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8)
그 일은 녀석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되었다.
“얼마 전에 찾아봤는데요. 외국에서는 카페와 서점의 결합이 인기래요.”
처음에는 그저 지나가는 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녀석은 서점에 들를 때마다 계속해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사람들이 서점에 와서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는대요. 그리고 재미있는 책이면 사 가는 거죠. 그러면 도서 매출도 늘어나고 가외로 커피를 파는 수입도 생긴다는 거예요. 또 새로운 문화 중심지로 젊은이들의 방문을 이끌어내기도 한다고요. 어때요? 해 볼 생각 없어요?”
나는 솔직히 당혹스러웠다.
“이 좁아빠진 서점에 커피를 마실 공간이 어디 있어?”
“옆 가게 비었잖아요. 거기 얻으면 되지 않아요?”
김밥집 사장님이 이제는 일 그만두고 손주나 보면서 살 거라고 선언한 뒤 사십 년이 넘도록 운영하던 가게의 문을 닫은 게 불과 며칠 전의 일이었다. 임대문의 종이를 붙여 두긴 했지만 워낙 허름한 건물이라 그런지 가게를 보러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 마음만 먹으면 옆 가게를 빌리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난 여전히 난색을 표했다.
“내가 돈이 어디 있냐. 그리고 난 애당초 커피를 내릴 줄도 모른다고. 믹스커피도 잘 안 마시는데 무슨.......”
녀석은 한숨을 쉰 후에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꽤나 자주 본 표정이었지만 그렇다고 쉬이 익숙해지지는 않았기에 나는 찔끔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녀석은 그날따라 더 이상 잔소리를 늘어놓지 않고 돌아갔다.
다음날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녀석은 내게 메모지 한 장을 내밀었다.
“이거 주문해 줘요. 전부 다 살 거니까.”
목록을 훑어본 나는 당혹스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네가 이걸 다 산다고? 정말?”
“정말이죠. 내가 왜 거짓말을 해요?”
“아니, 그래도.......”
나는 중얼거리며 다시 한번 목록을 읽어 내려갔다. 초보 바리스타의 비법. 원두커피의 세계로. 세계의 카페들. 커피 한 잔 하시지 않으실래요? 기타 등등 대략 열다섯 권쯤 되는 목록이 죄다 커피와 관련된 책이었다.
“제가 다 읽고 나면 빌려드릴 테니까 다 읽어야 해요. 아셨죠?”
녀석이 몇 번이나 다짐하더니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어서 출근해야 한다며 쌩하니 나갔다. 홀로 남은 나는 눈을 끔뻑이다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녀석의 추진력에 감탄했다. 과연 젊어서 그런지 활력이 넘치는구먼.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고 스스로 중늙은이가 된 기분을 맛보았다. 그런 후에야 나는 내가 녀석의 나이였을 때는 저렇게 활력이 넘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