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을 떠나 강릉에서 삽니다 -
우리가 사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이야기다. 새미네 아버지가 잠깐 할 이야기가 있다며 방에서 쉬는 새미를 불렀다. 아버지께서 거실로 나온 새미에게 손에 쥔 신문을 건네며 말했다.
"송파 헬리오 시티에서 행복주택 입주자를 모집하더라. 이참에 신청해 보는 건 어떻겠니?"
슬슬 첫째가 독립할 시기라고 판단한 아버지의 제안이었다. 새미 또한 곰곰이 생각한 후, 순순히 아버지의 말을 따라 관련 서류를 모아 SH(서울 주택도시공사)에 제출했다. 그리고는 훌렁 잊고 지냈다.
9월 말, 서류를 제출한 지 한 달이 지난 무렵. 결과가 나왔는데 1차 심사 합격이다! 예상 외 결과다. 경쟁률이 무려 49대 1이어서 크게 기대도 안 했는데 말이다. 미처 합격하리라 생각치 못해서인지 더더욱 기뻤다. 예비 입주자의 3배수를 1차 합격자로 뽑는다지만 그런 사실은 아무래도 좋았다. 어쨌거나 붙은 것이다. 앞으로 남은 관문은 단 하나, 2차였다. 만약 이마저 붙으면 새미는 내년부터 독립해서 살 수 있다. 그 말은 즉 우리가 더 자주, 더 오래 지낼 시간이 많아진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나는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아서 새미에게 "2차 합격하면 우리 같이 사는 거야~?!"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킥킥 아 그게 뭐야~~!!" 새미가 능청맞은 내 모습을 보다가 그만 실소를 터트렸다. 2차 서류 접수 기한은 10월 중순까지다. 이번에도 구비 서류를 갖춘 후 SH(서울 주택공사)로 우편을 부쳤다. 결과는 2달 후, 2019년 1월 18일에 발표 예정이다. 겨우 서류만 보냈을 뿐인데, 당장이라도 행복주택에 들어갈 듯한 꿈에 부풀어 올랐다. 우리는 함께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다가올 시간을 기다렸다. 분명 그랬다.
하지만 강릉을 다녀오면서 그전까지 구상한 계획이 180도 뒤집어졌다. 불과 2달 전만 해도 행복주택에 합격하기를 손꼽아 기다린 우리였다. 하지만 강릉 이주에 대한 기대감이 새롭게 피어나면서 상황이 반전했다. 도리어 행복주택에 붙으면 큰일 날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여기서 큰일이 난다는 건 어디까지나 나에 한해서이지만 말이다.
연초에 새미가 강릉살이에 대한 긍정적인 신호를 보낸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실제로 살고 싶다기 보다 충동적인 감정에 휩싸여 꺼낸 말이다. 새미는 아직 강릉에서 새로운 삶은 살기보다는 지금 생활을 유지하려는 마음이 컸다. 나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둘이 있을 때 가급적 강릉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건 2차 결과를 보고 난 후에 방향을 설정해도 충분하다. 옆에서 새미가 강릉살이를 머뭇머뭇 망설여도 개의치 않았다. 나는 평소처럼 행동하고 대화를 이어갔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부동산에 올라온 매물을 살펴보고, 괜찮은 건물을 발견하면 새미에게 공유하는 식으로 말이다.
2차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망설이는 새미의 입장을 이해하고, 새미 또한 가고 싶어하는 내 열정을 지지해 주었다. 나는 2차 결과에 붙을 때를 대비해 서울에서 일할 직장을 알아보고, 새미는 떨어질 때를 대비해 강릉에 좀더 관심을 가졌다. 대화를 나눌수록 서로에 대해 이해가 깊어갔다. 행복주택 발표가 가까워질 즈음에는 우리 둘 다 어떠한 결과가 나오든 그에 따르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월 18일, 마침내 결정의 순간이 다가왔다. 오후 1시 넘어 새미에게서 전화가 왔다. 부르르르 울리는 휴대폰을 짚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예비 145번! 축하해 오빠 강릉이야. 이제 양가 부모님 열심히 설득해야겠네"
행복주택 배정은 받았다. 하지만 대기 순번이 길었다. 두 자리 수도 아닌 세자리 수 대기라면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우리는 순순히 행복주택을 포기했다. 그렇다면 남은 일은 '강릉'으로 가는 것만 남았다. '진짜일까? 그토록 꿈에 그리던 강릉으로 가다니.' 그런데 막상 강릉에서 생활한다고 생각하자 설레이는 한편 몸이 떨려왔다. 뒤이어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10년 가까이 도쿄에서 생활하다 서울로 돌아왔을 때는 본가라는 믿을 구석이 존재했다. 서울은 부모님 집이 있었고 경력을 살릴만한 직장도 많았다. 하지만 강릉은 다르다. 지낼 장소는 물론이고, 우리 경력을 내세울 만한 일터도, '지인'도 거의 없다. 그야말로 황무지를 향해 스스로 뛰어드는 꼴이다. 하지만 이미 강은 건넌 상태다. 이제 와 돌이킬 수 없었다. 머릿 속으로 도쿄에서 서울로 왔을 때보다 더 힘든 고난이 그려졌다. 하지만 그때와는 다른 점이 한 가지 존재했다. 그건 바로 혼자가 아니란 둘이 같이라는 것.
옆에 있는 새미의 손을 잡으며 말을 건넨다.
"같이 가 줄래?"
"같이 가요 우리"
그렇게 우리의 강릉 이주가 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