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피곤하면 잠만 잘 온다
예전에는 당연하게도 오른쪽으로만 누웠다.
왼쪽으로 누으면 왠지 심장 쪽이 눌려 답답한 느낌에 다시 바로 눕게 되고, 바로 누우면 또 무언가 불안해서 오른쪽으로 누워 새우처럼 몸을 살짝 말고 잤다. 어릴 때는 천둥소리도 무서워해서 때때로 새우 자세에서 아르마딜로 자세로 변모하곤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스물이 넘을 때즈음에는 나는 더 이상 오른쪽이 아니면 만족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왼쪽으로 누울라치면 왼쪽팔이 저려와서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자세가 또한 어색했기에 바로 잠에 들기보다는 잡생각에 또 20분, 30분을 낭비했다. 물론, 방의 구조도 한몫했다. 내 침대는 방의 오른쪽에 붙어있었고 나는 이 오른쪽 벽에 붙어 자는 것을 좋아했다. 왼쪽으로 돌아누우면 창이 있어서 아무래도 스며드는 빛 때문에 다시 돌아눕게 되었다. 커튼을 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커튼 마저 치게 되면 아침이 된 줄도 모르고 쳐 자기 때문에 솔직히 두려웠다. 그래도 누군가는 깨워줘야지.
카페에서 일할 때 매니저 누나가 한번은 손목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 출근을 했더랬다. 우리는 깜짝 놀라서 어디 다쳤냐? 혹시 데었냐? 걱정하기 시작했다. 카페에서 일하다 보면 손을 데는 것은 부지기수니까 사실 이 질문이 처음으로 나오기는 했다. 그런데 매니저 누나는 빙구미 넘치게
"아니아니, 자다가 눌렸는데 인대가 늘어났데. 헤헷."
이러고서는 해맑게 락커룸으로 들어갔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잠을 어떻게 자면 인대가 아작날 정도가 된단 말인가. 그 누나가 손목이 유독 가늘어서 그런가 보다하고 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빙구미 넘치는 일과 비슷한 것이 나에게도 종종 일어났다. 알코올을 치사량보다 살짝 모자라게 쳐먹으면 곱게 자지는 못하고 어딘가 쓰러져 자게 되는데, 나는 그래도 잠자리 다운 곳을 잘 골라 자곤 했다. 친구집 소파나 방바닥 그 어딘가. 노상에서는 잔 적이 다행히 없다. 그러다 나는 아마추어같이 자세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흐트러지게 된다. 왼쪽 팔이 밤새도록 눌렸고, 아침이 되자 피가 하나도 안 통하게 된 팔에 감각이 없고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으아... 나는 팔이 없어진 줄 알았다.
나는 왼쪽으로 눕는 자세의 위험성을 깨닫고 또 다시 경계하기에 이른다. 왼쪽은 위험해. 잘 때는 항상 긴장하자....
아마 그때 '술을 좀 덜 쳐 먹자.'라는 건실한 생각을 했더라면 나는 지금쯤 참으로 건강한 몸을 지니게 됐을 것이다. 왜 그랬니... 진짜...
서른이 넘고 나는 기초체력이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왼쪽, 오른쪽 구분없이 되는대로 자기 시작했다. 어쩌다 또 똑같이 아침의 팔저림을 만끽하며 일어나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아침잠이 깰 즈음에는 또 회복이 되곤 했다.
그리고 문득 최근에야 깨달았다. 내가 왼쪽으로 눕는 것이 이렇게도 자연스러웠던가. 이것은 마치 태국 가기 전과 갔다 온 후에 고수나물을 대하는 나의 모습인걸. 지금은 고수가 없으면 좀 아쉽단 말이야.
나는 이것이 습관에 의한 적응인지, 나이가 들어 무뎌진 것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후자라면 또 무서워지고 만다. 이게 맞다면 나는 시시각각 빠른 속도로 나이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점점 두려운 것이 없어지고, 점점 모든 고통이 다 비슷하다고 느껴지면 그것이 나이가 드는 것인가. 그래, 그래서 요즘은 피곤하면 잠만 잘 온다. 왼쪽, 오른쪽 눕는 방향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내일 아찔한 시간에 깨지 않으려면 몇 시에 잠이 들어야 하는가가 제일 중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