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선물 (4)

단편

by 글곰

(4)


“저 이사 가요.”


언제나처럼 책을 읽은 후 집으로 가는 길에 녀석이 툭 던진 말이었다.


나는 놀랐다.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다. 그러나 곧 녀석이 농담 따위와는 친하지 않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녀석이 말했다.


“엄마가 돈을 열심히 벌어서 집을 구했대요. 이제 미용실에서 안 자도 된대요. 내 방도 생긴대요. 책상도 사 주실 거래요.”


담담하게 들리는 말투였다. 하지만 녀석을 몇 년이나 보아 왔던 나는 녀석이 무척이나 기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불현듯 녀석이 벌써 중학생이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미용실 뒤쪽의 골방은 키가 훌쩍 자란 녀석이 엄마와 함께 몸을 눕히기에만도 좁을 것이 분명했다. 또 중학생이라면 초등학교 시절과는 달리 이래저래 공간이 많이 필요할 터였다. 그러니 마땅히 축하해주어야 할 일이었다.


“축하한다. 그래, 언제 이사 가니?”


“내일요.”


녀석이 나를 놀라게 하는 건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녀석은 그 일을 오늘 하루에만 두 번이나 해냈다.


“...... 축하한다.”


이유 모를 섭섭함을 느끼며 나는 잠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다가 책장으로 걸어가서 책 한 권을 골라 뽑아 들었다. 그리고는 녀석에게 다가가 책을 내밀었다.


“이거, 며칠 전에 새로 들어온 건데 아직 안 봤지? 선물이다.”


“기나긴 이별?”


녀석이 제목을 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레이몬드 챈들러면 대환영이죠. 하지만 하필 이 제목은 대체 뭐예요?”


“글쎄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는 한 마디 덧붙였다.


“그냥 크리스마스 선물이야.”


“크리스마스는 사흘이나 지났는데요.”


“그럼 늦은 선물이라고 해 두지, 뭐.”


“...... 뭐, 고마워요.”


녀석은 꾸벅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러더니 휑하니 밖으로 나가 버리고 말았다. 별다른 인사도 없이. 작별도 없이. 나는 꽤나 황망하게 녀석의 뒷모습만 눈으로 좇을 뿐이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자식을 둔 부모의 마음이 이런 건가 싶었다.


다음날에 녀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녀석이 서점에 오지 않은 건 오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미용실 문도 닫힌 채 열리지 않았다. 어쩐지 심란하여 나는 그날 평소보다 일찍 서점 문을 닫고 돌아갔다. 집에 가는 길에는 맥주 한 캔도 샀다.


하지만 그다음 날에 녀석은 모습을 나타냈다. 그것도 평소보다 이른 시각이었다.


“이사 갔다며?”


내가 놀라서 묻자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갔죠.”


“그런데 여긴 웬일이냐?”


“뭐가 웬일이에요?”


녀석은 대체 무슨 말을 하느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엄마가 미용실 문 열었으니 나도 따라왔죠. 학교는 방학이거든요.”


“미용실 문 닫았던데.......”


멀거니 중얼거리는 나를 보며 녀석은 고개를 저었다.


“미용실 문 닫으면 우리 가족은 뭘 먹고 살라고요. 그리고 이삿날에 어떻게 문을 열어요?”


녀석은 멍청한 표정으로 서 있는 나를 무시하고 매대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무슨 책을 볼까 고르는 과정은 필요 없었다. 녀석의 손에는 이미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레이몬드 챈들러. 기나긴 이별.


시멘트 바닥에 앉은 채 독서에 열중하고 있는 녀석을 내려다보다, 나는 문득 작은 의자라도 하나 가져다 놓을까 하고 생각했다.

이전 03화크리스마스 선물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