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교사가 본 전청조 엉터리 카톡
휴먼번역체.
내 죽마고우들은 드립의 천재들이다. 같이 모이면 그렇게 웃길 수가 없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최약체지만 하나 자신있는 것이 '외국인 드립'이다. 매일매일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는 나로써는 그중에서도 '외국인이 사용하는 한국어'쪽이 전공이다. 직업병이 돋아 한참 바라보고 있으면 그 외국인이 왜 그런 표현을 썼는지 원인도 대충은 감이 오곤 한다. 조롱의 목적은 없다. 나는 밖에서 이런 드립을 잘 치지는 않는다. 그냥 친구들끼리 웃자고 따라하곤 한다. 그래서 국가별로 이 친구들이 하는 한국어 실수를 퍽이나 잘 알고 있다.
요즘 쉬는 시간에 보는 뉴스에서 나를 심심하게 두지 않는 뉴스가 전청조 씨 사건이다. 파면 팔수록 뭐가 매일매일 터져나오는 중이다. 재벌 3세 행세, 보디가드 명의로 외제차 리스, 임신테스트기, 승마 선수 출신 등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당연히 내눈에 띄는 것은 교포인 척하는 문자메시지 내용이었다. 사기꾼들이 보통 머리가 참 좋다고 들었는데... 뭔가 좀... 나사가 빠진 듯한 내용이라 실소가 터졌다.
문자 내용을 보자.
영미권, 러시아쪽 친구들은 그래도 조사를 잘 붙여서 쓰곤 한다. 이것을 자기 멋대로 순서를 섞거나 구 단위로 끊어서 말하는 것이 문제다.
만약에 내 학생이었다면 "다음에, 선생님 다음에."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급에 따라 다르겠지만 높은 급에 간 친구들과 가끔 대화해 봐도 끊어서 말한다. 저기에서 문제는 'Next time'이라는 영어 표현과 조사 '-에'를 섞었다는 건데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라는 생각이 조금 든다. 아예 단어를 모르면 'Next time~'이라고 말하거나 '다음에'와 같이 통으로 외운 표현을 말하지 저렇게 섞어서 쓰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아시아권 학생들은 조사를 빼먹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것도 급에 따라, 개개인에 따라 다르기는 하다.
'-(으)ㄹ게요'라는 표현은 분명히 가르쳤는데도 학생들이 잘 못 쓰는 표현 중의 하나다. '의지, 약속'또는 '어떤 사실을 알려주는' 표현으로 자주 쓰는 표현인데 학생들은 선행 학습한 '-(으)ㄹ 거예요'나 '-아/어요'로 표현한다. 아마 이게 더 부담없이 쓰기 편한 것으로 인식한 모양이다. 그래서 보통 이렇게들 말하곤 한다.
"뚜옌 씨, 또 지각할 거예요?"
"아니요, 선생님. 지각 안 해요./안 할 거예요."
"누가 여기 좀 청소하면 좋겠어요."
"선생님, 제가 할 거예요."
아주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학생들은 이 표현을 완벽하게 잘 표현하지 못한다. 아마 화용적으로 연습이 필요한 표현인 것 같다. '놀러갈게요'라는 표현을 통으로 익혔고 자주 썼다면 가능하지만, 내가 볼 때는 꽤나 한국어 잘하는 화자로 보였다.
영어 화자들은 이름을 자주 쓰는 것으로 안다. 그냥 앞에 아무말 없이 'Wife'라고 말하는 것은 지극히 한국적인 표현 같다. "우리 와이프 친정 갔어.", "와이프가 그러든데..." 등등. 특별히 지칭해서 말할 때 'My wife' 등으로 자주 말하는 것 같다. 진짜 외국인/교포였다면 "현희한테", "나의 허니한테" 등으로 말했을 확률이 높을 것 같다. 아님 말고. 나도 영어를 잘하는 것은 아니니.
이 다음 표현이 조금 어렵다. '되냐고 물었더니', Wow! 여기에는 체감상 학생들이 제일 많이 틀리는 문법이 두 개나 있다.
'-다고 하다' 등으로 간접 화법으로 인용 표현을 나타낼 수가 있는데 보통 2급~3급에서 등장해 애들을 멘붕에 빠뜨리곤 한다. 마치 LOL이나 오버워치 같이 랭크 티어 올리는 게임에 마의 구간에서 승급을 막아버리는 수문장 같은 녀석이다. 이녀석들을 비롯해 3급에는 몇몇 수문장들이 존재하는데 이 친구들을 극복하지 못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3급에서 무한 유급생이 되어버린다. LOL로 예를 들면 만년 실버, 골드에서 머문다고 보면 되겠다.
'-다고 하다'는 평서문에서, 그리고 의문문, 명령문, 청유문인지에 따라서 표현을 달리하는데 일단 '-냐고 하다'를 학생들은 어려워한다.
'물었더니'도 어렵다. 보통 '-았/었더니'모양으로 제시하는데, 경험에 대한 결과를 말할 때 쓴다. 뭐 중간에 '묻다'의 'ㄷ불규칙'도 1급->2급으로 가는 수문장 중에 하나지만 제껴두자.
만약 학생이 해당 문법을 모른다면 저 상황에서 말했다면 예상 답변은 뭐...
"아내? 마이 와이프? 얘기했어요. 다녀와요. 그런데 괜찮아요."
이 정도로 말했을 것 같다. 그래서 생각이 들었다. 저 메시지를 쓴 사람은 참 유창하다...
'했어서' 이 부분은 많이 틀리는 부분이다. 딱 이런 모양으로 학생들이 많이 틀린다. '-아/어서'는 '-았/었-'과 결합하지 않는데, 사건이 일어난 시점이 과거면 학생들은 꼭 앞에 '-았/었-'를 써서 틀리곤 한다. 그런데 한국말을 쓰는 우리도 이런 오류를 종종 범하곤 한다. 그래서 더 소름.
'물어봤어요'도 통으로 외웠다면 인정. '-아/어 보다'는 그렇게 어렵지 않은 문법이지만 잘 못 쓰는 친구는 '았/었어요.'로만 말하는 습관이 있다.
이 부분은 뭐, 할 말이 없다. 이미 언론에서 제일 많이 다룬 부분이 여기인 것 같다.
나도 영어는 자신이 없는데, 이분도 어지간히 영어는 별로인 것 같다.
아무리 교포가 외국인 흉내를 내는 것이라 하더라도 영어 문법도 무시해 가면서 '척'을 하면 되나 싶다.
'I am'으로 말하는 것부터 글러먹었다. 'I'll, I'm gonna'정도는 나올 줄 알았다.
'But your friend랑 같이 있으면'이라는 부분도 석연치 않다. 구 단위로 끊어 말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만약 진짜 교포였다면 저 표현을 통으로 영어로 말하거나 어설프게 한국어로 통 문장을 말했을 것 같다.
"만약 당신의 친구와 있다면 나는 괜찮을 것입니다."
'신뢰에요' 이 부분이 이 사람이 영어를 모른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것 같다. 신뢰라는 단어는 보통 중급 이상에서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이 '신뢰'라는 부분을 표현하는데 영어를 사용하고 나머지 부분은 한국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정반대로 '척'을 한 것이다.
또 하나, 한국 사람들이 자주 틀리는 표현 중의 하나가 저 '에요'다. 바른 표현이라면 받침이 없을 때 '-예요', 받침이 있을 때 '-이에요'로 써야 한다. 우리는 소리나는 대로 습관처럼 '에요'라고 쓰기 때문에 쓸 때 틀리기 쉽다. 저 메시지를 쓴 사람이 토종 한국인이라는 킹리적 갓심이 드는 마지막 부분이다.
위의 내용이 모든 외국인들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실생활에서 익힌 한국어라는 것이 있기에 전혀 다르게 구사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진짜와 '척'정도는 확연히 구분가는 것이 사실이다. 굳이 내가 구태여 위의 내용처럼 설명 안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헛웃음이 나올 뿐이다.
사실 제일 가까운 사람이라면 뭔말을 해도 당장은 믿을 수밖에 없다. 분위기도 그렇게 조성했다면 의심하기 힘든 상황인 경우가 많다. 지금이라도 이 사건이 잘 갈무리가 되는 것 같아 다행이긴 하지만, 이런 종류의 인간이 세상에 많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오늘도 느낀다. 세상에 백마 탄 왕자님이나 공주님은 없다. 특히 스스로 재벌 3세라고 '재벌 3세'단어를 사용해가면서 영어 한 마디 제대로 사용 못하는 교포 왕자님은 더더욱 없다. 내 주변에는 특히 없다. 속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