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을 떠나 강릉에서 삽니다 -
내 고향은 강원도이다. 엄밀히 따지면 태어난 곳만 강원도이고 스무살까지 줄곧 서울에서 지낸 서울 사람이지만 말이다. 마음 속으로 항상 강원도를 추억하고 진짜 고향으로 생각할 정도로 애틋한 감정을 지녔는데, 그건 아마 어릴 적 동해에서 보낸 시간이 행복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렸을 적 동해에 계신 할머니 품에서 지낸 기억과, 명절 외에도 수시로 부모님과 함께 동해로 놀러 간 기억, 그리고 외가 친척들과 다 함께 왁자지껄 어울린 추억이 있는 곳. 그래서인지 길을 걷다 우연히 강원도라는 말만 들어도 반갑고 기분이 들뜬다. 그중 내게 있어 '동해'는 각별했다.
초등학생 때, 여느 때처럼 동해에서 외가 친척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외할머니 집에 가장 먼저 도착한 내가 현관문을 열었다. '끼이익'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할머니께서 거실로 나와 반갑게 맞이해 주신다. 우리도 "할머니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라며 활짝 웃으며 인사한다.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거실 마루에 대자로 누웠다. 오랜 시간 뒷자석에 앉아느라 몸이 굳어버린 것이다. 마루에 누운 채로 팔을 뻗어 종아리를 조물조물 풀었다. '아 이제 좀 살것같다.' 뒤이어 어머니와 큰 이모가 들어서면서 현관문 바로 옆쪽 안방에 짐을 풀었다. 그러고 나서 할머니께 안부도 물을 겸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큰 이모부는 긴 시간 운전대를 잡아서인지 벽에 기대어 다리를 뻗고 쉬고 계셨다. 그런데 10분 정도 지났을까? 두 분 다 몸을 일으켜 나갈 채비를 갖춘다. 장을 보러 가기 위해서이다. 동해로 놀러 오면 주로 묵호항으로 장을 보셨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차를 이끌로 북쪽으로 출발하셨다. 묵호항 가까운 하나로 마트에서 야채, 음료, 아이들 간식거리를 사고, 어시장에서 저녁에 먹을 횟감을 샀다. 할머니와 부모님 모두 다 생선회를 좋아하기 때문에 싱싱한 제철 횟감을 골랐다. 아이들이 입맛에 맞는 오징어도 잊지 않고 한 보따리 듬뿍 사 오셨다. 두 아버님이 장을 보고 돌아올 즈음 둘째 이모네도 때맞춰 도착해서 짐을 풀었다.
시계는 오후 6시를 지나 7시를 가리켰다. 아침 동해에서 떠오른 해가 서쪽 산 너머로 저물어 간다. 산자락 뒤편으로 뉘엿뉘엿 넘어갈듯 말듯 하다 이내 모습을 감췄다. 저녁이다. 이제 모일 사람은 전부 모였으니 천천히 저녁을 먹을 준비를 갖춘다. 우선 널따란 거실에 놓인 물건을 하나하나 구석으로 옮긴다. 그 다음 물건을 치운 자리에 신문지를 깐다. 신문지는 접힌 면을 펴서 거실 바닥이 보이지 않도록 한 면 한 면 떼어 깔았다. 신문지 위로 묵호항에서 장을 본 음식을 펼쳐 놓았다. 다 함께 저녁을 먹는 시간이다. 할머니를 비롯한 어른들은 제철 횟감을 안주 삼아 소주와 맥주를 곁들어 마셨다. 아이들 앞에는 오징어 회 덮밥에 환타, 사이다 등 탄산음료 등이 놓여있다. 맛있다. 초고추장의 매콤 새콤한 맛과 오징어의 쫄깃함, 그리고 보슬보슬한 쌀알이 잘 버무려졌다. 오징어 회덮밥은 아이들 입맛에 딱이었다.
하하 호호 웃으며 그간 나누지 못한 이야기가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새 밤 공기도 차게 느껴질만큼 밤이 깊었다. 어둡고 고요한 밤,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한 부모님들은 화투를 치기 위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신문지 위에 저녁상을 한바탕 정리하고 그곳에 큰 담요를 펼쳤다. 참가하는 인원은 외할머니, 아버지, 큰 이모부, 둘째 이모부 그리고 외삼촌 이렇게 다섯. 어머니와 이모들은 작은방으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계속했다. 누나, 형들과 나는 작은방에서 잠시 있다가 화투판으로 삼삼오오 모였다. 그리고 외할머니와 아버지들 옆에서 화투 치는 모습을 구경했다.
한 손으로 패를 쥔 어른들의 모습에 긴장감이 감돈다. 우리 또한 각자의 아버지 옆에서 직접 화투에 참여하듯패를 상상해 본다. "아버지한테 홍단 2개가 있지만, 바깥에 나온건 없으니 누가 쥐고 있으려나?! 누구지? 할머니? 둘째 이모부?" 할머니와 이모부가 어떤 패를 지니고 있는지 머릿속으로 계산해 본다. 다들 표정이 무덤덤이다. 으 모르겠다. 어떤 패를 쥐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화투가 시작됐다. 할머니께서 먼저 판에 놓인 패를 맞춰서 가져갔다. 그다음 순번인 우리 아버지, 큰 이모부 순으로 하나씩 자기 품으로 가져갔다. 시작은 조용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전개가 급변했다. 동시에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짝! 짝!"
"아이고 이게 안 맞네~!!"
"그렇지~!"
"자~ 흔들겠습니다. 이 판은 이제 제껍니다~! "
숨 돌릴 틈 없이 전개되는 화투판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서로 자기 아버지를 응원했다. 할머니와 삼촌이 소외되지 않도록 응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어른들 곁에서 1~2시간 정도 열성을 다해 응원했다. 그러자 옆에서 우리 모습을 본 삼촌이 페리카나 가서 '양념치킨' 좀 사 오라며 만 원짜리 지폐 두어 장을 건네주었다. 우리가 화투판을 응원하는 또 하나의 이유였다. 그렇게 화투는 자정이 넘어서까지 이어졌다.
다음날 아침, 나와 친척 형들은 어젯밤 받은 용돈으로 게임을 하러 1층에 있는 오락실로 향했다. 끼이익~ 그런데 상가 건물 문을 열자 눈앞에 수많은 사람들과 양파, 감자, 대파 등의 야채 그리고 파라솔이 쳐져 있다.
오일장이 열리는 날인가 보다. 우리는 수많은 인파 사이로 오른쪽 건물에 있는 오락실로 들어갔다. 다행히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떤 게임이 있는지 확인한 우리는 평소 하고 싶은 게임을 마음껏 즐겼다. 당시 가장 유행한 게임 ' 더 킹 오브 파이터즈' '와일드 웨스트 카우보이' 등을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게 게임에 집중했다. 사람이 없어서 기다리는 일 없이 게임을 계속할 수 있었다. 한 시간쯤 놀았을까? 둘째 이모가 오락실로 찾아와 슬슬 나갈 준비하라고 말했다. 다 같이 추암 해수욕장으로 바람 쐬러 갈 예정이라 한다.
좀 더 게임을 하고 싶었지만 바다를 보러 간다는 말에, 우리는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다시 올라갔다.
위 이야기는 어릴 적 내가 동해에서 보낸 일상 중 하루를 표현한 것이다. 돌이켜 보면 당시 외할머니네 집은 우리들의 보금자리였다. 30년 이상 자리를 지켜온 덕분에 부모님들끼리 돈독한 관계를 맺고, 또 그 관계가 우리들 세대까지 이어져 내려올 수 있었다. 어릴 적부터 동해에서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기 때문인지내게 있어 강원도는,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언제나 가까운 곳이었다. 그래서 서울과 도쿄에서 일 할 때도 은연중 강원도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중 살고 싶은 동네를 꼽으라면 단연코 '동해'였다.
하지만 경제적인 여건과, 동해 인구가 10만 명이 채 안 된다는 점이 큰 걸림돌이었다. 이주 계획이 조금씩 구체화됨에 따라, 차츰차츰 현실을 알아갈수록 동해에서 살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수도권을 떠나 강원도로 가고 싶은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머릿속으로 수없이 고민했다. 그리고 마침내 결심했다.
"그래 강릉으로 가자"
그렇게 강릉에서 살기로 마음먹은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