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는 않지만 사라지지 않는 말

병오년, 말(馬)의 해를 맞으면서 말과 관련된 역사의 흔적을 찾아본다.

by 권건후

올해 2026년은 말의 해, 병오년(丙午年)이란다. 불의 기운의 희망을 얘기하며 붉은말의 해라고 한다. 물론 설날, 음력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아직은 말의 해는 아니다.

현대에는 말을 동물원, 승마장, 경마장에서 만날 수 있는 보기 힘든 존재가 되었다. 중세까지 말은 운송과 교통, 군사 수단으로 인간하고 밀접한 관계를 맺고 인류 문명 발전을 함께 한 동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존재감이나 필요성이 많이 사라졌다. 사람에게서 잊혀가고 있다. 칭기즈칸에게 몽골의 말이 없었다면 인류 역사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을 것이다. 삼국지 여포의 적토마, 경주의 천마총, 고구려의 벽화 속에서 말은 인간과 함께 역사를 함께 했다. 전쟁의 화신으로 말은 인간의 수단으로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하여 왔다.

유형적인 말(馬)의 모습과 존재는 사라지고 있지만 현대 문명 속에 아직도 말(馬)은 달리고 있다. 중세 전쟁이나 운송에 사용하던 마차 바퀴 폭이 약 1,430~1,450mm이었단다. 현재 KTX 철도 선로 폭이 1,435mm라고 한다. 마차는 약 5,000년 전부터 사용되었으니, 지난 5천 년 동안 마차는 계속 달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현대 철도 폭이 과거 마차에서 기인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달리는 말은 사라지고 있지만 마차는 아직도 달리고 있다는 증거이다.

말(馬)은 현대 산업뿐만 아니라 과학, 공학에도 살아 숨 쉬고 있다. 마력(馬力)이라는 동력 단위가 자동차, 동력기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 마력을 hp로 표기하고 horsepower에서 유래되었다. 동력 단위로 마력이 일상생활에 많이 사용되고 있다. 마력을 와트로 단위 변환을 할 수 있으니, 공학단위에 말(馬)이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1765년 당시 영국산 말(馬) 한 마리가 할 수 있는 일률을 1마력으로 규정하면서 유래되었다.

우리에게 잊혀가고 있고 굳이 알 필요도 없는 마력, 그리고 KTX 선로 폭에서 말이 아직도 우리 주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붉은말의 해, 천리마(千里馬)를 타고 먼 나라로 떠나는 죽마고우(竹馬故友)에게 말을 건넨다. 길이 멀수록 속도보다 방향을 먼저 살피라 했다. 주변의 조언을 마이동풍(馬耳東風)처럼 흘려보내지 말고, 바쁘다는 이유로 세상을 주마간산(走馬看山)하듯 대충 넘기지 않기를 당부했다.

가짜가 진짜의 얼굴을 하고 서 있는 지록위마(指鹿爲馬)의 세상에서, 무엇을 믿고 무엇을 의심해야 할지는 결국 자신에 달려 있다. 남들이 정해준 답보다 스스로 수용할 수 있는 기준 하나쯤은 품고 살았으면 했다.

세상사는 끝내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했다. 기쁜 일에 지나치게 들뜨지 말고, 슬픈 일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 마음.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않는 태도로 살아가길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돌아올 때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가을처럼 겉은 담담하되 속은 충분히 여문 얼굴이기를, 먼 길을 다녀온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깊이를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