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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곰 Dec 15. 2021

그 남자가 찾아온 밤

단편

똑똑. 


나는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한밤중인 데다 진눈깨비가 휘날리고 있어 창밖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알아볼 수 있었다. 마치 지금 막 흩뿌려진 것처럼 빛나고 있는 선명한 핏빛 그림자를. 

똑똑. 

다시 한 번 소리가 울렸다. 마치 재촉이라도 하듯 급박한 속도였다. 

나는 들고 있던 책을 떨어뜨렸다. 오만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들끓었다. 개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건 현실부정이었다. 

‘그럴 리 없어.’

나는 생각했다. 

‘여긴 17층인데.’

그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한결 급박해진 소리가 들렸다. 

똑똑.

몸이 생각을 앞질러 움직였다. 나는 고장 난 기계처럼 일어서 창가로 걸어갔다. 그리고 잠금장치를 푼 후 천천히 창을 열었다. 창문 틈새로 불어 닥친 차가운 공기에 절로 몸이 떨렸다. 

놈은 창문 틈으로 크고 두꺼운 손을 들이밀더니 거칠게 창을 열어젖혔다. 마치 곰처럼 거대하고 위압적인 덩치가 방 안으로 성큼 들어왔다. 놈은 숨을 한 차례 내쉬더니 털투성이인 머리를 한 차례 흔들어 들러붙은 진눈깨비를 떨어냈다. 그러고는 나를 노려보면서 거칠게 힐문했다.

“왜 이렇게 늦게 열었지?”

놈의 목소리는 낮고 잔뜩 쉬어 있었다. 나는 더듬거렸다. 

“당신이 왜 여기.......” 

 “왜냐고?”

탁한 웃음소리는 마치 지옥의 무저갱에서 흘러나온 소리처럼 들렸다. 

“내 존재를 알고 있다면, 내가 온 이유도 모를 리 없을 텐데.”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밖에 아냐.

“아냐. 그럴 리 없어.”

 “그건 네 생각일 뿐이지.”

놈이 쿡쿡 웃더니 나를 노려보았다. 

“현실부정 따윈 걷어치우라고. 이봐. 슬슬 네 지난 삶에 책임을 져야 할 때가 되었잖아?”

놈이 나를 향해 한 발짝 다가섰다. 단지 한 걸음일 뿐인데도 시야가 꽉 찬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위압감에 나는 누가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뒤로 자빠질 뻔했다. 하지만 그 순간 놈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여 나의 손목을 낚아챘다.  

“조심하라고. 다치면 큰일이니까.”

놈이 비아냥거리면서 내 팔목을 놓았다. 시큰거리는 팔목을 반대쪽 손으로 주무르며 나는 놈의 눈치를 살폈다. 놈은 두 다리를 벌리고 방 한가운데 버티고 서 있었다. 그럴 이유는 없었지만, 만일 싸운다 해도 내가 박살나서 창밖으로 내던져질 때까지는 미처 삼 초도 걸리지 않을 터였다. 

놈의 목소리는 더욱 낮아져서 흡사 늑대가 으르렁대는 것처럼 들렸다. 

“선한 일에는 보답을. 악한 일에는 보복을. 그게 세상의 이치다. 이제 그쯤은 알 나이일 테지. 안 그런가?”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놈은 아주 잠깐 키득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심각한 얼굴로 선언했다. 

“이제 내가 할 일을 하도록 하지.”

놈은 품속에 손을 밀어 넣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금방 닥쳐올 순간을 기다렸다. 
마치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 흐른 후 손에 낯선 감각이 느껴졌다. 
나는 눈을 떴다. 

방 안에는 나뿐이었다. 

젖혀 놓은 커튼이 강풍에 펄럭였다. 열린 창문에서 진눈깨비가 들이쳤다. 놈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뒤늦게 추위를 느낀 나는 황급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내가 예상한 물건이 있었다. 나는 그걸 눈높이까지 들고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하늘에서 내리는 첫눈처럼 하얀 포장에 선혈처럼 붉은 띠가 둘러진 그것을. 

방문 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철수야. 뭐하니?”

 “아 엄마.”

나는 허둥거리면서 대답했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것을 황급히 책상 아래다 쑤셔넣었다. 다시 몸을 일으키자마자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나 책 보고 있어.”

 “어머. 방이 좀 춥네.”

엄마가 걱정스러운 듯 말하더니 곧 화제를 돌렸다. 

“일찍 자야지. 일찍 자야지만 산타가 선물을 준다고 했잖니.”

나는 책상 아래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리고 아주 잠깐 고민했지만 곧 마음을 정했다. 착한 아들로서 나는 천연덕스레 대답했다.  

“알았어, 엄마. 일찍 잘게요.”

 “메리 크리스마스.”

엄마가 말한 후 밖으로 나갔다. 

나는 책상 아래에 숨겼던 물건을 다시 꺼냈다. 그리고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았다. 엄마의 말이 사실이 아님을 나는 이미 깨닫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시선을 내려 황홀하게 바라보았다. 산타가 가져다 준 선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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