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울증에 걸린 공무원입니다 03
처음으로 스스로의 상태가 나쁘다고 자각했던 건 주말이었습니다. 휴일인데도 불구하고 업무상 출근해야 하는 날이었지요. 그날따라 현장에서 자꾸만 이유 모를 불안한 마음이 들더군요. 그래서 저는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쓰레기를 주워 쓰레기통에 버리는 작업을 반복했습니다. 그게 부서장이 해야 할 일이어서가 아니라, 뭐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안정이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계속해서 불안한 느낌이 들었고 마음이 자꾸만 초조해졌습니다. 그날 하루에만 표정이 너무 안 좋다는 이야기를 한 대여섯 번쯤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 주는 그럭저럭 지나갔지만 제 상태는 여전했습니다. 그때쯤 우연히도 그 시기에 심리상담 센터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전 직원이 참여한 정신건강 조사에서 유독 안 좋은 수치가 나왔으니 상담을 받아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권유였죠. 저는 승낙하고 바로 다음날로 상담 일정을 잡았습니다.
다음날 퇴근 후 찾아간 상담소는 겉으로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 작은 사무실이었습니다. 한 시간 가량의 첫 면담에서 제 결과물을 놓고 설명을 해 주더군요. 우울증 척도 점수가 예상보다는 높지 않았기에 저는 농담 삼아 말했습니다.
“제가 생각보다는 살만한 모양이네요.”
상담사가 저를 물끄러미 보더니 차분하게 말했습니다.
“이 정도면 상당히 안 좋은 위험 수치예요.”
그리고 자해 수치가 매우 높게 나왔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건 잘못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던 적도, 그럴 마음이 들었던 적도 단 한 번도 없었다고요. 그러자 상담사가 설명했습니다. 이 수치는 설령 자해를 실행하지 않더라고, 스스로가 처벌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서 높게 나온다고요. 그 말을 들은 순간 뭔가 납득이 갔습니다. 저는 제 업무 처리가 완벽하지 못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나는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거라고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상담 과정에서 정신의학과를 다녀보는 것도 한 번 고려해 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정신의학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있고, 정말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의구심도 있어서 그날은 대충 고개만 끄덕이고 상담을 끝냈습니다.
제 상태가 정말로 안 좋다고 확인한 건 불과 며칠 후의 일이었습니다. 얄궂게도 학부모 참관수업을 가 있을 때였지요. 저는 지금까지 어지간하면 학부모 참관수업에 참석해 왔습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어떻게 지내는지를 보는 건 즐거운 일이니까요. 하지만 그날, 제 몸은 교실 뒤편에 서 있었고 눈은 아이를 향하고 있었지만 제 정신은 아이를 보고 있지 않았습니다. 대신 머릿속으로 업무와 연관된 법률의 조항을 검토하고, 문제가 생길 가능성을 가늠하고, 그 가능성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뭔가 사달이 나고, 그 결과 제가 처벌받고, 그래서 스스로 죽음을 맞이하는, 그런 일련의 과정을 생각하고 있었지요. 참관수업이 진행되는 내내 끊임없이 되풀이해서 말입니다.
수업이 끝나고 학교 밖으로 나오면서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그날 역할극을 맡아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아이의 모습이 제 기억 속에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아이가 참관수업에서 역할을 맡아 조잘조잘 이야기하는 내내, 아빠인 저는 저 스스로의 죽음만을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건 매우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그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제 머릿속은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업무에서 잘못으로, 잘못에서 처벌로, 처벌에서 죽음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머릿속에서 끝없이 회전하고 있었습니다. 일어나서 샤워를 하면서 샤워기에 목을 매는 저를 생각했고, 차를 몰고 회사로 가면서 다른 차를 들이받는 저를 생각했으며, 회사 계단을 올라가면서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저를 생각했습니다. 제 머릿속은 온통 죽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날 처음으로 저는 출근하면서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고, 제 자리에 앉으면서 생각했습니다.
‘내가 미쳤나 보다.’
당장 집 주위의 정신의학과를 검색했습니다. 놀랍게도 제 예상보다 훨씬 많은 정신의학과 의원들이 있더군요. 그중 주차가 가능한 곳으로 선택하고 바로 전화를 걸어서 진료 예약을 잡았습니다. 생각보다 진료를 받는 사람이 많은지, 그날 당장은 어렵고 다음 날 오후로 일정을 잡아 주더군요. 전화를 끊자 뭔가 해냈다는 아주 조그만 성취감이 들었습니다. 그래. 요즘은 이렇게 정신과 다니는 사람도 많다고 하던데. 그렇게 생각하며 저는 스스로를 격려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