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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Oct 21. 2022

122_ 결혼 전, 꼭 체크해야 할 것

+ 30대 노후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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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결혼을 했다면… 부모님은 어떻게 됐을까?’


혼기가 꽉 차 하나둘 결혼하는 또래(30대)들을 보다 보니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실감 나는 상상을 위해 굳이 지난 연애까지 들춰가며 그때든 지금이든 결혼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최대한 현실적으로 따져보았다.


“내가 다음 달에 결혼한다면, 아마 나는~” 


당장 오늘부터 결혼식장 알아보고, 신혼집 보러 다니고, 가전제품 사러 다니고, 예단 예물을 결정, 양가 부모님과 자주 연락하고… 상상일 뿐인데도 벌써 할 일이 산더미다. 준비하고 신경 써야 할 게 끊이지 않아 머리가 지끈거린다.


근데 이상 게 하나 있다.

이 많은 일들 내 생활, 삶의 큰 변화를 위해서는 꼼꼼히 준비하면서도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을 위한 건 없다. 부모님과 연관된 건 상견례, 각 집안의 제사, 식장에 오실 부모님 옷과 화장, 양가 부모님 용돈, 육아 도움… 다 나를 위해 부모님이 해주셔야 하는 것들뿐이다.


부모님의 노후는?

결혼 전 체크 리스트에 없다.


결혼하고 나면 금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부모님을 돕기 더 어려워진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다. 부모님의 결혼생활을 적나라하게 경험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젊은 기혼자들이 금전 부분에서 갈등을 겪는  지겹도록 보고 들은 터였다. 본인들에 자산 마련, 노후 준비, 육아, 교육비 등 돈 들어갈 때가 많아서 다들 부모님 노후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다.


서로 생활비를 각출해서 쓴다 해도 수입이 넉넉하지 못하니 부모님에게 도움을 드리기는커녕 내 용돈으로 내 부모님만 챙기는 것도 섭섭함의 원인이 된다고 한다. 그러니 그 사정 얼마나 빡빡한지 안 겪어봐도 충분히 알겠다.


어쨌거나 여기서 내게 중요한 건 결론이다.

이유가 뭐든 결혼하면 부모님을 돕는 게 쉽지 않다는 결론.


부모님의 노후 상태가 부실하기 짝이 없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근데 그걸 돕기가 어렵다니… 정말 내가 결혼을 했다면, 현재 내 엄친딸, 엄친아에 사정과 마찬가지로 부모님의 노후는커녕 육아 도움이나 바라고 용돈 드리는 것도 눈치 보지는 않았을까? 당장 보살펴줄 사람이 필요한 긴급한 상황에서도 내 생활 제쳐두고 부모님을 도울 수 없는 그 힘든 사정을 나는 모르지 않는다.


내 부모님을 위해서 뭐든 지원해주는 배우자만난다면 좋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런 일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는 사실이 선명해지기만 한다. 무엇보다 혹시나 그런 배우자를 만난다고 해도 나는 배우자의 돈으로 내 부모님을 봉양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미안해서. 배우자 수입이 많든 적든 힘들게 벌어온 돈이다. 결혼했다는 이유와 사랑을 구실로 네 돈이 내 돈이라며 상대의 맹목적인 희생을 요구하고 싶지는 않다. 내게 그건 고마움보다 죄책감이 많이 드는 일이다. (내 가정을 위한 생활비 외에 돈을 이야기하는 거다. 부부 살림은 뒷전이고 무조건 부모님께 월급을 다 드려도 된다는 건 아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의 노후는 오로지 내가 감당해야 할 문제인데 그동안 미혼일 때 그 부분에 대해서 대책을 마련해놔야 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 했다. 막연하게 '나중에 부모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배우자랑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하긴 했지만, 금방 어떻게든 잘 될 거라며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예전에는 결혼하면 남편이랑 둘이 알콩달콩 잘 사는 거, 친정은 명절이나 경조사 때, 그리고 그냥 보고 싶을 때 가면 그만이라며 신나하기만 했다. 당장 심각한 일은 없었으니까. 부모님은 평생 쉬지 못하시고 일하며 가난한 노후를 살게 될 판인데… 아니, 늘 그렇게 살고 계시는데 그걸 보면서도.


‘내가 다른 또래처럼 직장을 다니거나 결혼을 해서 나 사느라 바빴다면 아마 부모님의 이런 문제가 핵폭탄급으로 커져서 펑 터지기 전까지 절대 몰랐겠구나….’


충분히 가능했던 미래다.

그래서 지금은 ‘결혼’이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온몸에 식은땀이 나고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내 가정 때문에 부모님이 아파도 쉬이 돌봐드리지 못하고 편히 쉬게 해 드릴 수도 없는 상황을 겪어야 한다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다.


이런 상황을 모르고 결혼한다는 건 부실공사 가득한 엉망진창인 곳에 신혼집을 마련해놓고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로 걸어 들어가는 꼴이다. 내 집도 수리할 게 많아 이걸 당장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은데~ 부모님 집까지 무너져가고 있는 상황. 그러다 보니 지금은 결혼하지 않은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혼'이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놀라는 가슴 '미혼'이라는 사실에 쓸어내리는 요즘이다.


결혼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나는 내가 뭔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결혼한다는 게 싫다는 거다. 부모님의 삶에 폭탄이 터졌을 때 도움을 드릴 수 없다는 게 얼마나 비참한지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결혼 전 체크 리스트에 ‘부모님 노후’는 필수다. 두 분이 생활비가 부족해서 내게 용돈을 달라고 해야 하나 고민하시지 않게~ 혹여나 간병이 필요한 상황에서 돈 걱정 없이 도움을 받으실 수 있도록 말이다.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크지는 못했지만, 자식 키우느라 맛있는 거 좋은 거 한 번 제대로 누리시지 못한 탓에 부모님의 노후가 안정적이지 못하게 됐다는 걸 잘 안다. 그 감사함은 절대 작지 않다는 것도. 그래서 자식으로서 지금 힘든 상황을 방관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드리려 한다.


지금은 부모님의 생계에 최소한의 안전장치 마련조차 하지 못하고 결혼하지는 말자는 게 내 목표가 됐다. 그렇게 하않고 결혼하면 언젠가 터져버릴 위태로운 일들을 수습하기 어려워진다는 걸 너무 잘 아니까. 그리고 그게 부모님뿐만 아니라 내게도 굉장히 불행한 일이라는 것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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