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을 떠나 강릉에서 삽니다 -
2018년 연말. 새미와 함께 강릉으로 여행 갔을 때의 이야기다. 중앙시장에서 사 온 저녁거리로 두둑하게 배를 채운 우리는, 바람도 쐬고 마실 것도 살 겸 가까운 편의점으로 향했다. GS 편의점 하나가 50여 미터 앞 건너편에서 환히 빛난다. 그 앞으로 횡단보도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데 길이가 이십 미터도 채 안 돼 보일 정도로 짧다. 신호등도 없겠다, 걷는 속도를 멈추지 않고 그대로 횡단보도를 향해 발을 내딛을 때였다. 양옆 차선으로 헤드라이트를 켠 자동차들이 맹렬한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부아아아앙’ 하며 울리는 차소리에 황급히 발걸음을 멈추고 뒤로 물러섰다. 이윽고 두어 대가 지나가고 뒤이어 자동차 서너 대가 더 지나갔다. 신호등 가까이에 조명이 적어 어두컴컴했기 때문에 무턱대고 건너기는 위험해 보였다. 하는 수 없이 자동차가 다가오는지 살피면서 건너갈 타이밍을 쟀다.
자동차 한 대가 더 지나갔다. 그 다음으로 오는 차는 없어 보인다. 저 멀리서 불빛을 비추며 달려오지만, 이곳까지 오려면 10초는 걸릴 듯하다. 지금이다 가자! 우리는 손을 꼭 잡으며 서둘러 뛰었다. 이번에는 무사히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런데 빠르게 뛰다보니 살짝 숨이 차 오른다. 잠시 걸음을 멈춰 숨을 고른 다음 다시 편의점을 향해 걸었다. 그 순간이었다. 옆에 있던 새미가 돌연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는 갑자기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 깜짝 놀라 다가가자 새미는 한 손으로 가슴을 부여잡은 채 몹시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혼란스러운 감정에 휩쌓였다.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지? 방금 전까지 서로 손잡으며 기분 좋게 걷고 있었는데?! 저녁에 피자 먹어서 순간적으로 속이 막힌걸까?!' 나 혼자 이런저런 안 좋은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새미가 기운을 짜 내어 힘겹게 말을 꺼냈다.
"하아 하아... 괜찮..아... 오빠..."
나는 새미의 말에 답하면서, 천천히 다음 말을 꺼낼 때까지 기다렸다. 얼마 후 호흡을 되찾은 새미가 말을 꺼냈다. 예전에 발발한 부정맥 증상이 다시 나타난 것 같다며.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조금 전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새미가 한 말에 따르면 부정맥 증상이 처음 발현한 시기는 그해 1월이다. 원인은 과중한 업무로 인해 쌓인 스트레스. 당시에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심장이 빨리 뛰거나 숨이 잘 안 쉬어졌다고 한다. 심지어 증상이 심각할 때는 자기 방에서 거실까지 걷는데도 숨이 찼다고 한다. 부정맥 때문에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것조차 버거웠다. 당연히 업무에도 차질을 빚는 상황이 발생했다. 하는 수없이 상담 센터 소장님과 병원 원장님께 사정을 말하고, 당분간 신규 상담 케이스는 받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는 한약 첩을 마시면서 몸 상태를 회복해 나갔다.
그 후로 여러 달이 지났다. 충분한 휴식을 취한 덕분인지 새미의 몸이 차츰 나아졌다. 덕분에 우리가 처음 만난 그해 7월에는, 격한 유산소 운동을 제외하면 일생 생활 하는데 있어 큰 문제가 없었다. 그랬는데, 약 1년 만에 부정맥 증상이 재발한 것이다. 새미는 덤덤한 어조로 부정맥을 겪어온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약간의 자책감이 섞여있었다.
여행을 다녀온 후, 새미에게서 연락이 왔다. 놀이치료사의 꿈을 키우며 일한 곳이자, 스스로에게 마지막 직장이 될 것이라 여긴 센터에 관한 이야기였다. 최근 센터에서 추구하는 방향이 자신과 맞지 않아, 근무하는 데 있어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동안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부분에 대해 말을 이어가던 새미가 돌연 조용해졌다. 그리고는 조금 망설이는 말투로 내게 말했다.
"오빠, 우리 강릉에서 살까??"
그렇게 우리의 강릉행이 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