶었다. 실제로 치앙마이에 있다 보면 미얀마에서 매홍손 주로 넘어오는 불법 입국자 뉴스를 종종 듣게 된다. 어찌되었든 먹고 살기 위해서 온 땅인데 여기에 묘를 파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방콕에 다녀 온 사람이라면 한두 번쯤은 지나치거나 들렀을 곳이 시암파라곤이다. 아주 커다란 백화점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BTS 역에서 바로 이어지기도 하고, 방콕에서는 번화가 중에서도 가장 중심부에 있어서 사람이 참 많은 곳이다. 테러범 머릿 속을 알 턱이 있겠냐만, 시나리오를 쓴다고 치고 빌런 캐릭터를 하나 만든다면 저곳을 노릴 법도 하다. 하지만 나는 지극히 일반인이고 하니 무서운 것이 당연하다. 어디 으슥한 뒷골목도 아니고 사람이 많은 번화가 한복판에서 총을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게다가 방콕에서 일을 하고 있는 제자들도 한둘이 아니어서 걱정이 배가 되었다. 다행히 무사하다 한다. 


신림역, 서현역 사건도 사실 너무나도 아찔했다. 그리 멀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신림역은 일 때문에 자주 가는 곳이기에 더 난감했다. 사건 직후 역에 가자 경찰들이 출구마다 서 있었다. 사후약방문이긴 하지만 이마저도 안 하면 사람들이 제정신으로 살 수나 있을까. 아는 선생님께서는 서현역을 들른 뒤 1시간 뒤에 사건이 터져서 신이 도운 게 아닌가 하고 안도하셨다. 가는 데 순서가 없다지만 저런 식으로 가고 싶진 않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신림역에 희생자 중 한 명은 학생회장도 했었고 성실하게 살던 대학교 4학년생이었는데, 부동산 알아보러 잠깐 왔다가 화를 입었다. 내가 이 사람의 모든 인생은 다 모르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총이나 칼을 맞을 만한 짓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설사 그랬다 해도 법치국가에서는 법의 심판을 받는 것이 당연하고. 오히려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다면 제명대로 아무런 피해 없이 사는 것이 옳을 텐데, 야속한 것 같다. 


어릴 때는 원수질 일을 만들지 말라고 교육 받았다. 항상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고 살자. 그렇게 하기만 하면 적어도 등에 칼 맞을 일은 없을 테니까. 그렇게 명을 달리 하는 것은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존재하고, 우리가 모르는 어둠의 세계에서나 존재할 거라 생각했던 유년시절이었는데, 이제는 착하게만 살아도 마치 천재지변처럼 '테러'가 어느샌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유독 사나운 사건이 들이닥치는 요즘이다. 그렇기에 착각마저 든다. 착하게 살면 오히려 단명하나?


나는 이제 길거리에서는 누군가와 눈 마주치기도 겁이 난다. 아는 친구들과 저녁에 건대 거리를 돌아다녔는데, 술에 취한 채 시비가 붙은 무리만 세 번을 마주쳤다. 예전에야 술먹으면 싸우고 그러는 거겠지 싶었는데, 이제는 '저러다가 칼 맞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는데, 이게 맞나 싶다. 미디어가 워낙 발달해서 별의별 사건이 빠른 속도로 전해지기 때문에 흉흉하다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사건의 질 자체가 너무나도 무거운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이 나에게 길거리 포비아를 느끼게 한다. 


태국에서 총기를 펑펑 퍼부은 후레자식은 14살에 하이쏘(태국 상류층)라고 한다. 정신 착란으로 사람을 해했다는데 지난번 하이쏘 뺑소니 사건처럼 말도 안 되는 판결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하이쏘든 로쏘든 출신 상관없이 위험하다 싶으면 사회로부터 격리가 응당한데 말이다. 또 한 편, 태국의 언론은 잔인한 것이나 범인 얼굴은 가차없이 공개해 버리니 이거는 또 시원한 면도 없지 않다. 


아무튼 별 문제없이 잘 사는 사람들은 정말 별 문제가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이 필요하다. 







작가의 이전글 왼쪽으로 눕는 것과 오른쪽으로 눕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