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내가 살던 동네에는 리어카에 바나나와 딸기를 싣고 다니며 과일을 파는 아저씨가 있었다. 쉰 목소리 같으면서도 갈라지지 않는, 특이한 발성으로 동네 사람들 모두 그 아저씨를 알았다.
“바 나나...”
한 박자 쉬고,
“따알기!”
‘따’에서 ‘ㄹ’ 받침으로 꺾어 들어가는 그 소리는 마치 성악의 기교 같았고, 동네 구석구석 골목마다 울려 퍼졌다.
청주시 봉명2동.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그 동네에서 바나나 딸기 아저씨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초등학교를 봉명2동에서 다녔고, 중학교는 조금 먼 신봉동에 있는 곳을 가게 됐다. 그때 알았다. 바나나 딸기 아저씨의 나와바리는 운천동, 신봉동에까지 미쳐 있었고, 심지어 봉명1동에도 출몰한다는 사실을 그 동네 친구에게 들은 후에 알았다.
나는 그 아저씨에게 바나나도 딸기도 사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그 소리는 지금까지도 귀에 선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바나나는 사계절 유통되는 과일인데 딸기는 철이 있다. 딸기가 안 나오는 계절에도 바나나 딸기 아저씨는 여전히 '바나나 딸기'였다.
피리를 부는 사나이처럼, 아저씨가 '바나나 딸기'로 자신의 등장을 알리면 동네의 개구쟁이들은 아저씨를 따라붙었다. 아저씨가 '바나나' 하면, 짖궂은 아이들은 '딸기'를 후창했다. 보통의 어른이라면 화낼 만도 한데, 아저씨는 웃으며 받아주었고, 때로는 “야, 너 잘한다” 하고 칭찬도 해주었다.
중학생 정도 되는 소년들은 제법 그 아저씨의 모창이 훌륭했다. 성대를 긁어내는 듯한 소리가 나야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소년들은 담배를 피우고 있었던 게 아닐까. 어린아이가 흉내 내기엔 뭔가 고단한 숨이 섞여 있었다. 그건 삶의 무게가 만들어낸 소리였다.
세월이 지나고, 나는 이 아저씨에 대한 풍문을 전해 들었다. 새벽에는 청과시장 경매장에서 경매 일을 하시고, 남은 과일을 리어카에 싣고 팔며 그 수익을 좋은 일에 쓰셨다고 한다.
바나나 딸기 아저씨는 이제 어디에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