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울증에 걸린 공무원입니다 01
F322. 정신병적 증상이 없는 중증의 우울에피소드.
제가 진단받은 병명입니다.
정확한 뜻을 찾아보니 좋은 점과 나쁜 점이 하나씩 있더군요.
좋은 점은, 흔히 말하는 ‘정신병’까지는 가지 않았다는 겁니다. 환청이나 환각 따위 말이지요.
나쁜 점은, 경도나 중등도가 아닌 ‘중증’ 우울이라는 겁니다.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런 겁니다. 미치지는 않았지만 심한 우울증에 걸렸다는 거죠.
정확한 진단을 받은 건 얼마 전의 일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돌이켜 생각해 보면, 발단은 아마도 거의 10개월 이전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증세가 그때부터 나타났으니까요. 물론 그 때는 그게 우울증이라거나 그 전조 증상이라는 인식조차 없었습니다. 그저 너무 피곤해서 혹은 스트레스를 받아서 잠시 상태가 안 좋은 정도로만 생각했지요. 더군다나 중간에 한동안 괜찮았던 시기도 있었기에, 저는 단지 그 때의 제가 잠시 상태가 좋지 않았을 뿐이며 다시 멀쩡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가끔 후회합니다. 그 때 미리 정신의학과를 찾아서 적절한 치료를 받았더라면 지금 이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을 거라고요.
새삼스럽지만 우울증은 무서운 병입니다. 제가 가장 상태가 좋지 않았을 때, 저는 하루에 수백 번씩 저의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이건 흔히 말하는 ‘죽고 싶다’는 감정과는 전혀 다릅니다. 내가 무언가 잘못을 저질렀고,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하며, 그렇기에 당연한 귀결로서 죽어야 한다는 논리적 구조가 제 머릿속에 굳건히 박혀 있었습니다. 저는 단 한 번도 죽음을 욕망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지금의 상황을 마무리할 유일하고 합당한 방법이 나의 죽음이라고 인식했을 뿐입니다.
저는 제 자신의 상황밖에 모르기 때문에 모든 우울증이 이렇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제 경우에는, 차를 운전하면서 앞서가는 버스를 볼 때마다 제가 그 버스의 꽁무니에 충돌한 후 버스 하단으로 빨려 들어가 그대로 사망하는 과정을 생각했습니다. 버스를 볼 때마다 한 번도 빠짐없이 그런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버스 뒤에 부딪히고 싶다는 의지는 없었습니다. 다만 그런 식의 죽음이 그저 당연한 것으로 인식이 되었을 뿐입니다.
만일 그때의 상황이 지속되었더라면, 저는 언젠가 너무나도 합당한 결말이라고 느끼면서 액셀을 밟아 버스 뒤를 들이받았을 겁니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그 때의 저에게는 멀쩡한 정신이 약간이나마 남아 있었습니다. 그 멀쩡한 정신이 제게 속삭였습니다. 넌 지금 정상이 아니야. 너는 아내가 있고 딸이 있어. 그러니 당장 방법을 찾아봐.
그래서 저는 비틀거리고 헐떡이면서 집 근처 정신의학과를 찾아가 간절히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너무 늦기 전에.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의 저는 나아졌습니다. 정확하게는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해야겠지요. 우울증은 감기처럼 며칠 쉬면 낫는 병이 결코 아니라고 합니다. 꾸준히 약을 먹으면서 경과를 관찰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게다가 약을 먹는다고 해서 상태가 계속해서 좋아지기만 하는 것만도 아닙니다. 마치 파도처럼 시시때때로 감정이 추락하는 경우가 있고, 그 때마다 몹시 힘듭니다.
그래도 지금의 저는, 적어도 죽음에 대한 생각은 자주 하지 않습니다. 그것만 해도 큰 진전입니다. 아예 하지 않는다면 좋겠지만 거기까지 가려면 아무래도 좀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이 글을 쓰는 데는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로는 심리상담가가 강력하게 권했기 때문입니다.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뭐라도 꾸준히 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가장 흔히 권하는 게 운동이지만, 꾸준히 글을 쓰는 것도 좋다고 합니다. 마침 저는 글을 쓰는 걸 좋아하기도 하지요. 직장 업무와 우울증 등 몇 가지 이유 때문에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지만, 이제 당분간 꾸준하게 글을 남겨보려 합니다.
둘째로는 저 같은 상황에 빠진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우울증에 걸린 공무원이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공무원에 대한 기사도 점점 더 자주 보입니다. 어쩌면 제가 그런 기사를 자꾸만 클릭하기 때문에 알고리즘이 그렇게 이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저는 이 글이 누군가 한 사람에게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왜냐면 이렇게 말하고 있는 저 자신조차도, 실제로 우울증에 걸리기 전까지는 우울증이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가 겪은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된 것들이 있었기에 그런 것들을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