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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곰 May 17. 2020

내 어린 시절 세탁소에서

단편

  우리 가족의 벌이는 열두 평짜리 세탁소에서 나왔다. 학교에서 돌아올 때면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가방을 방에 던져둔 후 아파트 상가로 쭐레쭐레 걸어갔다. 상가 귀퉁이 좁은 길에 인접한 곳에 우리 세탁소가 있었다. 나란히 놓인 세 대의 드럼 세탁기는 빨랫감을 잔뜩 넣은 채 빙글빙글 돌아갔다. 갖가지 옷가지가 걸린 사이를 돌아다니며 어머니는 옷을 안아 날랐고 아버지는 새하얀 증기를 내뿜으며 옷을 다림질했다. 내 자리는 다림판과 건조기 사이에 놓은 납작한 나무 의자였다. 나는 그곳에 쪼그리고 앉아 부모님이 일하시는 모습을 바라보곤 했다.

 

   건조기와 다리미가 내뿜는 열기 때문에 세탁소는 겨울에도 따뜻했다. 대신 여름이면 습하고 뜨거워 미칠 지경이었다. 아버지의 목덜미는 언제나 땀 때문에 번들거렸고 어머니는 삼십 초마다 한 번씩 이마를 훔쳤다. 그럼에도 나는 세탁소에서 나가는 대신, 나의 작은 의자에 앉아 검은 색 싸구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었다. 사실 라디오가 딱히 재미있지는 않았다. 단지 그곳이 내게는 아늑했다. 잠을 자고 일어나 아침밥을 먹는 것만으로 그 소용을 다하는 작은 아파트보다는, 이 세탁소야말로 나와 아버지와 어머니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집 같은 곳이었다.


   지방의 소도시 한쪽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였다. 대략 사백오십 세대가 입주해 있었고 그곳에서 나오는 빨랫감의 양은 우리 세 식구가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에서조차 나는 언제나 세탁소에 있었다. 저녁시간이 되면 세탁소 구석에 있는 좁아빠진 공간에 앉은뱅이 상을 놓고 거기서 세 식구가 밥을 먹었다. 대체로 김치와 나물뿐인 밥상이었지만 내게는 그걸로 족했다. 가끔씩 인근 공장에서 단체 일감이 오면 아버지는 수화기를 든 채 기분 좋게 묻곤 하셨다. 짜장면 먹을래, 짬뽕 먹을래? 나는 언제나 짜장면이었다. 아버지는 대체로 짬뽕이었다. 어머니는 면이 싫다며 양철 양푼에 담긴 식은 밥을 꺼내시기 일쑤였다. 하지만 내가 짜장면을 먹고 나면 어머니는 남은 짜장에다 밥을 비벼 맛나게 드시곤 했다.  


   세탁소 일이 항상 무난하지는 않았다. 가끔씩 사고가 생기기도 했다. 드라이해야 할 바지가 일반 세탁기에 끼어들어가기도 했다. 뜨거운 스팀다리미는 자칫 잠시만 실수해도 옷에다 누런 자국을 남기기 일쑤였다. 갑작스런 소나기가 옥상에 널어 말리던 옷들을 습격한 일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손님들은 불평했고 아버지는 난감한 표정으로 담배를 물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몇 번이나 허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싸구려 옷이라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간혹 어차피 버릴 옷이었다며 인심 좋게 넘어가는 손님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비싼 옷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결혼식 때 입은 양복. 취업한 자식이 사 준 코트. 솜이 아닌 오리털이 들었다는 잠바. 그런 옷들에 사고가 나면 손님들의 얼굴은 험악해졌고 어머니의 목소리는 다급해졌다. 이거 어떡할 거예요? 정말 죄송해요. 백화점에서 산 건데. 아이고, 어떡해. 백화점이라니. 그쯤 되면 어머니는 울상이 되곤 했다. 육 층짜리 백화점은 그 도시의 시내 한가운데 위치해 있었다. 아파트 주민들의 비싼 옷은 대개 그곳에서 비롯되었다. 백화점에서 옷이나 신발을 샀다는 건 교실에서 족히 두 달 치는 되는 자랑거리였다. 


   발단은 잠바였다. 내 나이또래쯤 되는 아이가 입을 법한 작은 잠바였다. 양쪽 주머니에는 반짝이는 놋쇠 단추가 달려 있었고 가슴에는 뜻 모를 영어 단어가 적혀 있었다. 소매에는 멋스러운 장식이 수놓아져 있었다. 하지만 건조기에서 꺼낸 그 옷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났고, 옥상에 이틀 동안 널어 말려도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마치 갱지를 태운 것 같은 냄새였다. 아버지는 잠바에다 코를 대고 킁킁대더니 난처한 투로 말했다. 이거 너무 오래 건조한 거 같은데. 


   옷의 주인은 항의했다. 아버지는 다시 담배를 물었고 어머니는 다시 사과했다. 그러나 단지 사과로 끝나지는 않았다. 옷의 주인은 잠바가 아들의 국민학교 입학 선물로 친척 어르신이 사 준 것임을 말했다. 그리고 그 옷의 구입처가 백화점임을 강조했고, 다시 그 가격을 언급했다. 가격을 들은 어머니의 이마에 주름이 깊이 파였다. 아버지는 하마터면 입에 문 담배를 떨어뜨릴 뻔했다. 그 옷이 그렇게 비싼가요? 어머니가 조심스레 물었고 옷의 주인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백화점에서 샀다니까요!


   다음날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버스에 탔다. 반대쪽 손에는 커다란 검은색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도중에 한 번 갈아타며 삼십 분쯤 가자 백화점이 나왔다. 내가 그곳에 직접 간 것은 처음이었다. 안에 들어가자 사방이 백색과 은색으로 번쩍거려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생전 처음 타 보는 에스컬레이터에 신이 난 내 손을 억지로 잡아끌며 어머니는 삼 층에 있는 매장으로 향했다. 깔끔한 정복을 차려입은 젊은 점원이 고개 숙여 인사하는 앞에서 어머니는 비닐봉지 속에 든 것을 주섬주섬 꺼내 내밀었다. 이거 여기서 산 건데 이상한 냄새가 나서요. 혹시 에이에스 되나요? 점원은 능숙한 태도로 옷에 달린 표를 확인한 후 잠바의 냄새를 맡아 보았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아무래도 세탁하실 때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요. 고객 과실이라서 교환은 어렵습니다. 혹시 세탁소에 맡기셨던 옷이면 그쪽에 항의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짤막한 한숨을 내쉰 후 말했다. 이거랑 같은 옷 하나 주세요. 같은 사이즈로요. 점원이 어디론가 가더니 곧 새 옷을 가지고 왔다. 어머니는 가격표를 확인했고 그렇잖아도 어두웠던 얼굴이 더 심하게 어두워졌다. 어머니는 품속에서 누런 봉투를 하나 꺼냈다. 그리고 구깃구깃한 지폐뭉치를 꺼내 천천히 새어본 후 내밀었다. 그 손은 떨리고 있었다. 


   돈이 점원에게 넘어가고 잠바가 어머니에게 넘어왔다. 어머니는 한 손에는 검은 색 비닐봉지를 들고 다른 손에는 하얀 백화점 쇼핑백을 든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나는 그 손을 잡아끌며 칭얼거렸다. 엄마 나 배고파. 어머니는 문득 정신이 든 듯 중얼거렸다. 그래. 우리 아들 배고프구나. 밥 먹으러 가자. 백화점 육 층의 경양식집에서 나는 돈가스를 먹었다. 세상에 그만큼 맛있는 음식은 없었기에 나는 걸신들린 듯 뱃속에 돈가스를 밀어 넣었다. 어머니는 속이 안 좋다며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폭풍 같은 식사가 끝나자 어머니는 검은 색 비닐봉지에 든 잠바를 꺼냈다. 그리고 내게 손짓했다. 잠시 이리 와 보렴. 나는 입에 묻은 소스를 핥으며 탁자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이거 한 번 입어봐. 어머니가 나의 오래된 겉옷을 벗긴 후 잠바를 내게 입혔다. 세탁소를 출발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내내 어머니의 손에 들려 있었던 잠바였다. 깨끗이 세탁된 옷은 마치 새 것 같았다. 잠바가 몸을 감싸자 생전 처음 느껴보는 포근한 감촉에 나는 황홀함마저 느꼈다. 목 아래에서 올라오는 퀴퀴한 냄새만 제외하면 너무나 완벽한 잠바였다. 그리고 나는 그 냄새에 대해 언급해서는 안 되겠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어머니가 내 얼굴을 보다 조심스레 물었다. 너 이거 입을래? 응! 나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어머니의 얼굴에 복잡한 표정이 깃들었다. 안타까움이, 짠한 마음이, 그리고 희미한 미소가 그곳에 있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나는 그 잠바를 입고 있었다. 다음날도, 그 다음 달에도, 이듬해에도 나는 여전히 그 잠바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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