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참 좋은 가을 주말입니다. 잘 즐기고 계신지요?
저는 아침에 잠시 운동을 한 뒤, 밀린 일을 차근차근 덜어냅니다.
쌓인 일 중에서는 가장 끌리는 일부터 꺼내 처리합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 편지를 쓰는 일입니다. 편지 쓰기 직전에는 근처 별다방에서 차 한 잔을 마셨습니다.
그 시간에는 특별히 무엇을 하지 않고, 밖에 굴러다니는 낙엽을 바라보며 소위 ‘멍때리기’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 이렇게 컴퓨터 앞에 바로 앉습니다.
쉬는 시간은 에너지를 채워 준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지난 편지에서는 여행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오늘은 일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제게 집안일은 여전히 저를 번민하게 만듭니다.
우선 집안일 중에서 내가 만들어내는 몫은 수긍합니다. 그래서 바깥에서 일하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제가 집에 없는 시간에는 제가 만들어내는 집안일이 줄어들어서인지는 몰라도, 일들이 조금 사라지는 듯 느껴졌거든요.
그럼에도 수긍하기 어려운 일들까지 홀로 내가 다 맡고 있다고 느껴질 때면, 화가 치밉니다.
왜 집안일은 늘 당연히 되어 있어야 하는 일이고, 안 되었을 때의 모든 화살은 나에게 돌아오는 걸까?
2025년에도 이런 반응을 감내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워킹맘으로 살면서 집안일과 관련한 저만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일을 줄일 방법을 궁리하고, 대신해 줄 기계를 들이고, 가족에게 분담을 요청하고, 이제 조금 자란 아이들에게는 일을 맡기고 방법을 가르칩니다.
그럼에도 이런 고민을 집에서 오직 나만 한다는 사실에서, 이 일의 주체가 ‘엄마’인 나 자신임을 확인합니다.
같이 워킹맘으로 사는 동료와 이런 농담을 주고받은 적이 있습니다.
“우선 이혼을 한다.
그리고 입주도우미 자격으로 우리집에 들어와서 산다.
이혼 전처럼 일은 똑같이 하되, 한 일에 대한 정산을 받는다. 그래도 이 일이 힘들게 느껴질까?”
농담 같지만, 계약과 비용의 언어로 집안일과 돌봄에 대해 생각해 보니,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를 정산해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내 옷을 개는 시간은 빼고, 다른 식구들의 옷을 개는 데 30분이 걸립니다.
내가 사용한 그릇은 내가 먼저 설거지하고, 나머지 그릇을 씻는 데 30분을 씁니다.
오늘은 월초라서, 아이들 학원비를 처리하는 데 15분을 투자합니다.
이렇게 시간을 적어두고, 시간당 시급을 월간으로 환산해 봅니다.
한 달이 끝나면, 내가 한 돌봄과 살림의 가치가 숫자로 어떤 얼굴을 띠는지 들여다 볼 수 있겠지요.
이렇게 집안일을 계약의 언어로 떠올리다 보니, 소설 한 편이 떠올랐습니다.
이주혜 작가님의 단편 「이소 중입니다」입니다.
이 작가님을 알게 된 이후 새 작품이 나오면 챙겨 읽습니다.
언니가 없는 제게 삶의 공기를 가르쳐 주는 듯한 작품이 많습니다.
이 소설의 설정은 이렇습니다.
번역가, 소설가, 시인이 등장합니다. (어릴 때 제가 꿈꾸던 직업들이네요.)
그중 시인은 이혼한 전 남편의 아버지, 즉 시아버지를 모시고 삽니다. 친구들은 이상한 동거라고 말하지만, 시인은 이것이 그저 ‘직업적인 생활’이라고 말합니다.
전남편에게서 시세대로 간병비를 받고, 시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시아버지의 아파트를 상속받는다는 조건의 계약서에 사인하고 돌봅니다.
소설가인 친구는 이를 정신 나간 일이라 평가하지만, 번역가는 불특정 고객에게 상처받는 자신보다 예쁨 받으며 일하는 시인의 근무 환경이 더 나아 보인다고 여깁니다.
누군가는 소설가처럼 씁쓸한 설정이라 느끼겠지만, “집안일의 가치는 얼마만큼일까”, “돌봄의 가치는 무엇일까”,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되묻게 합니다.
내가 가족으로 살며 하는 집안일의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요?
그 가치가 낮게 매겨진다면, 그 일에 몰두하기보다 다른 해결책을 찾는 편이 현명할까요?
돌봄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일이고, 누군가는 더 받고 누군가는 덜 받습니다.
그렇다면 가족 안에서는 누가 맡는 것이 옳을까요?
한쪽만 이 일을 한다면 그것은 부당한 노동일까요? 정산은 부당함을 걷어낼까요?
농담처럼 던진 질문이지만, 계산으로 환원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음을 다시 느낍니다.
그렇다면 가족은 무엇일까요. 가족 간의 사랑이란 혹시 이런 계산의 어려움을 완충하기 위한 진화의 산물일까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결혼을 하고 집안일이 제 삶의 일부가 된 지 2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오늘 저의 노동의 가치를 떠올리며, 투쟁을 이어가는 듯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다른 시선으로 일상을 돌아보니, 마음 한구석이 이상하게 가라앉고 정리가 됩니다.
이것은 읽고 생각하는 일의 힘일까요?
여러분의 일은 어떠신가요?
이제 11월입니다.
10월에는 비가 자주 내려 가을을 충분히 만끽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았는데, 11월은 쾌청한 하늘을 선사합니다.
혹시 일과 일 사이에 바쁘시다면,
잠시 단풍 든 산을 바라보고 심호흡하며 환기하시길요!
환기는 생각을 환하게 틔우고, 그 가치가 꽤 큽니다. ^^
다음 주에 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