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3)
이웃사촌은 그 시절에도 이미 사멸해가던 낱말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세 들어 있는 작은 상가 건물에서만은 그 단어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물론 그 공로는 전적으로 수다스러운 김밥집 사장님에게 돌려야 마땅했다. 김밥가게를 삼십 년이나 운영하면서 세 남매를 모두 대학에 보낸 억척스러운 김밥집 사장님은 사람이 좋은 것만큼이나 대단한 수다쟁이였고, 같은 상가에 있는 사람이 식사 차 찾아올 때마다 주변의 소문을 시시콜콜하게 늘어놓는 것이 유일무이한 취미였다. 그리고 주변에서 가장 저렴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 김밥 가게였기에 상가에 입주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곳에서 밥을 먹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상가의 여섯 가게 사장들이 서로에 대해 가족 이상으로 잘 알게 된 건 필연이었다.
예컨대 내가 미용실 사장님의 굴곡 많은 인생사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이렇다. 고작 나이 스물에 미혼모가 되었고, 아이 아빠는 도망간 후 소식이 끊겼으며, 배가 불러온 채로 식당 보조 일을 하다, 마흔이 훌쩍 넘도록 노총각이었던 식당 주인과 결혼했고, 뱃속의 아이를 낳았으며, 세 가족이 그럭저럭 화목하게 지냈고, 식당 장사가 꽤나 잘 되었던 남편이 미용실까지 하나 차려 주었지만, 갑작스레 뇌일혈로 쓰러진 남편이 일 년 반 동안이나 투병하다 결국 눈을 감았고, 식당과 미용실을 모두 처분하여 치료비와 제반 비용을 지불하고 나니 빈털터리가 되었으며, 결국 지어진 지 삼십 년이 넘어서 임대료가 엄청나게 저렴한 우리 상가의 손바닥만 한 매장 하나를 얻어 다시 미용실을 시작했지만, 따로 집을 구할 수 없어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자식과 함께 미용실 뒤쪽에 반 평짜리 골방에서 먹고 잔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미용실 사장님은 매일 가게 문을 열었다. 하지만 학교는 오전이면 끝났고 아이는 돌아오면 할 일이 없었다. 그리고 주말이면 온종일을 홀로 보내야 했다. 혼자 미용실을 이끌어가야 하는 미용실 사장님에게는 녀석을 돌보아 줄 겨를이 없었다. TV마저 없는 골방에서 녀석의 유일한 취미는 책을 보는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미용실 옆에는 나의 작은 서점이 있었고 그래서 녀석은 자주 찾아왔다. 이삼일 간격으로 찾아오던 것이 이내 매일의 일과가 되었고 소심하게 쭈뼛거리던 태도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제 집을 드나들 듯 자연스럽게 변했다.
나는 괜찮았다. 녀석은 책에 집중하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기에 손님맞이에 아무 방해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책을 지저분하게 보거나 더럽히지도 않았다. 오히려 인상적일 정도로 책을 소중하게 다루었다. 적어도 책을 사 간 손님이 누가 펼쳐본 흔적이 있다며 불만을 제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린아이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는 건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