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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uisKurts Oct 06. 2021

사랑은 코스모스와 같다

빵과 소녀 그리고 소년


누군가가 마음에 들어오는 것은 찰나의 순간이다. 아무런 의식도 하지 않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어느 순간 긴장도 기대도 하지 않고 있던 어느 순간 공허하게 비어있던 공간이 서서히 채워지기 시작한다. 조금씩, 티 나지 않게 채워지던 감정은 어느덧 폭포수처럼 거대해지고 마음의 깊이는 점차 커지기 시작한다.


커진 마음은 때론, 쉽사리 거부하기도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다가와있다. 사소한 행동조차도 아주 특별하게 느껴지고 그녀의 행동 하나에도 온갖 의미부여를 댄다. 나에게 말한 지나가는 한 마디 조차 아주 간절하게 느껴지고 행동 하나하나에 모든 의미부여를 두게 되기도 한다.


어렵다는 걸 안다. 부담스럽지 않으려, 부담스러운 사람이 되지 않으려 신경이 곤두선다. 공교롭게도 그럴수록 신경이 곤두서는 기분이다. 아무렇지 않은 척, 쿨하고 멋지고 여유로운 사람인 척척을 해보지만 그럴수록 마음은 곪고 혼란만 가중된다.


사랑이란 아주 서서히 가을 코스모스 꽃냄새와 같다. 특별히 화려하지도, 우아하지도 않지만 수수하면서도 반짝이는 아름다움이 사람을 설레게 한다. 특별히 빛이 나지는 않지만 연한 분홍빛의 매력은 볼수록 빠져들게 만든다.      


사랑은 마치, 따스한 햇볕의 볕처럼 은은하지만 선한 행복을 만든다.          









              

늘 지나는 빵집 앞을 지나갈 때면 고소하고 바삭한 냄새 때문에 발길을 멈추고 가게로 들어선다. 고소한 마늘바게트 향은 가게를 덮고 기분 설레는 향을 만든다. 나무 쟁반 위 얇은 종이한지 한 장을 깐다. 산뜻하고 정갈하게 정리된 가게를 보면 괜히 느껴지는 기분 좋은 설렘에 신이 나서 가게를 둘러 다닌다.


매번 먹는 메뉴는 같지만 오늘은 괜히 어떤 신상 빵이 나왔는지 한 번 더 둘러본다. 튀김소보로 하나를 담고 마늘 바게트를 담긴 테이블을 바라보니 한 여성분이 서있다. 괜히 근처에 가면 부담스러워할까 싶어 살짝 쳐다보다가 다른 일을 하는 척 고개를 돌렸다. 먼저 사고 나면 다음에 사야지… 괜히 다른 메뉴를 툭툭 건드리며 방황한다.


한참을 서성이며 고민하는 듯하다. 뭘 고민하는 걸까 싶어 한참을 쳐다본다. 가만 보니 참 예쁘게 생겼다. 뽀얀 피부, 앳돼 보이는 얼굴, 몇 살 쯤이나 됐을까. 어깨까지 내려오는 단발 버리가 잘 어울리는 여자였다. 살랑이는 분홍빛 원피스가 화려하진 않지만 수수하고 선한 느낌을 자아냈다.


웃음이 났다. 아니, 그냥 보고만 있어도 자꾸 보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빵 짚는 걸 잊고 멈칫한 채 한참을 뚫어보다가 순간 ‘홱-!’하고 돌아선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다급하게 빵을 집고는 계산대로 이동했다. 


‘아차-!’하며 순간 손을 내밀었다가 멈칫하고 자리에 섰다. 그러려던 것은 아닌데 괜히 마음이 신경 쓰였다. 정말 흔하디 흔하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여자였다. 평소에는 크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스타일이었지만 왜일까, 좋아하는 빵 앞에서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괜히 눈길이 한번 더 갔다.


아주 특별하지 않았지만 특별했다. 별거 아닌 느낌이었지만 순간 다가온 마음 때문에 자꾸 신경이 쓰였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바게트를 잘라달라고 요청하고 이내 포장하고 가게를 떠났다.


 괜한 허망함이 밀렸다. 말 한마디 못해보고 멍청하게 떠나보낸 것 같아서 아쉬움이 컸다. 조금 더 용기를 내서 가게 앞에서라도 붙잡고 번호라도 물어볼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괜한 두려움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생각이 들어서 괜히 짜증이 났다.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행동이라도 보였더라면 오히려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나서 괜한 신경질이 났다. 사실, 번호를 물어봤다고 한들 뭐 달라졌겠나 싶은 생각에 한숨 한 번 쉬고 계산을 했다.


“오늘도 마늘 바게트 구매하시네요?”


“네, 이게 맛있더라고요.”


“오늘도 썰어드리면 되죠?”


“네, 그렇게 해주세요.”


평소와 다름없이 계산을 하고 포장해서 건네주는 직원에게 인사하고 나오며 괜한 한숨을 한번 더 내쉬었다. 됐다, 무슨 연애냐 싶어 집에 들어가는 길에 우유 1L짜리 하나 사서 집으로 갔다. 집에 가서 롤이나 한 판 더 하면 그게 더 행복이 아니겠나.               










취업을 하려면 토익이 필수라기에 남들 한다는 공부는 득달같이 따라서 하고는 있다. 아직 공부가 한창이기에 점수는 기대할 순 없겠지만 또래들과 모여서 같이 수업 듣는 것도 즐겁고 같이 모여서 스터디를 하는 것도 좋다. 특히 스터디 모임은 여자 친구들이 많아서 이 틈에 여자 한 번 꼬셔보자며 의기투합을 다지기도 했다.


스스로를 위해 열심히 하자는 취지도 있어서 단어도 열심히 외우고 듣기도 열심히 하지만 참 이상하게 스터디할 때면 더욱 열정도 불탔다. 같이 공부하는 여자애들이 꽤 이쁘기도 했고 공부도 잘해서 더욱 시너지도 많이 났으니까.


스터디 모임 때는 꼭 빵을 들고 갔다. 스터디룸에 옹기종기 모여서 브라운 계열의 짙은 커피번 하나를 들고 가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과 함께 뜯어서 함께 먹으면 그게 또 참 맛있었다. 다들 항상 뭘 이런 걸 사 오냐며 얘기하지만 내심 다들 좋아하는 눈치였기에 그 시간이 참 좋았다.


한창 열심히 공부도 하고 수다도 떨다 헤어질 때면 8시 무렵이었다. 해가 벌써 져버렸고 도심 한복판은 어둑어둑해지고 세상은 고요하고 차분한 상태로 변신했다. 집 근처 고지에 있는 조그마한 공원을 들려 동네를 내려다보면 이상하리 만큼 마음이 평온해졌다. 저 멀리 반짝이는 세 점의 불빛. 붉은색, 하얀색, 초록색 점들이 하늘을 수놓았다. ‘위이 이이이이 잉-!’하는 하늘을 찢는 소리와 함께 여러 대의 비행기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 모습이 덧없이 자유스러워 보였고, 그 모습이 너무나 활개 차 보였다. 그저 하늘을 나는 모습이 부러웠다.





한 번 고지에 올라가 사념할 때면 한 삼십 분은 금세 흘렀다. 저녁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저녁을 먹기도 안 먹기도 참 애매한 시간이 되어버렸다. 


꼬르르륵-!


정신 차리고 얼른 집에 가야겠다 싶어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데 꼬르륵 소리가 심해졌다. 빵 하나를 사서 가야겠다는 생각에 근처 빵집으로 향했다. 마침 아직 가게 문 닫기 전이였는지 가게는 여전히 문이 열려있었고 마감 정리를 위해서 분주하게 정리를 하고 있었다. 다행이다 싶었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오늘은 조금 늦으셨네요~”


“아, 네. 공부 좀 하다 보니 오늘은 늦어졌네요.”


“어떡하죠 오늘은 마감시간이라서 늘 드시던 마늘빵은 없는데요….”


“괜찮아요. 다른 것도 괜찮아요.”


시간이 늦어 빵이 적었지만 취향에 맞는 빵은 제법 있었다. 소보루 빵도 좋아했고, 슈크림 빵도 몇 개 있었다. 너무 많이 사면 질릴까 싶어 2개만 골라 계산대에 올려놨다. 바코드를 찍고 계산하기 위해서 기다리는데 그녀가 뭔가 자꾸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참만에 입을 열었다.


“그냥… 가져가세요. 그리구, 공부 열심히 하세요.”


“…? 결제는요?”


“어차피 오늘 판매 안되면 폐기될 거예요. 그냥 드셔요. 드리고 싶어서요.”


폐기라며 가져가라는 빵과 그녀 얼굴을 머뭇머뭇 바라보며 한참을 고민했다. 무슨 의미인가 싶어 생각하다 얼떨결에 빵을 받아버렸다. 그리고는 마감시간이라며 인사하는 그녀에게 말 한마디 제대로 붙여보지도 못한 채 우왕좌왕하다 가게를 나서버렸다.                










집에 와서 빵을 손에 먹으려다 멈칫하고 생각에 잠겼다. 자꾸 아까 있던 일이 생각나서 신경 쓰였다. 공부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큰 의미부여를 하지 않는다지만 자꾸만 신경 쓰여서 도무 집중이 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혼란스러워졌다. 그러나 이내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신경 쓰지 않으려고 애썼다.


참 웃긴 게, 그동안은 신경 한 번 쓰이지 않았던 사람인데도 가게를 방문할 때면 자꾸 신경이 쓰였고 그녀가 예의 바르고 밝게 웃는 모습이 선명해졌다. 눈감으면 흐릿하고 보일 듯 말듯했던 얼굴이 눈을 감고 있어도 마치 선명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생각하지 않으려면 않을수록 자꾸 얼굴이 저 섬세하게 그려졌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빵집을 방문하는 횟수가 늘어갔다. 자주 방문하다 보니 한가한 시간도 대충 알 수 있었고 이따금씩 바쁜 시간을 피해 일부러 빵 한 개를 사러 다른 곳을 오가다가도 한 번씩 들려서 빵집을 들렸다.


자주 방문하면 할수록 그녀와 대화는 사소한 인사에서 조금씩 다양한 이야기들을 하게 되었다. 학교는 어디에 다니고, 어떤 전공인지 점차 개인적이고 소소로운 질문들을 이어갔다. 아무렇지 않은 간단한 질문과 대화였지만 그 대화 자체가 즐겁고 편해졌다. 어느덧 개인 연락을 하기 시작했고 그녀와 대화를 하고 만나고 함께하는 시간 모두가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관심도 없던 흐릿했던 도화지는 연하게 그려져 있던 스케치가 점차 더 채워지기 시작했다. 선이 굵어졌고 표현이 섬세해졌다. 얼굴에는 생동감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이내 서서히 웃음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신기할 따름이었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다. 아주 작은 계기로 마음이 쓰이기 시작했고, 아주 작은 순간부터 마음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고 그 떨림이 이내 커지기 시작하면서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숨 쉬고 고개를 돌릴 틈도 없었다. 함께 하는 모든 순간 모든 공간이 화려했고 아름답고 눈이 부시게 빛이 났다. 사랑은, 아주 찰나의 한 순간에 다가왔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채 관계는 깊어졌다. 



         

빵을 사랑하던,


빵을 좋아하던 소녀는, 그리고 소년은, 그렇게 시작했다.     


사랑은 마치 코스모스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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