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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7.27. 책편지] 가족어 사전과 여름독서

by 겨울아이 환

안녕하세요,

이번 주는 올여름처럼 무더운 시간이 또 있었나 싶을 정도로 더운 나날입니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이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니, 당분간은 더위를 식혀줄 비도 기대하기 어렵겠구나 싶습니다.

햇살이 너무 강해 부담스럽지만, 그 덕분에 일광 소독에 제격이라고 생각해 보렵니다. 그늘만 잘 찾으면 놀러 가기에도 좋은 날씨입니다. 지난 한 주도 별일 없이 잘 보내셨기를, 이번 한 주도 지치지 않고 평안히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그제는 오랜만에 둘째 아이 학교 앞에서 학부모 폴리스 활동을 했습니다. 태양 고도가 가장 높아지는 시간에 길가에 서 있는 일이 쉽진 않았지만, 다행히 나무 그늘이 있어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지나가는 차량에 감시(?)의 눈길을 슬쩍 보내며 서 있는데, 하교하던 초등학생들이 낯선 저에게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 순간, 차오르던 피곤함이 가라앉았습니다. 아이들이 제 마음을 알고 한 인사는 아니었을 텐데, 한마디 말이 지니는 힘을 새삼 느꼈습니다.


가족어 사전


어제 아침에는 동네 독서 모임이 있었습니다. 이 편지를 읽어 주시는 분들 중에 독서 모임 회원분들도 계셔서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게 조금 부끄럽기도 하네요. ^^

이번 달에 함께 읽은 책은 이탈리아 작가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가족어 사전』입니다. 작가는 반파시스트 운동에 참여했고, 출판사에서 일하며 글을 썼습니다.

『가족어 사전』은 그런 그녀가 다복하면서도 역사의 소용돌이 속을 살아낸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낸 자전적 소설입니다.

책 제목처럼 ‘가족어’란, 가족들끼리만 통하는 밀어이자 일종의 가족 방언 같은 것입니다. 그날 토론에서 각자의 ‘가족어’에 대해 나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니 저희 가족에게도 꽤 많은 가족어가 존재하더군요. 가족을 부르는 애칭, 아이들과 함께했던 놀이를 가리키는 표현, 가족을 칭찬하거나 장난 삼아 놀릴 때 썼던 말 등등요.


독서 모임에서 가족어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우리 가족만의 표현도 궁금해져서 그날 저녁 가족 단톡방에 제안해 봤어요.

‘<가족어 사전>’이라는 제목을 쓰고 가족만의 표현이 떠오르면 적어 보자고 했습니다.


(예시) “콜드 워터 두 번 플리즈” – 둘째가 엄마에게 물을 부탁할 때 쓰는 이상한 표현.
이런 예시도 함께 공유하니 가족들이 흥미로워하며 재미있게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당분간 대화 중에 가족어가 떠오르면 “이거다!” 하며 단톡방에 적어 넣는 일이 계속될 것 같아요. 명절처럼 온 가족이 모이는 날, 이런 활동을 함께 해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물론 가족이 다 모이는 일은 때때로 의견 충돌도 생기고 위험(?)할 수 있으니, 주의는 필요합니다. ^^;;)


이 책을 읽으며 자연스레 다른 책들도 함께 떠올랐습니다. 가장 많이 비교하며 읽은 작품은 마리야 스테파노바의 『기억의 기억들』입니다. 푸틴 체제를 반대하다 독일로 망명해 글을 쓰고 있는 러시아 작가로, 그 역시 역사 속 가족의 흔적을 더듬으며 글을 씁니다.

긴츠부르그가 그녀의 세밀한 기억을 바탕으로 서사를 구축했다면,

스테파노바는 고모의 일기장에서 시작된 단서들을 추적하듯 찾아가며, 가족에 대한 기억을 메타적으로 복원해 갑니다.

두 작가 모두 ‘가족의 서사를 복원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으며, 그 작업이 지닌 가치에 대해 다시금 되새기게 합니다.

이제 저에게 남은 일은, 우리 가족의 기억을 떠올리고 탐정처럼 추리하며 기록으로 남겨보는 것이라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름의 독서


요즘 화제작인 김금희 작가의 장편소설 『첫 여름, 완주』도 함께 소개하고 싶습니다.

아직 완독 하진 못했지만, 얼마 전 한 독서 관련 워크숍에서 이 책의 일부를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책이 낭독하기 좋게 쓰여 있어서 무척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낭독을 꽤 좋아합니다. 자기 전엔 누군가 읽어주는 오디오북을 듣기도 합니다. 가끔은 제가 책 한쪽을 녹음해 보기도 해요.

어릴 적,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가게에서 전래동화 테이프를 듣던 기억이 책을 좋아하는 일상을 사는 저를 만든 원경험이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이야기를 듣는 일, 또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일 모두 제게는 여전히 가장 즐겁고 편안한 일상입니다. 이 책도 이번 여름, 소리 내어 읽으며 완독해 볼 계획입니다.


요즘은 가족 독서 모임과 관련해 궁금한 점을 물어보시는 분들이 종종 계세요.

이번 주엔 아이작 아시모프의 『아이, 로봇』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전보다 책 분량이 많아, 아이들에게 읽을 시간을 조금 더 주었습니다.

긴 이야기일수록 어떻게 읽어냈을지, 그리고 이야기 기반 토론을 어떻게 깊이 있게 이끌어갈지, ‘엄마표 독서모임’ 진행자로서 여러모로 고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방학엔 이런 과정을 통해 저도 배우고, 아이들도 함께 자라나는 시간이 되고 있답니다.


이번 주도 제 편지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휴가를 떠나시는 분들도 많으시죠? 해마다 더워지는 지구이지만, 우리 마음만은 시원하게 유지하며 잘 지내보아요.

다음 편지도 함께해 주세요.

늘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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