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을 떠나 강릉에서 삽니다 -
새미의 성격은 참 섬세하다. 일단 움직이고 보는 나와는 다르다. 실행하기 전부터 하나하나 꼼꼼히 살핀 후에 마음에 들면 그제야 행동으로 옮긴다. 새미 말로는 실수 때문에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란다. 가급적 단 한 번의 움직임으로 일을 마치려는 소위 '완벽주의자' 유형이다.
언젠가 새미의 모습을 보고 감탄한 적이 있다. 그러자,
"아니야, 나는 우리 아빠에 비하면 허술해. 아빠는 계획을 세울 때 항상 플랜 A와 B를 짜거든. 그런데 그 계획이 얼마나 치밀한지, 지금껏 플랜 B까지 가는 경우를 본 적이 없어. 그런 점에서 보면 나는 한참 멀었어"
그렇다. 새미의 말에 따르면 아버님은 새미보다 훨씬 더 철저한 '완벽주의자'라 한다. 그런데 잠깐만?! 여기서 큰 문제가 발생한다. 그 말은 곧 우리가 강릉에서 살기 위해서는 이 빈틈없는 분을 설득해야 한다는 말이잖아?! 과연 가능할까?
우선 아무런 계획 없이 아버님을 만나는 건 금물이다. 어떠한 일이든 계획부터 세우고 시작하는 사람 앞에서 준비도 않고 나가는 것은 자살행위에 가깝다. 전장으로 치면 갑옷 없이 전쟁터로 나가는 꼴이다. 단 한 번의 타격으로 치명타를 입을 확률이 높다. 상대방은 갑옷은 물론이고 한 손에 방패를 꼭 쥐고 있는데 말이다.
강릉이주 계획을 짜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설명해야 아버님께서 허락해 주실까? 우리 둘 다 계획을 짜서 부모님을 설득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머리로만 이해할 뿐 어떤 방법을 동원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안 잡혔다. 머리를 부여잡고 몸을 뒤로 젖혔다. '뭐라도 떠올라라 좀!' 한참 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다 불현듯 어떤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우리 PPT 자료 만들어 볼까?!"
새미의 눈의 동그래졌다.
"PPT 자료?"
"응! 강릉에 관한 자료도 준비할 겸 계획을 세세하게 짜 보는 거야. 그리고 그를 토대로 부모님께 프레젠테이션 해 보는 거지. 어때? 좋은 생각이지 않아?!!"
결혼에 대한 허락을 받는 동시에 강릉 이주에 대한 내용을 PPT 자료로 설명한다? TV 프로그램이었을까, 어디에선가 양가 부모님에게 허락을 구하기 위해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라고 못 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그래! 만들어 보자!!
우선 우리가 수도권을 떠나 강릉으로 가야 할 이유 몇 가지를 추렸다. 내가 강릉으로 가고 싶은 이유, 새미가 강릉으로 가고 싶은 이유, 생활하면서 꿈꾸는 바를 적었다. 다음으로 강릉의 현 상황을 조사했다. 예부터 강릉은 어떠한 곳이며 인구 구성비, 지리적인 기후, 강릉을 대표하는 문화, 수도권과의 인접성 등의 정보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관련 내용을 차곡차곡 정리해서 슬라이드 안에 집어넣었다. 세 번째는 가장 중요한 주거 환경을 적었다. 우리 둘 다 강릉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집을 사서 생활하기가 불안한 것도 사실이었다. 강릉에 살면서 어떠한 상황과 마주칠지 모른다. 최악의 경우 정착하지 못하고 다시 수도권으로 돌아가는 사태도 고려해야 한다. 고민 끝에 이주 초반에는 전월세로 생활하기로 정했다. 네 번 째는 경제 활동에 관해서였다. 주거 못지않게 중요한 항목이다. 앞으로 강릉에서 어떠한 일을 할지 모른다. 그래서 대략적인 소득과 지출 비용만 설정하고, 그에 맞춰 생활해 나가기로 했다. 소득은 월 300만 원을 목표로, 지출은 월 200만 원으로 잡았다. 그래야 지출보다 소득이 더 커지니까 말이다. 이주 첫해 목표는 소득을 300만 원으로 정하고, 다음 해부터 차차 늘려가면 될 일이었다. 이것으로 강릉살이에 대한 내부 환경을 얼추 정리했다. 다음으로 외부 환경을 살펴보자.
앞으로 강릉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까? 우선 뉴스에서 다루는 남북 경협 3대 벨트 중 환동해 벨트에 주목했다. 향후 북한과 경제 벨트가 이루어지면, 동해안에서 러시아부터 시작해 북한, 일본과 활발히 교류하지 않을까? 그때 내 일본어 능력을 살려서 일해 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향후 산업의 흐름이 4차 산업으로 바뀌면서, 사람이 해온 일을 기계가 대체할 것으로 보였다. 그에 따라 수많은 일자리가 없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새미의 직업인 심리 상담은 기계가 대체하기 어려운 직종이다. 앞으로 많은 사람이 찾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강릉이라면 새미의 능력이 더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가 일할만한 정보를 추려내 PPT 안에 적어 넣었다.
마지막으로 정부 지원 정책을 알아보았다. 정부 및 지차제 육아 지원은 얼마만큼 지원하며, 강릉시에서 어떠한 정책을 펴고 있는지 살펴봤다. 그 결과 강릉에서 아이를 출산하면 정부와 지차제 합산해서 매달 약 60만 원을 지원해 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 외 출산 지원금 및 신혼부부 풍진 무료 검사도 있었다. 정부 지원정책은 이주하는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알아두면 좋은 정보들만 모아 적었다. 부모님께 발표할 자료는 얼추 모았다. 이만큼이면 두 분을 설득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무언가 잊은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 맞다! 플랜 B를 세워야지!' 만약 우리가 강릉에서 생계유지가 힘들거나 적응하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강릉에서 경제 활동이 어려울 경우 속초, 동해, 원주 등에서 직장을 찾으며 안정적인 수입을 유지하겠다는 보안책을 마련했다. 그리고 초반에는 아무래도 강릉 생활이 익숙지 않을 터였다. 그럴 때를 대비해 강릉에서 새로운 친구 사귀기, 가족 및 친구 손님맞이, 국내외 여행을 통해 차츰 적응해 나가겠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행복주택 결과가 발표된 날로부터 2주 동안 강릉이주 PPT 자료를 만들었다. 중간중간 내용을 삭제하거나 덧붙였다. 여러 번에 수정 작업 끝에 겨우 완성! 남은 것은 양가 부모님을 설득하는 일뿐이다. 당장이라도 양가 부모님께 PPT 자료를 보여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전 연습도 필요하고 또 어느 정도 형식을 차린 자리에서 보여드려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양가 부모님께 언제 식사할 수 있는지 여쭤 보았다. 그리고 날짜가 잡혔다.
2월 17일 우선은 내 부모님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