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릉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3부)
일본에서 같이 대학교를 다닌 정환이 형한테서 결혼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장소는 힐튼호텔 부산지점이었다. 서울에 살았다면 고속열차를 타고 슝 하고 당일치기로 갔다 오겠지만 지금 내가 사는 곳은 강릉이었다. 고속도로를 타고 가려면 원주까지 멀리 돌아가야 했고, 양양 공항의 비행기도 코로나19로 인해 운영을 쉬었다. 다행히 1차 유행으로 우리에게 극심한 공포를 부른 코로나 사태는 점차 나아지고 있었다. 확진자는 여전히 나왔지만 확산세는 줄어드는 추세였다. 정부의 발 빠른 방역조치와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덕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사태는 아직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몸을 사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혼식에 못 가도 이해해줄 터였다. 하지만 형의 결혼식을 무심코 지나치기에는, 형은 내게 너무 소중한 존재였다.
형을 처음 알게 된 건 대학교 신입생 때였다. 같은 년도 같은 대학에 입학한 우리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계기로 서로 안면을 텄다. 초반에는 수업도 같이 들었으나 서로 학부가 달랐기 때문에 3학년 끝 무렵까지 좀처럼 어울리지 못했다. 실제로 친해진 건 4학년으로 올라가면서부터였다. 평소 형은 사람과 이야기 나누고 토론하는 걸 즐겼다. 스스로 확고한 가치관을 지녔고, 상대방의 의견이 자신과 달라도 존중할 정도로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졌다. 자기가 선호하는 사람을 소유하거나 명령하려 하지 않고 방목하듯이 믿고 자신한테 올 때까지 기다렸다. 사고방식이라든지 사람을 대하는 자세가 나와 비슷했다. 무엇보다 사람이 참 나긋나긋하고 여유로웠다. 옷 스타일은 새련되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구수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형이 좋았다. 형도 내게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지 나를 꽤 아꼈다.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 우리는 서로의 소울메이트가 되었다.
결혼식에 대한 연락을 받은 다음 둘이서 의논했다. 새미도 예전에 정환이 형, 형수 님되는 사람과 어울려 논 적이 있어서인지 결혼식에 가고 싶어 했다. 고민은 짧았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7번 국도를 타고 해안선을 따라 부산까지 운전하기로 했다. 7번 국도는 고성 통일 전망대에서 부산 중구에 이르기까지 강원도와 경상남도를 잇는 도로를 일컫는다. 도로 대부분이 바닷가와 인접해서 해안가 도로라고도 불린다. 고속도로만큼 빠르지는 않지만, 바닷길을 따라 운전할 수 있어 영동지방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받은 곳이다. 나 또한 초등학생 때 부모님을 따라 7번 국도의 경치를 자주 감상했다.
강릉에서 부산의 숙소까지 거리는 약 350km였다. 바닷가를 보면서 운전할 거라 흥겨운 노래를 틀으며 룰루랄라 신나게 출발했다. 목적은 형의 결혼식이었지만 절반은 여행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아무 데도 못 가고 갑갑한 마음만 쌓였었다. 이번 기회에 좀 풀러 가야지. 내비게이션에서 부산까지 약 5시간 걸린다고 나왔다. 차근차근 나아가야지.
동해에서 고속도로 구간이 끝나고 곧바로 7번 국도로 이어졌다. 2차선으로 정비된 7번 국도는, 주변 지형물이 낮아서인지 탁 트인 시야감을 뽐냈다. 왼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넘실넘실 대는 바다가 펼쳐졌고, 오른쪽으로는 모내기를 끝낸 논의 모습이 보였다. 날씨는 화창했고 햇살은 강렬했다. 햇살의 세기가 어찌나 강하던지 조수석에서 이리저리 몸을 틀며 햇빛을 피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좌석에서는 앞뒤로 밖에 움직이지 못했다. 할 수없이 움직임을 멈추고 현실에 순응했다. 이마에 땅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어린 시절 돋보기로 햇빛을 모을 적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아, 지금 내가 지져지고 있구나.' 언덕을 오르내리락 할 때마다 왼쪽으로 숨어 있던 바다가 모습을 드러냈다. 암벽, 소나무 군집과 함께 바라보자 기막히게 예쁜 풍경을 자아냈다. 새미와 이야기하며 풍경을 감상하며 운전했더니 피곤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쉬지 않고 부산까지 주욱 운전했다. 여행이라고 기분이 들떴기 때문이리라.
이른 저녁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놓은 다음 곧바로 부산 수영동의 유명한 막창 가게로 향했다. 가게 주인 분이 추천해주신 대로 모듬 곱창을 주문했다. 대창, 염통, 양과 감자, 호박, 팽이버섯을 볶아서 먹었다. 종업원 분이 큼직큼직하게 잘라준 덕분에 식감이 좋았다. 부산 소주 '대선'과 함께 먹으니 맛이 기가 막혔다. 이토록 기름기 있고 맛 좋은 곱창을 얼마 만에 먹어보는지. 새미랑 기분 좋게 먹고 그대로 바다로 향했다. 편의점에서 산 맥주를 마시며 광안대교와 바다를 번갈아 봤다. 해변 공원에 기타를 들고 버스킹을 하는 사람도 보였다. 주위에 사람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잔잔한 물결과 더불어 들리는 노랫소리가 감미로웠다. 노래가 끝남과 동시에 맥주를 한 모금 홀짝였다. 기타의 선율을 뒤로한 채 느릿느릿한 발걸음으로 호텔로 향했다.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과음했기 때문이었을까, 오랫동안 운전대를 잡았기 때문이었을까.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씻으러 욕실로 향했다. 옆에서 곤히 자던 새미 또한 잠에서 깼는데, 한동안 무거운 눈꺼풀을 뜨다가 다시 감았다를 반복했다. 이내 졸린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깨어났다. '체크아웃이 1시간도 안 남았다. 슬슬 씻고 나갈 준비 해야지.'
바다 바로 앞에 위치한 웨딩홀은 바닷가 주위 경치와 조화를 이뤄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바다를 바라보며 수영장에서 수영도 가능한 이색적인 공간이었다. 형은 예식장 문 앞에 서서 방문하는 손님에게 하나하나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식장에 도착한 우리들과 눈이 맞았다. 형이 활짝 웃으며 반갑게 맞이했다.
"먼 길 와줘서 고마워. 어때, 좀 쉬었나?!"
"그럼요. 형님 결혼식인걸요. 어제 밤늦게까지 바다 바라보며 푹 쉬었죠. 정말 축하드려요."
"고맙다. 혜진이 안에 있으니 가서 인사하고 온나."
형과 짧은 대화를 주고받은 다음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신부 대기실에서 앉은 형수님이랑도 반갑게 인사를 나눈 우리는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식장으로 이동했다. 이윽고 1시 정각이 되고, 문이 열리면서 형과 형수님이 차례차례 식장으로 들어섰다. 스몰웨딩처럼 작은 식장이다 보니 지척에서 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표정에서 긴장감이 서렸다. 결혼식은 약 40분 동안 무사히 진행됐다. 식장을 나갈 때 주위 사람들도 박수를 치며 꽃을 뿌리며 둘의 결혼을 축하했다. 나도 박수를 치며 속삭였다. '정말 축하해, 형.'
다시 연회장으로 돌아와 식사 시간을 가졌다. 호텔에서 직접 만든 코스요리라서 그런지 애피타이저부터 메인 요리, 디저트까지 흠잡을 데 없이 전부 맛있었다. 와인도 제공됐다. 다만 강릉까지 운전을 해야 해서 음료수로 목을 축여야 했다. 카아 아쉬워라. 식전 빵이 딱 내 취향이어서 2번이나 리필해 먹었다. 식이 끝난 다음에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니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그런데 너무 먹은 탓인지 노곤함이 몰려왔다. 아니면 어제오늘 강행군한 피로가 몰려오는 거였을까. '안되는데, 오늘 강릉까지 운전해야 하는데.' 새미를 보자 평소의 생기발랄한 모습과 달리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눈에 띄었다.
예정대로 모든 행사가 끝나고 형한테 다시 한번 축하 인사를 건넨 뒤 자리를 나왔다. 지금 시간은 3시 정각. 쉬지 않고 집까지 운전하면 8시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부산에 온 상태로 다시 되돌아가면 그만이지만, 문제는 몸상태였다. 우리 둘 다 장시간 차로 이동하고 밤늦게까지 놀다 보니 피로감이 쌓여 있었다. 쌓인 피로가 채 풀리지도 않은 책, 7번 국도길을 올랐다. 어제 그렇게나 예뻤던 바다와 풍경이었다. 하지만 피로감이 눈앞을 가려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대화도 거의 없었다. 졸음운전을 피하기 위해 이따금 말 한마디 건네는 거 빼고는 조용히 음악을 들으며 운전할 뿐이었다. 번갈아 운전하면서 어서 빨리 강릉이 나타나길 간절히 바랐다. 3시간을 운전한 끝에 울진까지 올라왔다. 졸음 쉼터에서 시트를 뒤로 젖히며 새미에게 말했다 '앞으로 차로 부산까지 가는 건 보류해야겠어. 다음번엔 비행기 타고 가자. 아 힘들어." "응 그래야겠어." 강릉살이의 새로운 면을 또 하나 알아간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