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씨앗
태어날 때, 내 두 손에는
파란 씨앗이 쥐어져 있었어
그건 처음부터 있던 것이라,
늘 있던 것이라
내게는 너무도 당연한 존재였지
"그 파란 씨앗은 너만의 것이란다,
하지만 동시에 너만의 것이 아니기도 하지
그건 우리 모두의 것이기도 하거든"
어렸을 땐
내 파란 씨앗에 대해 엄마가 하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어
나는 그게 오로지
나만의 것이라고만 생각했거든
처음부터 내게 있던 것이니까
늘 내 두 손에 쥐어져 있던 것이니까
그래서 나는
내 파란 씨앗을 당연하게 두 손에 쥐고
당연하게 두 손안에서 가지고 놀았어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나에게 말했지
"그게 뭐야? 나도 같이 가지고 놀자"
나는 고개를 저었어
"아니, 아니, 이건 나만의 것이야"
친구는 아쉬운 듯 내 손안의 파란 씨앗을 가만 바라보더니
이내 우리가 함께 깔고 앉은 흙을 가지고 놀았어
그러던 어느 날,
파란 씨앗은 잊혀졌어
학교에 입학하기 전날,
작은 틴케이스에 넣어
서랍 안에 넣어두곤
하루, 이틀, 사흘, 나흘이 지나도록
꺼내지 않다가
나는 그만 새하얗게 잊어버리고 말았지
나의 파란 씨앗을
나만의 파란 씨앗을
시간이 흘렀어
아주 많이,
당연하지 않게 느껴질 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지
그날따라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내 두 손안이 왠지 휑한 거야
나는 영문을 모르고
괜히 두 손바닥을 문지르고
손가락을 비벼 가며 길을 걷다가,
아주 어릴 적 같이 놀았던 친구를 만났지
그 친구는 나를 보고 말했어
"안녕, 파란 씨앗은 어떻게 되었니?"
나는 깜짝 놀랐어
뒷머리에서부터 정수리까지 번갯불이 통했고
아주 오랜 꿈에서 깨어난 것만 같았지
나는 그 길로 집으로 다시 달려가
서랍을 열어 작은 틴케이스를 꺼냈어
그 자리엔 당연하게도 있었지
나의 파란 씨앗이
나만의 파란 씨앗이
꼭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그런데 그때, 씨앗과 함께 잊고 지낸
엄마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았어
“그 파란 씨앗은 너만의 것이란다,
하지만 동시에 너만의 것이 아니기도 하지
그건 우리 모두의 것이기도 하거든”
다시, 뒷머리에서부터 정수리까지 번갯불이 통했고
이제는 내게 그 말이 다르게 들렸어
나는 달려갔어
오래전, 친구와 함께 놀던 놀이터에
파란 씨앗을 당연하게 두 손에 쥐고
당연하게 두 손안에서 가지고 놀았던
그 자리에서
나는 친구가 깔고 앉았던 흙더미를 파헤쳐
파란 씨앗을 심었어
당연하지 않게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당연하지 않은 오늘을 기억하고 싶은 마음으로
그날 이후
하루, 이틀, 사흘, 나흘이 지나도록
매일 밤 친구와 놀이터와 파란 씨앗에 대한
같은 꿈을 꾸다가
나는 그만 새파랗게 잊어버리고 말았지
나의 파란 씨앗을
나만의 파란 씨앗을
시간이 흘렀어
조금 많이,
당연하지 않게 눈을 뜨는 아침이 밝았지
그날따라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내 두 손안이 왠지 간지러운 거야
나는 영문을 모르고
괜히 두 손바닥을 문지르고
손가락을 비벼 가며 길을 걷다가,
아주 어릴 적 같이 놀았던
그 친구를 다시 만났지
하지만 친구는 혼자가 아니었고
작고 귀여운 손녀딸의
작고 귀여운 손을 꼭 붙잡고 있었지
친구는 나를 보고 말했어
"안녕, 파란 씨앗은 어떻게 되었니?"
그때,
뒷머리에서부터 정수리까지 번갯불이 통했고
아주 오랜 꿈에서 깨어난 것만 같았어
나는 보았거든
작은 소녀가 한 손으로 소중하게 품고 있는
작고 귀여운 화분 안에
작고 귀여운 나무가 피어 있는 모습을
꼭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나는 대답 대신 작은 소녀에게 다가가
무릎을 굽히고
작고 반짝이는 두 눈을 바라보며 말했어
“안녕, 그 파란 나무는 너만의 것이란다
하지만 동시에 너만의 것이 아니기도 하지”
소녀는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으로
내 이야기를 듣다가
이내 환하게 웃었어
그 웃음을 바라보는 순간,
내 가슴속엔 작은 싹이 하나 움텄지
당연하지 않은 오늘
당연하지 않게 마주한 너의,
우리의 파아란 싹
글: Editor LP
하산 무사비가 들려주는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
한 복서가 전해 주는 힘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방법
많은 것들을 부수어 버릴 수 있는 힘이 있는 복서가 있다. 사람들은 그런 힘을 가진 그를 좋아했지만, 무엇이든 주먹으로 치고 다니며 모든 걸 파괴하는 그를 점점 좋아하지 않게 됐다. 홀로 남겨진 그는 무수히 사용해서 해진 장갑을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자기가 가진 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복서』는 무엇이든 쉽게 파괴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주인공이 자신의 힘을 어디에 사용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걸 깨닫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로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가 담긴 그림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