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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 띄우는 편지 - 받아들이기, 흙이 씨앗을 품듯이

by 고래뱃속 Mar 14. 2025
받아들이기, 흙이 씨앗을 품듯이


브런치 글 이미지 1

"여기 정원이 하나 있어요. 

가장 평범한 것들로 이뤄진 정원이지요. 

모두가 정원에서 행복한 삶을 이어 가요."


일상이라는 말에는 ‘평화’라는 뜻이 숨어 있습니다.

별일 없이 뜨는 아침 해, 별 탈 없이 마시는 출근길의 커피 한 잔,

사고 없이 무사히 넘기는 일과와 큰일 없이 몸을 펴고 누워 잠이 드는 시간.

“별고 없으시죠?”는 어쩌면 “행복하게 잘 지내시죠?”를 묻는 일이죠.


브런치 글 이미지 2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예고도 없이 무언가가 하늘에서 떨어져요.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씨앗 한 알이에요."


하지만 살아 있는 한, 살아 있기 때문에

우리는 별일, 별 탈, 사고, 큰일, 별고를 만납니다.

이유도 없고, 맥락도 없고, 예고도 없이

그냥 그런 일들이 찾아옵니다.

씨앗이 하늘에서 툭 떨어져 머리 위 모자를 찌그러뜨리듯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는 일들이

바로 나에게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씨앗은 싹을 틔우기 시작해요. 

밤낮으로 식물이 자라나요. 

두더지 이베트는 욕실 천장에 금이 간 것을 발견해요. 

뤼탱 아저씨는 집 안에 갇히고 말았어요. 

가엾은 들쥐 가족은 또다시 이사해야 해요."


별일들은 성가십니다. 평소에 하던 것을 할 수 없게 만들고

신경을 쓰게 하고 힘을 들이게 만듭니다. 귀찮고 짜증이 납니다.

겪어 본 적이 없으니 어디로 튈지, 어떻게 흘러갈지도 모릅니다.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후회하고 마음을 뻗대기도 합니다.

지치고 약해집니다.


브런치 글 이미지 4

"너무하네요! 식물이 정원 전체를 무너뜨리고 있어요! 

주민들은 결국 중대한 결정을 내려요. 

식물을 자르기로요!"


하지만 더 이상 웅크리고만 있을 수는 없어요.
기운을 차리고 정신을 차려서 별일을 해결하기 위해 손발을 걷어붙입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원래 상태로 싹 다 되돌리고 싶어요.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 보겠다, 의지를 불태워요.

하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 없듯이

부서진 유리를 다시 붙일 수 없듯이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들은 할 수 없습니다.


브런치 글 이미지 5

"“잠깐만요!” 

자코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해요. 

“이 식물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닐 수도 있잖아요?” 

그들은 식물의 좋은 점을 누리기로 했어요."


받아들임은 그래서 결코 패배적인 결정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의 한계를 아는 겸허한 인지이고, 아픔을 삼킨 뒤 고개를 끄덕이는 용기이고

새로운 영역으로 발을 내딛는 시도입니다.

마음의 공간에 낯설고 껄끄러운 별일을 들여놓습니다.

앞에서만 보던 것을 옆에서도 보고 뒤에서도 보고 뒤집어서 헤아려 봅니다.

별일이 우리에게 온 이유를 찾아봐요.

별일이 빚어낸 새로운 맛을 느껴 봐요.


브런치 글 이미지 6

"모두가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며 굉장히 행복해졌지요. 

이듬해 봄, 정원의 주민들은 한껏 들뜬 마음으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무언가를 보았어요. 

그것은 바로… 세 개의 새로운 씨앗이에요."


오늘 우리에게 무참한 별일이 일어났다면

잠시 화를 내고, 잠시 좌절하고, 잠시 슬퍼한 뒤에

두텁고 촉촉한 땅의 흙처럼 그 씨앗을 품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우리가 받아들인 씨앗은 더 이상 별일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이 되고

모르는 사이에 매끈하고 반짝이는 열매를 선물해 줄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게 우리의 정원은 조금 더 넓어지고 깊어지고 다채로워질 테니까요.



글: Editor P





자코의 정원|마리안느 뒤비크 글·그림|2019년 9월 30일|12,000원자코의 정원|마리안느 뒤비크 글·그림|2019년 9월 30일|12,000원

씨앗 하나로 시작된 새로운 세상!
어느 날 아침, 예고도 없이 자코의 정원 위로 씨앗 한 알이 떨어진다. 씨앗이 쩍! 조그마한 뿌리가 씨앗 껍질을 뚫고 나오고, 뿌리가 매일매일 조금씩 자라난다. 씨앗은 자연의 섭리를 따를 뿐인데, 씨앗 주위에 살던 정원 주민들에게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진다. 씨앗 때문에 삶이 흔들리는 정원 주민들처럼, 우리는 예고 없이 찾아든 어려움으로 지금까지 유지해오던 삶의 방식을 뜻하지 않게 바꿔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낯선 씨앗에 대해 가진 자코의 따뜻한 시선처럼 언뜻 보기에 제약과 한계라 여겼던 일들을 좀 더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건 어떨까? 열린 마음과 새로운 시선으로, 우리의 삶을 풍성히 만드는 기회가 열리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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