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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래분수 Feb 01. 2022

두부 짜장

맛있는 비거뉴어리 31.

1월 한 달, 하루 한 끼 채식 기록 프로젝트를 선언하자마자, 남편은 짜장을 꼽았다.


오, 그럼 우리 짜장면 만들어야지.


그런데 어쩌다 보니 마지막 날에서야 짜장면이 메뉴에 올랐다. 이유야 많다. 때마다 재료 사정을 따져야 하고 짜장 말고도 해 먹을 수 있는 요리가 워낙 많기도 하다. 그래도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내가 짜장 요리를 할 줄 모르기 때문이겠다. 뭐, 만드는 게 크게 복잡하겠는가. 하지만 기름과 설탕을 잘 안 쓰는 내 요리 취향을 고려하면 맛있는 짜장이 나올 리가 없다. 그래, 맞다. 그래서 남편이 만든 짜장이 훨씬 낫고, 그걸 깨달은 이후로 춘장 볶는 건 남편 몫이 되었다.


그런데 남편은 진짜 짜장면을 먹어 본 적이 없다. 우리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 남편이 한국을 방문한 건 세 번. 방문은 항상 짧았고 먹어야 할 음식은 너무 많았기에 (특히 장모님이 차려주신 음식 먹기에도 바빴으므로) 중식당에 갈 기회를 놓쳤던가 보다. 그리고 채식을 시작한 뒤로 남편은 이 이상한 음식 - 한국인의 집착 같은 사랑을 받는, 중식 요리지만 중국에서는 찾을 수 없다는 이 검은 국수 요리를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서 배워야 했다.


그나마 남편은 짜파게티 맛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채식을 시작한 후 인사동에서 채식 짜장 맛도 보았다. 짜장이 춘장에서 나온다는 걸 알게 된 이후 남편은 춘장을 사보자고 졸랐다. 한국 슈퍼마켓에서 춘장을 사서 몇 번 만들어줬다. 하지만 입맛이 까다로운 남편은 눈치챘다. (아내가 만든) 이 정도 맛 때문에 화면 속 배우들이 그릇을 삼킬 듯이 후루룩 짭짭할 리 없다는 걸. 그 뒤로 남편은 직접 춘장을 볶아 짜장면을 만든다. 놀랍게도 파는 것과 맛이 흡사하다.


한국 고추와 비슷하게 생긴 카옌 고추를 사서 햇볕에 말리고, 숯을 달궈 항아리를 소독하는 남편의 모습이 그럴싸하다. 남편은 된장과 고추장은 물론 청국장과 일본식 된장도 주기적으로 담근다. 최근에는 만드는 법이 잘 알려지지 않은 춘장을 상상에 기대어 조금 담고서 짜장 맛이 나길 기다리고 있다. 한국 주부들도 웬만하면 사 먹는 장을 미국인이, 그것도 이국땅에서 제대로 만들고 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좋은 재료를 쓴다는 걸 알고 발효 뒷맛이 크게 이상하지 않으며 요리에 넣으면 제맛에 흡사하니 그걸로 족하다. 무엇보다 옆에서 구경만 하고도 온갖 장류가 생기니 나는 흐뭇할 수밖에 없다.  <플렉시테리언 다이어리>


지지난 해, 남편은 춘장을 만들겠다며 정보를 찾았다. 춘장은 첨면장(톈몐장)에서 시작하는 것 같았지만, 자세한 정보는 찾기 어려웠다. 한국어를 모르는 남편은 내게 도움을 청했지만, 내 일로 마음이 급했던 나는 대충 검색하다가 포기했다.


아니, 한국인들도 춘장은 다 사 먹어. 정보가 없다고. 메주랑 된장도 모자라서 진짜 춘장까지 만들고 싶어?


응. 맛있잖아. 분명 만드는 방법이 있을 텐데.


남편은 정성이 부족한 아내를 보며 차라리 상상에 기대기로 했다.


메주 만드는 거랑 비슷하겠지, 뭐.


남편은 검은콩을 삶아서 발효제를 좀 섞고 말렸다가 발효했다. 그 삶은 콩이 발효되는 동안 우리는 첨면장의 주재료가 밀가루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남편의 부탁을 흘려들은 나는 미안해졌고, 남편의 첫 첨면장 아닌 첨면장은 떫고 아린 듯 이상한 무언가가 되었다. 당연히 춘장 맛과 비슷하지도 않았고, 그걸 볶아 먹은 우리는 죽진 않았지만 야릇한 변을 보아야 했다.


아직 첫 실패에서 벗어나지 못한 걸까. 아니면 아내에 대한 실망 때문일까. 남편은 아직 두 번째 첨면장을 만들 생각을 안 한다. 대신 1년 전 한국 슈퍼마켓에서 산 춘장을 가끔 즐기고 있다. 시판 춘장의 어마어마한 첨가물을 보면 남편이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의 된장 맛을 생각하면, 춘장도 분명히 맛있겠지. 다음에는 마음 예쁘게 먹고 차분히 앉아서 첨면장 만드는 법을 알아봐 줘야지.


시부모님도 맛있게 드신 두부 짜장면



두부 짜장 (4인분)

으깬 마늘 1/2큰술

양파 1개

당근 1/2개

두부 3/4모

춘장 3/4컵

전분 1.5큰술 + 물 1.5컵 + 설탕 2큰술


1. 양파는 사방 1.5cm로 깍둑 썰고, 당근은 두께 0.4cm로 납작하게 썬다.

2. 두부는 1cm로 깍둑 썰어 기름 두른 팬에 사방이 노릇해지도록 부친다.

3. 중간 불에 달군 팬에 마늘/양파/당근/식용유 1큰술을 넣어 5분 정도 볶는다.

4. 춘장을 넣고 3분 정도 볶는다.

5. 별도 그릇에 전분/물/설탕을 섞어 푼 다음 당근과 함께 4에 넣고 원하는 되기가 되도록 끓인다.

6. 밥 또는 국수와 함께 대접한다.

*버섯/피망/애호박/양배추/셀러리/브로콜리/시금치/케일 등 원하는 대로 재료를 활용한다.

 



완벽하지 않다고 포기하기에 너무 소중한 채식.
망설임 없이 채식을 시작하고 싶다면, <플렉시테리언 다이어리> 훑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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