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 한 달, 비거뉴어리 Day 18
샐러드 만들 때 가장 어려운 단계는 맨 처음. 냉장고에서 케일과 상추를 꺼내는 일이다.
밥 짓는 데 제일 어려운 단계도 맨 처음. 찬장에서 쌀을 꺼내 바가지에 담는 과정이다. 아침에 그걸 해냈다. 그래서 저녁에는 갓 지은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야호!
머릿속으로 반찬거리를 가늠해 보다가 쌈을 준비하기로 했다.
티브이에서 봤는데 외국인들이 쌈을 그렇게 좋아한다 더라고. 당신도 그렇고. 쌈이 왜 좋아?
맛있잖아!
맛있는 건 나도 알지.
음... 뷔페 같다고 할까? 이것저것 쌈에 넣을 게 많으니까 먹는 재미가 있어.
이 말을 하는 남편 얼굴은 웃음이 가득하다. 특히 눈과 입을 동그리며 '쌈'이라고 말할 때면 더 그렇다. 그렇게 쌈을 좋아한다. 남편도 처음에는 고기쌈으로 쌈 세계에 발을 디뎠다. 6년 전 채식을 시작한 뒤로는 두부를 싸 먹는다. 그래도 쌈이 좋다는 거 보니, 쌈 맛이 꼭 고기에 있진 않은가 보다.
남편이 쌈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는 쌈장도 있다. 그런데 오늘 저녁 강된장 만드는데 너무 집중을 하는 바람에 쌈장 만드는 걸 깜박했다.
쌈인데 쌈장이 없네?
아차 싶은 나는 강된장을 가리켰다.
이거랑 먹으면 되는데...
남편은 그래도, 하면서 고추장과 된장을 가져온다.
푸른 잎채소에 갓 지은 밥을 올리고 구수한 강된장을, 상큼한 김치를, 또는 따뜻한 두부와 장아찌를 올려 먹는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하다가 눈이 마주치면 우리는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진짜 맛있다.
어, 정말 맛있어.
이거 당신하고 같이 먹을 수 있어서 행복해.
나도. 어쩌면 평생 한국 음식도 모르고 살았을 수 있었잖아. 어후!
그리곤 그 슬픈 가정에서 벗어나려는 듯 남편은 고개를 젓는다.
나야말로 남편을 만나 감사하다. 내 도움 하나 없이 혼자서 책과 인터넷에 의지해 된장과 고추장을 만들어주니까. 원래 집된장은 다 맛있는 건지 모르겠으나, 우리 집 된장 맛 정말 좋다. 그래서 북어나 멸치, 고기 없이 맹물에 만들어도 된장국과 미역국 맛이 맑고 깊다.
오늘은 강된장에 귀한 들깻가루까지 넣었으니 풍미가 더할 나위 없었다.
들깨 두부 강된장
a. 무/마늘/양파/당근/애호박 중 아무거나 다져서 1컵
먹기 좋게 썬 버섯 1컵
두부 1/2모
된장 1~2큰술
들깻가루 3큰술
1. 중간 불에 올린 작은 냄비에 재료 a와 물 1/4컵을 넣고 뚜껑을 덮고 5분 정도 끓인다.
2. 버섯과 으깬 두부를 넣고 10분 이상 끓인다.
3. 모든 재료가 익으면 된장을 풀어 넣고 3~5분 정도 끓인다. 된장은 입맛에 맞게 양을 조절한다.
4. 불을 끄고 들깻가루를 넣고 젓는다. (들깻가루로 되기를 조절한다)
5. 쌈에 싸 먹거나, 덮밥처럼 밥에 올려 먹는다.
“칠십팔억 지구인 속에서 내 존재는 너무도 작지만, 나는 하루 세끼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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