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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uisKurts Nov 15. 2020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하나여서

진정한 사랑을 담고 싶어

   "요즘 맘에 드는 여자 없어? 슬슬 연애해야지." 또다시 비슷한 질문이 들어왔다.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괜찮은 사람 있으면 소개해주세요.'라며 애써 화재를 전환시켰다. 사실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단순히 감정에 휘말려서 아무나 만나고 싶지 않았다. 지금 당장 외로운 감정이 느껴진다고 해서 아무나 붙잡고 사귄다거나 한다면 일 년 반이라는 시간이 넘는 동안 애써 그토록 외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연애를 못해본 것도 아니고 꽤나 긴 시간 동안 연애도 해봤는데도 연애를 한참 하지 않다 보니 누군가를 좋아한다거나 무언가를 잘해주고 애틋한 감정으로 바라보고 느낀다는 게 무척 쑥스러운 느낌이 든다. 그래서 애써 누군가가 소개팅을 해준다고 하면 지금은 아닌 것 같다면서 나중에 때가 되면 받아볼게 라고 거절한다. 그렇게 거절하기를 수 차례 너무 거절하다 보니 이젠 소개팅도 잘 들어오질 않는다. 이제 와서 '좋은 사람 소개 좀 해 줘 봐.'라고 물어보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나 다름없다.


   순정파는 아닌데 순정파인 것 같기도 하다. 참 부끄럽지만 한 여자를 5년 내내 좋아하기도 했다. 서로 좋은 감정은 있었다 분명. 그런데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말이 정말 와 닿듯 아무리 노력해도 이어지지 못하는 인연도 있었다. 그분과 끝맺음을 맺으며 더 이상 누군가를 쉽게 좋아하거나 만나는 일은 없겠다고 생각하며 큰 좌절을 겪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참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시간이 지나자 또 다른 사람은 우연히 나도 모르게 다가왔다.


   우연히 합격하게 된 인턴 프로그램에서 만났던 여성분과, 정말 아무 사심 없이 교환한 전화번호가 시작이 되어 연락을 주고받게 되었다. 나는 인천이었고 그녀는 부산이었지만 장거리도 좋다 믿었다. 아니, 장거리 연애였기에 더 애틋함이 컸고 만나면 만날수록 부족함을 채워주는 사람이었다. 활력이 넘치고 내가 만날수록 더 사람다워지는 사람의 느낌을 만들어주는 사람이었다.


   그런 감정이면 충분하다 믿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년이 지났을 무렵, 그녀는 취업을 위해 일본으로 떠나 생활한 지 2년이 되었다. 정말 딱 사귀기로 한 시점부터 줄곧 일본 생활을 시작했었다. 마음의 거리는 멀어졌지만 분명 마음은 더 강렬히 원했었고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사람을 만나 적당한 시기에 느끼는 이 감정이 시작되어 적당히 결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우연히 툭 던져본 결혼 이야기에 그녀는 시큰둥했다. 그녀는 아직 29이라는 나이가 결혼하기에 이른 것 같고 앞으로도 당분간 결혼 생활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 그토록 단호하게 말하는 건 처음 봐서 알겠다고 하고 더 이상 그 이야기는 꺼내지 못하게 되었다. 마음속 한편에 고이 모셔 둔 판도라의 상자와도 같은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생활은 달라진 것은 없었다. 십여 년 전 장거리 연애였다면 국제 전화 때문에 전화 비용이 많이 나오고 만나는 일도 너무 부담스러웠겠지만, 좋은 통화 수단이 많이 개발되고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으면 언제든 전화와 유사하게 상시 통화할 수 있었던 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관계를 끈끈하게 이어가게 했다.


   평소 여행을 좋아했던 그녀는 휴가 때면 여행을 같이 가자며 졸라댔다. 좋아하는 사람과 여행을 가는 것이 싫을 리 있겠는가. 알겠다고 웃으며 여행을 계획했다. 그런데 스케일이 조금 달랐다. 괌을 가자고 했다. 당시 사회 초년생이나 다름없던 내게 있어 괌을 여행할 정도의 돈이 수중에 없었다. 아니,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우려가 앞섰다.


   "우리, 안 그래도 자주 못 만나는 상황인데 괌 갈 정도면 차라리 그 돈으로 나눠서 조금 더 자주 만나면 어떨까? 내가 더 자주 일본에 놀러 갈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오빠가 정 못 가겠다면 나 혼자라도 갈 테니 갈지 말 지 결정을 하라는 것이었다. 연말에, 연초에 새해는 해외에서 보내고 싶다고 극성인 여자 친구를 마냥 제지할 수 없어 수 일을 고민 끝에 알겠다며 승낙했다. 여행은 너무나 즐거웠다. 보고, 듣고, 즐길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을 정말 원 없이 할 수 있던 너무나 행복한 순간이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처음 발을 딛고 만난 세상은 정말 환상적이라는 말 자체가 아깝지 않았다.









   짐을 한가득 풀고 행복한 여행을 다녀온 이후 공허함이 앞섰다. 걱정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제 더 자주 보기는 어려울 텐데, 이제는 더 오랜 시간 장거리를 할 수밖에 없을 텐데 하는 우려가 앞섰다. 그녀는 까짓 거 한두 달 더 못 보는 게 무슨 대수냐며 우리 사이에 더 즐거운 추억이 쌓였다며 좋아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절로 기분이 좋아져 장난을 치고 전화를 하며 서로 위안을 했다. 못 보는 건 잠깐이지만 우리 마음은 항상 곁에 있었으니까.


   여행을 다녀온 이후 2달간 일본 갈 계획을 도저히 세울 수가 없었다. 앞으로 언제 갈 수 있을지 계획을 세울 수가 없었기에 더 답답했다. 2달이 지나자 그녀로부터 푸념이 뒤섞여 나왔다. 관심이 없냐며 왜 올 생각을 하지 않느냐는 그녀의 말에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다른 커플들 한 달에 열댓 번을 만나는 금액이나 우리가 한 두 달에 한 번 만나는 금액이랑 비교하면 비슷한 금액이지 않냐는 말에 입을 뗼 수가 없었다. 맞는 말이다. 마음 한켠이 더 아렸다. 조금 더 허리를 졸라매면 3월에 일본을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아서 여행 계획을 다급히 잡았다.


   빠듯한 일정이었지만 지금 만나지 않으면 다음번이 언제일지 가늠이 오지 않았다. 걱정스러운 맘이 앞섰지만 굳이 내색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여행인 만큼 더 즐겁게 놀다 오고 싶었다. 행복하고 좋은 만남만 이어져도 부족 할판에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던 탓이다.


   그녀를 만나자마자 환하게 웃고, 여행을 시작했다. 평소 가보고 싶었던 데이트 코스나, 좋아하는 브런치와 음식을 먹으며 힐링을 했다. 조용한 숲 속 길을 걸으며 자유를 느꼈고 평소 느꼈던 답답함을 저 멀리 털어내다. 귀여운 캥거루도 보면서 사진도 여러 장 찍었다. 그곳에는 추억이 깊게 담겼다.


   2박 3일의 아쉬운 짧은 여행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더 열심히 살기 시작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음에 감사했고, 조금 더 좋은 관계로 이끌고 싶었다. 무엇보다 이번 관계를 시작하면서 다짐했던 것 중 하나는 '후회 없는 연애'를 하자였다. 더없이 잘해주고, 부족한 게 있으면 채워주고 싶었다. 그게 사랑이라 믿었다.


   4월이 되자 다음번 만남은 언제냐며 묻는 그녀에 이번에는 더더욱 답을 하기가 어려웠다. '이럴 거면 괌 가지 말자고 할 때 내 말 좀 듣지...'라는 푸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가 끌어내렸다. 애써 맘을 다스리면서 조금만 더 있다가 만나러 갈게라는 말을 어렵사리 전하고 고개를 떨궜다.


   그녀는 5월 초 일본 황금연휴에 캐나다와 미국 여행을 다녀오겠다 했다. 마음이 울컥했다. 평소 친구나 가족을 못 봐서 울컥했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기에 그 시간에 차라리 소중한 가족이나 한 번 더 봤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나도 모르게, 평소 그렇게 가족이나 친구들 그리워하면서 그런 시간에 혼자 여행가지 말고 가족들과 친구들과 시간을 좀 보내는 게 더 낫지 않겠냐며라고 말했다.


   이런 황금연휴는 자주 오는 게 아니라며 가족들이나 친구는 주말에 보면 되는 것 아니냐며 이럴 때 여행을 가야 한다면서 준비를 서둘렀다. 어찌나 여행을 서둘렀는지 옆에서 보는 내내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같이 갈 생각 없으면 내 여행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라는 얘기에 더 이상 이야기를 잇고 싶지가 않아졌다. 입을 꾹 다문 순간 나는 그 옆에 없었다.


   한국에는 모처럼 생긴 긴 휴가 기간이 있었다. 6월 무렵이었는데 그녀가 긴 휴가 때 뭐 할 거냐며 물었다. 당연히 일본에 너 보러 가겠다며 웃으며 얘기했다. 평일날에도 가서 출근하고 나면 카페에 가서 평소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겠다고 했다.


   그녀가 대뜸 그러지 말고 일본 여행을 가자고 했다. 평일 오빠 혼자 있어 뭐하냐며 나도 휴가를 내겠다 했다. 마음은 너무 고마웠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이번 여행만큼은 더 부담을 스스로 갖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그녀를 보는 것 하나만으로 만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럴 거면 오지 마.. 나도 여행을 하고 싶지 내 주변 동네만 돌아다니는 거 싫어."


   숨이 탁 막혔다. '너 하나만 보고 싶어'라며 가려고 했던 만남에 의미를 찾기가 어려워졌다. 최선을 다하고 싶었던 마음과는 달리, 너무 최선을 다했던 것인 걸까 아니면 부족함이 배가 됐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조용히 전화기 종료 버튼을 누른 채 휴대폰을 닫아버렸다.








   인생을 살다 보면 뜻하지 않는 상황에 자주 맞닥트린다. 그곳에서 얻는 교훈이 때로는 좋은 경험이 되어 자양분을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좋지 못한 결론을 내리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 관계도 그렇다. 너무나 좋아서 만난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때로는 너무나 실망한 채 끝이 나버릴 수 있다. 첫인상이 별로였던 사람도 보면 볼수록 매력을 느껴서 어느 순간 호감형이 된 사람의 사례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큰 일련의 사건을 겪고 보니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이가 말하길 사랑의 회복 기간은 만난 기간만큼의 회복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누구를 만나도 흥미가 돋지 않고 이따금씩 잃어버리는 의욕도 그 때문이지 않을까 스스로 반문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내 생활에 만족을 누리기 시작했고, 일 년 반이 훌쩍 지난 지금 혼자서 글을 쓰는 재미에도 자기 계발을 하며 성장하는 재미에도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스스로 성장하는 것을 지켜본다는 것은 꽤 흥미로운 일인데 처음에는 소소한 변화였지만 돌이켜보면 많은 변화가 있었다.


   잃었던 식욕을 회복하고, 의욕을 다지면서 주말이면 10KM가량 되는 산을 왕복했다. 숨이 목 끝까지 차올라서 더 이상 오르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면 잠깐 쉬었다가 다시 정상을 향하는 일을 반복했다. 할 수 없고 나약해져서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면 잠깐 앉아서 뒤를 봤다가 '어? 이만큼이나 왔네'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다가 다시 올라가기 시작한다.


   스스로 상념에 빠져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글귀를 메모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떠올리며 내가 쓰고 싶은 글에 대한 방향을 정하고 하고 싶은 글을 원 없이 펼쳐 써 내려갔다. 글이 좋은 이유는 생각을 정리하는 힘이 있고 자신의 후회와 아쉬움을 다시 한번 정리하는 데 있다. 원 없이 휘갈기듯 글을 적고 나면 마음이 한결 후련해졌다.


   또한, 평소 가고 싶었던 기업의 이직도 성공했다. 연봉도 부쩍 오르게 되었고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타이밍인 아닌듯싶다. '나 다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괴로움에 허덕일 때 받았던 첫 소개팅에 어렵사리 참여해서 만났을 때, 상대방으로 하여금 내 위로를 달래고 싶었다. 진짜 만나고 싶은 감정보다도 상대방이 내게 위로를 해주고 감정을 달래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3번을 만났다. 도저히 감정이 생기지 않았고, 상대방에게도 무례한 일이라 더 이상 만남을 지속할 수 없었다.


   친한 친구가 말하길 여태 그 감정을 가지고 있냐며 내게 묻는다. 이제는 '지금은 거의 다 왔다'라 화답한다. 스스로 무언가를 도전할 힘이 생겼고, 하고 싶은 일이 생겼고 도전 의지가 생겼다는 것은 서서히 변화하고 있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리라.


   열렬히 사랑했다.

   열렬히 사랑하는 중이었고

   열렬히 사랑할 것이다.


   이젠 영영 덮고 다시 펼쳐보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하나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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