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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띄·편 -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

by 고래뱃속
『아들의 여름』 ×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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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이 온통 푸르러요

찰랑거리는 잎새 사이 당신의 얼굴이 떠올라요


당신에겐 꼭 이 계절을 닮은 푸른 힘이 있었고

그 힘은 믿음의 바탕이 되어서

녹음으로 우거져 숲이 되었고


나무가 내어 주는 숨과 그림자로

저는 내내 자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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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아주 오래된 기억은 잊히겠지만

기억을 이루는 감각만큼은

지워지지 않겠지요


두 눈에 담겼었고

두 손에 잡혔으며

두 귀에 담겼었고

두 팔로 잡을 수 있었던


당신의 표정과 체온,

목소리와 어깨

나에게 모든 것을 내어 주고,

세월의 예외 없는 손길에 어느샌가 녹슬고 스러져

이제는 다만 나무 한 그루, 바람 한 줄기

햇살 한 송이, 촉촉한 빗줄기가 되어 피어난

푸름 한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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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도는 계절마다

내 두 눈앞에,

두 손 위에,

두 귓가에

돌아오고 또 돌아올 당신의,

나만의 빛

두 팔로 끌어안아 보듬어 보는

이렇게나 현현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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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사랑은 보이지 않는 것이라던데

이렇게도 선명한 감각이 될 수 있단 걸

당신은 알려 주었어요


작별해도 떠나지 않는 사랑,

이별해도 떨어질 수 없는 사랑,

우주의 본성을 거스르면서 우주의 무한함을 체현하는 사랑


저는 당신이 알려주신 바로 그 사랑으로

매일, 한 줌의 숨과 그림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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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어느 한 자리에

그렇게나 눈부신,

이렇게나 현현한,


나무 한 그루를 심겠어요

푸른 계절을 일구는

나무꾼이 되겠어요



2025년 7월 고래가 띄우는 편지

글: Editor LP




아들의 여름 | 김근아 글·그림 | 2023년 5월 8일 | 16,000원

그해 여름,

어른의 문턱 앞에 선 소년

누구에게나 살아가는 게 겁이 날 때가 있습니다. 망망대해 같은 세계를 마주했을 때, 해일 앞에서 조개를 줍는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나 자신이 아주 작은 존재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겁니다. 바로 그때, 우리는 어른의 문턱을 마주하게 됩니다. 아빠가 해 왔던 나무를 이제부턴 홀로 해 나가야 할 때 소년이 궁극적으로 넘어서야 할 것은, 바로 ‘성장’을 향한 관문입니다. 이전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우리 모두의 삶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뭉클한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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