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울증에 걸린 공무원입니다 13
우울증의 핵심적인 증상은 말 그대로 '우울'입니다. 지속적으로 우울한 기분이 드는 겁니다. 그리고 단지 기분이 우울한 데서 그치지 않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다양한 증상이 함께 나타납니다. 상태가 심할 때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끔찍한 기분입니다.
인터넷에서 우울증을 찾아 보면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발간한 '정신장애 진단 통계편람(DSM)'의 기준이 주로 검색됩니다. 하지만 그건 의학적인 기준이고, 저는 단지 저 자신이 겪은 증상에 대해서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우울증의 증세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1) 우울한 기분
말 그대로 우울한 기분이 듭니다. 평소 일상생활에서 가끔씩 느끼는 우울함을 수백 배나 강화한 느낌이지요. 마치 누군가가 제 목을 움켜쥐고 심연 깊은 곳에 처박아버리는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그곳에서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할 느낌, 그리고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오직 죽음밖에 없다는 비참한 기분이 머릿속을 가득 채웁니다. 주변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나는 이렇게 우울한데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즐겁나' 싶어서 마음이 한결 더 비참해집니다.
2) 죄책감과 자책감. 처벌받을 거라는 생각
나 자신이 무언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듭니다. 별 것 아닌 실수에도 민감해지고, 내가 결정한 일에 대해서 자꾸만 잘못되었다는 강박관념이 생깁니다. 내 실수로 인해서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후회와 함께 누군가가 나를 처벌할 것이라는 확신에 가까운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그리고 그 처벌은 매우 무거울 것이기에 너무나 두렵고 겁이 납니다.
3) 죽음에 대한 끝없는 생각
첫 번째 및 두 번째 증세와 연관되어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결론이 저 자신의 죽음입니다. 지금의 상황을 초래한 건 나 자신이며, 이 상황은 당연히 나의 죽음으로 마무리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건 '죽고 싶다'는 감정이 아닙니다. '당연히 죽게 될 거다'라는 체념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죽음에 대해 생각합니다. 머릿속에서 나 자신의 죽음을 떠올리는 행위를 자꾸만 반복합니다. 자살과 관련된 기사를 자꾸만 찾아보게 됩니다.
4) 결정이 느려지고 확신이 없어짐
나 자신의 결정에 대한 확신이 사라집니다. 제가 결정을 내려놓고도 자꾸만 그게 맞는지 재확인해보고, 결정에 따른 리스크를 계속해서 과대평가합니다. 그러다 보니 급기야는 아무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경우조차 있습니다. 주로 업무에 관련해서 그런 증세가 있었지만, 심할 때는 오늘 점심을 뭘 먹는가 같은 아무것도 아닌 결정조차 매우 느려졌습니다.
5) 불안과 긴장, 만성피로
극도의 불안감과 긴장감을 느낍니다. 전화벨 소리라든지 카톡 소리 등에 깜짝깜짝 놀라고, 누군가가 저를 찾는다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쿵쾅거립니다. 또 긴장도가 올라갈 때는 옷깃 따위를 자꾸만 꽉 움켜쥐게 됩니다. 마치 운동을 한 것처럼 숨이 가빠질 때도 잦습니다. 그런 상태가 온종일 지속되다 보니 매우 심하게 피로감을 느끼는데, 문제는 그러면서도 밤에는 잠이 잘 안 오고 아침에 일찍 깬다는 점입니다. 피로가 회복될 겨를이 아예 없습니다.
6) 즐거움과 욕구 상실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줄어들고, 그 즐거움을 느끼려는 행위 자체가 줄어듭니다. 예를 들자면 책을 봐도 재미가 없고, 그러니 아예 책을 읽을 생각도 안 합니다. 마찬가지로 게임을 해도 재미가 없으니 컴퓨터를 켜지도 않습니다. 식욕도 마찬가지로 거의 없어져 버립니다. 그래서 몸무게가 많이 줄어듭니다. 심지어는 편의점에서 좋아하는 과자를 보고 먹고 싶어서 샀는데, 그걸 들고 집까지 오는 사이에 먹고 싶은 욕구가 사라져서 그대로 처박아놓은 적도 있습니다.
7) 체력 저하와 느려지는 행동
체력이 극도로 떨어집니다. 어쩌면 식욕이 떨어져서 식사량이 줄어든 것과도 관계가 있을지 모르지만, 여하튼 체력이 형편없어져서 평소라면 가볍게 다니던 산책길조차 헐떡이며 피곤함을 느끼게 됩니다. 자세도 늘상 구부정하게 되며 일상적인 행동 자체가 다소 느려집니다.
8) 강박적인 책임감 혹은 의무감
위에 있는 여러 가지 증세에도 불구하고 쉬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두 번째 증세와 관련되어 '내가 무언가 잘못을 했으니 출근해서 그걸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꾸만 쉬는 걸 기피합니다. 그래서 휴가를 내는 것도 망설여집니다. 어떻게든 자리를 비우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계속해서 나 자신을 밀어붙이게 됩니다.
이런 증세들 중 일부는 약 복용을 통해 나아지기도 했고, 일부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또 하루하루 그날의 상태가 어떠냐에 따라서 나타나는 증세도 있고 그렇지 않은 증세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겉으로 보기에는 우울증에 걸려 있는 게 맞나 싶기도 할 겁니다. 상태가 좋은 날에는 일반적인 사람과 거의 다를 바가 없거든요. 다만 지난번 글에도 언급했다시피 우울증은 마치 파도 같습니다. 하루 내내 즐겁게 웃고 떠들며 지내다가 다음날에 울면서 일어나는 경우도 흔합니다.
그래서 우울증은 더 힘듭니다. 간혹 '누군가는 내가 꾀병을 부리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싶은 걱정도 들곤 합니다. 다른 사람의 팔다리가 부러진 건 누구나 인식할 수 있지만, 우울증은 내면적인 것이라 그게 밖으로 표출되기 전에는 알아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때때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들과 관련된 기사를 찾아보면, 주변의 가족이나 지인들이 '전혀 몰랐다. 바로 전날까지도 아주 멀쩡해 보였다. 물론 가끔씩 힘들어 보이긴 했지만 최근에는 괜찮았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우울증에 걸린 후 저는 그런 반응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불과 하룻밤 사이에도, 심하게는 몇 분 사이에도 감정의 파도가 크게 출렁이면서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던 증세들이 불쑥 튀어나오곤 하니까요.
우울증은 무서운 질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