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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래분수 Jan 08. 2022

재사용할 수 없는 김치 병

냄새 나서는 아니고요

가끔 손님들이 물어본다.


나중에 이 김치 병 다시 갖다 드릴까요?


아.. 우리도 받고 싶은데, 관련 법상 재사용할 수 없어요.


코티지 푸드 법은 병 재사용을 금한다. 사용한 병을 식기 세척기에 넣고 살균 기능에 맞춰 세척하거나 소독 절차를 거쳐도 소용없다. 무조건 새 걸 쓰라고 권고한다. 코티지 푸드는 보건당국의 검사 대상이 아니지만, 법이 그렇고 혹시 모를 병원균 감염 등 사고에 대비해 꼬박꼬박 병을 산다.

김치 한 병을 만드는데 드는 재료값의 20~30% 정도가 병 값이다. 돈도 그렇지만 물건을 한 번 밖에 못 쓰는 게 속상하다. 유리병 분해에 드는 정확한 기간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몇 천 년에서 만 년으로 여겨진다.

재사용을 못 하니 집에 병이 쌓인다. 손님들이 되돌려 주기도 하고, 팔지 못하고 우리가 먹는 김치 양도 꽤 되어 병은 언제나 넘친다. 주변에서 잼 만들 병이 필요하다고 하면 주고, 가끔 되팔기도 한다. 벼룩시장에 놓으면 금세 사라지니 그나마 다행이다.

 


우리는 김치 담는 병으로 canning jar라고 부르는 병을 쓴다. 도톰한 유리병에 양철 뚜껑과 뚜껑을 고정하는 링으로 구성된다. 주로 과일과 채소류를 끓여서 저장하는 용도로 쓰는 병이다. 뚜껑에 하자가 없는 이상 김치 국물이 넘치거나 냄새가 새지 않는다. (덜 익힌 김치가 냉장고에서 서서히, 오랫동안 발효하다가 가스가 차서 병이 터진 일이 한 번 있긴 하다.)


코로나19 유행병이 시작되면서 병을 구하기 어려워졌다. 가게마다 canning jar 선반이 텅 비었다. 사재기 여파인가 했는데, 뚜껑 만드는 재료인 양철 소재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직거래 장터 시즌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다급해졌다. 그래서 가스 빠지는 밸브가 달린 봉투를 사보았다. 커피콩을 담아 파는 봉투 같은 거다. 단가는 병보다 훨씬 낮고, 발효 중 가스 빼기에 드는 시간도 절약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컸다.


하지만 손님들은 유리병을 선호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플라스틱보다 병이 재활용이 가능한 소재라는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인가 생각했다. 손님들이 원하니 어쩔 수 없었다. 온 동네 가게들을 돌면서 병을 찾아다녔다. 수요에 맞춰 겨우겨우 병을 공급했지만, 밸브 달린 봉투는 그대로 남아있다. 어쩌지? 김치 만들기 키트를 팔아보나?



한창 겨울이다. 그래도 자연의 흐름 따라 봄도 오겠지. 올봄에는 차고 문을 열고 오랜만에 벼룩시장을 열어볼까 한다. 그렇게 마음먹으니 부엌과 차고 귀퉁이에 병이 쌓여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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