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을 떠나 강릉에서 삽니다 -
사실 나는 강릉 이주 시기를 2020년 봄으로 마음먹고 있었다. 때가 다가오면 나 혼자 가든 새미와 함께 가든 어떻게든지 강릉으로 갈 예정이었다. 계획을 바꿀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정한 데는 크게 2가지 이유가 존재했다.
첫 번째는 새미가 결심할 때까지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2018년 7월, 우리는 해가 짱짱 내리쬐는 무더운 여름날에 만났다. 첫 만남부터 죽이 잘 맞은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지한 만남을 가졌다. 그리고 그 무렵부터 블로그에 일기장처럼 써 놓은 <내가 그리는 삶>, <내 마음이 가는 대로>라는 강릉에 살고 싶은 마음을 담은 글을 넌지시 보여주었다. 새미에게 블로그 주소를 보내는 동시에 강릉 이주에 대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새미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사귄 지 얼마 안 된 남자 친구가 다짜고짜 부모님 고향으로 가서 살고 싶다 하질 않나?! '가고 싶으면 가고 싶다고 말하면 되지, 은근슬쩍 떠 보기만 하고!! 그것도 가장 중요한 결혼 이야기는 쏙 빼놓은 채 말이야!! 이거 혹시 사기 그런 거 아니야??!! ' 아마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새미 눈에는 내가 얄밉고, 치사한 데다, 이기적인.. 뭐 그런 식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 맞다. 그때 당시를 생각하면 백 번 맞아도 할 말 없다.
다행히도 새미는 너그러운 마음의 소유자였다. 강원도로 가고 싶다는 황당무계한 내 말에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지지해 주었다. 동해바다만큼이나 넓은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었다. 다만 시간이 걸린다 했다. 지금 하는 일을 전부 정리하고 강릉으로 가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2019년은 아니란다. 계획도 안 세운 채 바로 가는 건 위험하다 못해 무모해 보인단다. 우리는 여러 차례 이야기 끝에 내후년인, 2020년 이후 강릉으로 거처를 옮기기로 정했다.
두 번째는 2020년이면 어느 정도 자금을 모아 두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금은 중요하다. 그것도 매우 많이! 내게 있어 강원도는 친숙한 곳이지만 어디까지나 어렸을 적 기억에 한해서다. 냉정하게 따지면 강릉에는 우리가 지낼 곳도, 경력을 살릴 일터도, '지인'도 거의 없다. 그야말로 '황무지'. 미개척지 같은 곳이다. 하지만 강릉으로 꼭 가서 살고 싶었다. 그 마음은 변함없었다. 아니 날이 갈수록 커졌다. 가능하다면 지금 당장 퇴사하고 다음 주 달부터 강릉에서 살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막상 강릉에서 마주칠 현실을 상상하자 숨이 턱 막힌다. '가서 사는 거야 문제없지만 막상 무슨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지?' 점점 이상이 현실로 다가오자 마음속 깊숙이 숨겨 놓은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리고 호흡이 가빠진다. 얼른 이 감정을 쳐내야 한다. 불안의 싹을 잘라버릴 만한 어떤 방어막이 필요했다. 무엇이라도 좋다. 그러다 찾은 게 바로 자금. 돈이었다. 자금을 어느 정도 갖추고 간다면 설령 '황무지' 안에서라도 천천히 적응해 나갈 수 있을 터. 그랬는데...
"오빠 우리 강릉에서 살까?"
서울로 돌아온 후, 새미가 강릉 이주에 대한 의향을 내비쳤다. 그전까지만 해도 강릉살이에 대한 이야기는 항상 나 혼자 들뜨며 말하고 있었고, 새미는 차분히 듣고만 있었다. 아니면 진정하라며 말리거나. 그런데 도리어 그녀 입에서 강릉 이야기가 나오는 게 아닌가. 그 한마디로 인해 나는 기존에 세운 계획을 180도 수정해야 했다. '뚜두둑 뚜두둑 뚝!!' 머릿속에서 족쇄가 끊어진 듯했다. 내후년까지 강릉 이주를 향한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는데, 더는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래 '쇠뿔도 단김에 빼라' 했다. 나는 그날 이후부터 틈만 나면 부동산 사이트를 살폈다. 출근길 흔들리는 지하철 안에서, 회사에서도 일하는 도중 간간이, 그리고 퇴근 후 집에서 쉴 때조차 손에서 휴대폰을 놓지 않았다.
부동산은 인터넷으로 검색할 수 있는 사이트는 전부 찾아봤다. <네이버 부동산>, <강릉 부동산 협동조합>, <강릉 부동산 신문>, <강릉 교차로 부동산>을 살펴봤는데, 수시로 새로고침 버튼을 누르며 괜찮은 매물이 나왔다 검색했다. 마음에 드는 매물을 발견하면 곧바로 새미에게 공유했다. 새미와 데이트하는 날에도 흥겨움은 가시지 않았다. 벌써부터 강릉에서 가는 것 마냥 연신 흥얼거리며 춤을 췄다. 새미가 들떠있는 내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떼 말했다.
"오빠 잠깐만! 우리 행복주택 신청 결과 보기로 한 거 잊었어?!" 응? 뭐라고? 행복주택? 그렇다. 우리에겐 아직 행복주택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