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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래분수 Jan 31. 2022

요리의 취향

30. 우리 집 라면

이 작은 사업을 준비하면서 가장 귀찮았던 과정은 요리법 만들기였다. 눈대중으로 요리하는 나에겐 번거로운 일이었지만, 남편 말대로 일정한 맛을 위해 재료의 양을 정해야만 했다. 일단 요리법이 정해지니 여러모로 편하긴 했다. 가끔 재료 사정에 따라 남편 몰래 양을 슬쩍 바꾸면, 그때마다 달라지는 김치 맛에 놀라고 그러면서 배운다. <플렉시테리언 다이어리> 138쪽.


남편은 조리법대로 요리하고 나는 감각에 기대 요리한다.      

아침에 두 가지 빵을 데웠는데, 남편이 크루아상을 집었다. 그게 더 맛있으니까. 산타루시아 번은 좀 밋밋하게 구워졌다. 샤프란 가루가 녹아들어 고운 겨자 빛을 띠고, 모양도 그럴듯하게 나왔다. 하지만 카다멈 향이 거의 나지 않고, 단맛이 좀 부족하다.      

적어 놓은 산타루시아 번 재료 배합을 보니 밀가루 2.5컵 정도에 설탕이 2큰술, 카다멈은 1/8작은술이다. 전체 가루 재료량을 보면 카다멈과 설탕을 좀 늘려도 됐을 텐데. 요리법 따라서 기계적으로 계량하다 보니 전체 그림을 보지 못한 것 같다. 수업 중 선생님 말씀을 열심히 받아 적고 공책 정리도 깔끔하게 했는데, 머릿속에 남은 건 없는 느낌이랄까.


요리법 자체가 좋았다면 문제없었을 테다. 그런데 나는 요리법 앞에서는 이상하게 청개구리가 되고 싶다.

처음 해보는 요리가 있다고 치자. 그럼 인터넷에서 두어 개 요리법을 찾고, 내 멋대로 조합해서 재료량을 정한다. 몇 번 실수를 거치면서 재료 배합을 조절하다 보면, 나만의 산타루시아 번 레시피가 완성될 수 있다. 물론 실수를 기록하고 고쳤을 때 가능한 일. 그걸 안 했으니 다시 밋밋한 산타루시아 번이 되었다.



멋대로 요리하는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른다. 그 버릇이 고쳐질 것 같지도 않다. 같은 요리를 해도 똑같은 맛을 낼 수 없지만, 그 덕분에 틀을 벗어난 요리가 가능한 것 같다.



된장에 찍어 먹는 순대. 갈치로 만든 국.

아주 오래전 이런 음식이 있다는 걸 들었을 때, 나는 분명히 얼굴을 찡그렸다.

제주 표선의 한 식당에서 갈칫국을 먹기 전까진 그랬다. 일단 먹어보니 ‘갈칫국’이란 단어에서 더는 비린내가 풍기지 않게 되었다. 어느 쌀쌀한 날 낯선 공간에서 혼자 갈칫국을 먹으며 감격했던 여행이 떠오를 뿐이다.


그리고 십여 년이 흘렀다. 아직 된장 찍은 순대를 먹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상상만 해도 맛있을 것 같다. 나는 그렇게 변했다. 된장만으로 미역국을 끓이고, 거기에 국수를 말아먹어도 좋은 사람이 되었다. 국에 간이 모자라면 소금이나 간장 대신 깻잎장아찌를 썰어 넣고, 조금 남은 찬밥은 샐러드의 고명이 되기도 한다. 떡이 없다면 파스타로 떡볶이를 만들고, 만둣국에 브로콜리를 넣거나 샐러드에 낫또를 올려 먹는다.

적고 보니 잡채밥 정도의 부조화 아닐까 한다. 하지만 내 평가에 상관없이 잡채밥은 중식당 메뉴에 당당히 올라 있다. 된장미역국수, 파스타볶이, 낫또샐러드도 우리 집에선 대접받는다. 맛있으니까.



물론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은 아니다.

얼마 전 부모님 댁에 갔을 때, 내가 하던 대로 라면을 끓여드렸다. 두 분은 묵묵히 드셨고, 며칠 뒤 아빠가 뜬금없이, 마치 혼잣말인 듯 아닌 듯 그러나 내가 충분히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말씀하셨다.  


이것저것 너무 많이 들어가면 라면이 아니지.


그 말씀을 엄마에게 전해드렸더니, 엄마가 빵 터지셨다. 당신도 동의하신다고.      




드디어 오늘 라면 먹는 날이다. 국이나 반찬 만들 큰 정성은 없지만 따뜻한 국물은 먹고 싶다. 그럼 라면이지.


라면에 팔라펠을 부숴 넣으면 달걀 푼 맛이 난다.


냄비에 물과 원하는 채소를 몽땅 넣고 끓이다가 분말 양념을 넣는다.

라면 면발은 90% 정도 끓였다가 물을 버리고 두어 번 헹궈 기름기를 쫙 빼준다.

이 둘을 합쳐 면발을 완전히 익혀서 대접한다.


기름지고 짭짤한 정통 라면과 많이 다르지만, 이게 내 요리 취향이다.



완벽하지 않다고 포기하기에 너무 소중한 채식.
망설임 없이 채식을 시작하고 싶다면, <플렉시테리언 다이어리> 훑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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