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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9. 책편지] 생일

by 겨울아이 환

안녕하세요, 오늘도 제 편지를 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한 주는 어떻게 보내셨나요?

긴 연휴가 끝나고 맞은 한 주, 개학 날처럼 멍한 얼굴로 월요일을 열지는 않으셨나요?


연휴 후유증으로 한 주 내내 주말을 기다리며 보내고, 정말로 다시 기다리던 주말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이번 주에 두 아이의 생일이 연달아 있어, 여러 번의 생일 파티를 치르고 있습니다.

방금 전, 둘째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와 먹고 떠들고 한바탕 놀다 돌아가자 방에 고요가 찾아왔습니다. 이제야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한쪽에서 바라보다가, ‘생일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일까’ 스스로 묻습니다.

어린아이에게 생일은 단연 특별한 날이지요. 저도 그랬습니다. 40년 넘게 살아오며 각기 다른 풍경의 생일을 겪어 왔습니다. 어떤 해에는 친구들과 파티를 벌이며 들떴고, 어떤 해에는 대학 시험이 딱 생일과 겹쳐 긴장 속에 하루를 보냈습니다. 또 어떤 해에는 객지에서 혼자 밤을 지새우기도 했습니다. 모양이 어떻든, 생일은 저를 멈춰 서게 했습니다. 무언가 특별한 마음을 품게 되는 하루였던 셈이지요.

그런데 마흔을 넘기고부터는, 생일이 가까워질수록 괜히 어깨가 움츠러들기도 합니다.


우리는 왜 그렇게 생일을 기념할까요?
창세기에는 파라오가 생일잔치를 베푸는 대목이 나오고, 케이크의 연원을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기리는 달 모양 케이크에 연결하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케이크에 초를 꽂고 소원을 비는 관습은 유럽의 ‘킨더페스트’에서 아동의 생일을 축하하던 풍경과 닿아 있다고 하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조선 이후 돌잔치는 널리 퍼진 통과의례로 자리 잡았습니다. 결국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하는 문화는 한 존재의 탄생을 공동체 안에서 다시 확인하고 기억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문학 작품 속 생일 장면들도 떠오릅니다.
먼저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의 해리의 열한 번째 생일은 사촌 두들리의 생일과는 딴판입니다.

태어나서 즐거운 생일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는 해리, 그런데 바로 그날, 해그리드가 건네는 케이크에는 “HAPPEE BIRTHDAE HARRY”라고 삐뚤빼뚤 적혀 있습니다. 모양도 철자도 투박하지만, 해리가 처음 받아본 ‘자기 이름이 적힌 케이크’였을 겁니다. 해리는 그날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호그와트로 가게 됩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찰리는 생일에 받은 초콜릿 속에서 황금 티켓을 뽑아 듭니다. 행운의 여신은 가난한 소년의 생일을 모른 척하지 않습니다. 두 작품 모두 결핍 속에서 건져 올린 생일의 선물이 눈부시게 환한 ‘희망’으로 이어진다는 점이 닮아 있습니다.


레이먼드 카버의 유명한 단편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도 떠오릅니다.

아들의 생일 케이크를 찾아가지 못한 채 비극을 겪는 부모에게 제과점 주인이 따끈한 계피롤빵과 커피를 내어놓는 장면. 형광등빛이 따스한 햇빛으로 느껴질 만큼 환해지는 순간입니다. 저는 이 소설을 떠올릴 때면, 누군가의 생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세상을 떠난 날일 수도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축하와 애도의 경계가 생각보다 가까울 수 있다는 것을 배웁니다. 제 생일은 가수 김광석 씨가 세상을 떠난 날이기도 합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일과 이 소설이 얽혀서 읽힙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나의 탄생을 기뻐하는 일’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그날이 우리 각자의 삶을 더 넓은 감정으로 연결하는 날일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루이스 캐럴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험프티 덤프티는 앨리스에게 언버스데이 선물을 자랑합니다.

태어난 그 하루를 빼고 남은 364일을 모두 축하한다니, 발상이 장난스럽습니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선물’이라는 생각으로 읽으면, 그 농담이 묘하게 진지해집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버스데이 걸〉에서는 스무 살 생일 밤, 대타를 못 구한 주인공이 식당 카운터를 지키다가 베일에 싸인 인물인 레스토랑 사장을 직접 만나고는 그로부터 소원을 빌라는 권유를 받습니다.

그녀는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지금의 삶이 아주 나쁘지 않다는 사실로 그날의 소원을 짐작합니다. 이 작품의 후기에는 생일은 누구에게나 1년에 단 하루 공평하게 돌아오는 날이니 소중하게 여기라는 작가의 말이 있습니다.


생일에 관한 이야기들을 떠올리다 보니, 생일의 의미가 조금 또렷해진 듯합니다.

아이들의 생일날, 저는 제가 이 지구에 머무는 뜻을 새삼스레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생일은 여전히 특별합니다. 나를 축하하는 날이면서, 동시에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10월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 어느 시절보다 멋진 가을날, 하루하루가 여러분의 언버스데이가 되길 바라겠습니다.
다음 주에도 제 편지와 함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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