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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곰 May 26. 2023

우울증과 심리상담에 대해

나는 우울증에 걸린 공무원입니다 17

저는 우울증에 걸리기 조금 전부터 심리 상담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올해부터인지 아니면 그 전부터 진행된 프로그램인지 잘 모르겠으나, 여하튼 직장에서 매년 직원들을 대상으로 심리 테스트를 진행하고 위험군으로 분류가 된 사람에게는 무료 상담이 지원됩니다. 그 일환으로 일정횟수 동안 무료로 상담을 받게 되었습니다. 물론 사내에서 직접 하는 건 아니고 외부의 전문기관을 방문해서 진행합니다. 전화로 예약을 하고, 조퇴를 한 후에 시간에 맞추어 방문했습니다.  


제가 간 곳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간판도 표시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같은 건물 안에 카페 등 여러 시설들이 함께 입주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건물에 드나드는 사람이 심리 상담을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질 가능성은 거의 없는 구조였지요. 흔히 헐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이미지(고급스러운 소파, 어둑어둑한 분위기, 뭔가 건방져 보이는 상담가, 어마어마한 비용 청구 등)와는 전혀 다른, 작고 아늑하며 깔끔한 방에서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상담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첫 상담에서는 제가 응답했던 심리 테스트 결과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해 주더군요. 우울증 위험 수치가 꽤나 높은 편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정신의학과를 방문하는 것도 생각해 보라는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그게 제가 정신의학과에 찾아간 계기 중 하나가 되었으니만큼 그것만으로도 상담을 통해 큰 도움을 받은 셈입니다.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상태나 심리에 대해 타인에게 이야기를 할 기회가 생긴다는 점 자체가 참 좋았습니다. 다들 짐작하시겠지만 내가 이러이러해서 힘들다는 이야기는 남에게 쉽게 하기 어렵습니다. 왜냐면 그건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힘들면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이야기하라고 하지만, '정말로' 힘든 이야기는 너무나 격렬하고 부정적인 감정이기에 그걸 듣는 사람을 몹시 힘들게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나 좋아하는 친구일수록 더 드러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심리상담사는 그런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내가 이러이러해서 힘들다는 이야기를 기꺼이 할 수 있지요. 이해를 해준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나 자신이, 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면서, 솔직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상태가 완화됩니다. 


그리고 제가 알기로 심리상담은 '나 자신이 내면을 스스로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라고 합니다. 즉 스스로가 마음 속 문제의 원인을 찾고 그걸 해결해 가는 과정을 진행하며 상담사가 그걸 옆에서 도와준다는 거지요. 그렇기에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문제를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저는 인정욕구가 아주 강해서 남이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상황에 처하는 걸 기피한다고 하더군요. 업무를 잘 처리하려고 지나치게 노력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라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랬구나.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내가 정말로 그랬구나, 하고요. 이렇게 문제의 원인을 알게 된다면 그걸 해결하는 일도 조금은 더 수월해지는 법이겠지요. 




다만 저로서는 심리상담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예컨대 빈 의자 기법 같은 상담 기법이 제게는 상당히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허공에 대고 내 본심을 이야기하려니 마음 준비를 하는 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더라고요. 애당초 속마음을 남에게 잘 드러내지 않는 성향이 강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언젠가 상담사분에게 농반진반으로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저는 상담을 진행하기에 상당히 어려운 사람일 것 같네요."


상담사분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사실 그렇긴 합니다."


또 상담사분에게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 분이 추천해 주신 책이 하필이면 제가 무척 싫어하는 책이었기에 심히 어색함을 느낀 경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상담이 모든 걸 치유해주지는 않습니다. 저처럼 명확하게 진단이 나올 정도의 중증 우울증이라면, 당연히 약을 복용하는 게 우선이고 상담은 부차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칼에 손가락을 베였으면 당장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를 붙이는 게 먼저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럴지라도 제게는 상담 진행 자체가 꽤 도움이 되었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병가를 낸 후에도 꾸준히 차를 몰고 일주일에 한 번씩 센터를 방문하여 상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가끔씩은 숙제를 받기도 하는데, 그것도 열심히 하려고 나름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만 비용적인 문제는 분명 고려해볼 사항입니다. 제가 알기로 심리상담 비용은 1회당 10만원 가량입니다. 저는 일단 회사에서 나오는 10회분 무료 상담을 이용하고 있지만, 횟수가 넘어가게 되면 그때부터는 자비로 진행해야 합니다. 만일 직장에서 지원이 없는 분들이라면 이용이 훨씬 더 부담스럽겠지요. 다만 요즘은 지역 보건소마다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있고, 그 외에도 공공기관에서 지원되는 부분들이 있으니만큼 한번 알아보시는 걸 권해드립니다. 분명 도움이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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