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곰 May 25. 2023

우울증과 정신의학과에 대해

나는 우울증에 걸린 공무원입니다 16

흔히들 '정신과'라고 하면 생각나는 선입견이나 편견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정신의학과 방문 자체를 꺼리는 게 현실이지요. 하지만 배가 아프면 내과에 가고 뼈가 부러졌으면 정형외과에 가야 하듯, 마음(=뇌)이 아프면 정신의학과에 가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저는 제발 나를 살려달라는 심정으로 집 근처 정신의학과를 찾아갔습니다. 상태가 정말로 좋지 않다는 걸 스스로도 느꼈기에 망설임 따위는 없었지요. 그러나 주변 이야기를 들어 보면 여러 이유로 정신의학과 방문을 기피하곤 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다 보니 종종 때를 놓치곤 합니다. 저도 사실 정신의학과 방문 자체가 좀 더 일렀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후회를 하곤 합니다. 그랬으면 그렇게까지 끔찍했던 경험은 하지 않았을 것 같거든요. 하지만 그런 경험을 했기에 망설임없이 정신의학과를 찾아갈 수 있었던 셈이기도 하니, 이게 참 어려운 문제이긴 합니다. 




여하튼 제 경우에는, 정신의학과에 가서 가장 안심된 점이 바로 환자가 많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나만 유난하게 이상한 게 아니구나' 하고 깨달은 거죠. 우울증을 비롯하여 정신 관련 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무지 많습니다. 단지 지금까지 나 자신이 몰랐을 뿐이지요. 언젠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울증 약을 먹는 비율이 미국에 비해 거의 십분의 일 밖에 안 된다는 기사를 보았는데, 그게 정말인가 싶을 정도로 환자가 많습니다. 그래서 정신의학과는 몹시 북적입니다. 대체로 예약 없이 방문하면 아예 진료가 불가능하거나 혹은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하기 일쑤지요. 의사와 면담하려는 환자는 평일 낮에도 십 분 단위로 빼곡하게 들어차 있습니다. 


일반적인 정신의학과에는 쇠창살이 설치된 창문이나 자물쇠 달린 철문 따윈 없습니다. 진료받는 도중 양팔을 붙들려서 사지를 묶어두는 침대에 눕혀지는 일도 없습니다. 그저 보통 병원들처럼 접수대와 대기실과 진료실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진료실에 들어가 보면, 혹시 과로로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피곤한 기색의 의사분이 모니터 뒤편에 앉아 있을 따름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의사분을 잘 만났다고 생각합니다. 일견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하면서도 적당히 관심을 두는 균형감 있는 태도로 제 증세를 유심히 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상태가 안 좋다고 여겨지자 빠르게 약의 복용량을 늘려 주었고, 강한 어조로 휴식을 권하여 제가 병가를 내는 결심을 하는 데도 도움을 주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는 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다소의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병원에 왔으니 내일은 상태가 조금 더 나아질 거야, 하고요. 


그렇기에 저는 단언할 수 있습니다. 정신의학과와 의사는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이 의지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마음의 상태가 많이 좋게 느껴지시면 일단 진료를 받아 보세요. 그리고 정말로 상태가 안 좋다면, 약물 치료를 받으셔야 합니다. 제가 몇 차례나 언급했다시피 정신의학과에서 처방해 주는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는 그야말로 마술 같은 효과를 나타냅니다. 


물론 약을 비롯한 치료 수단들이 결코 완벽한 건 아닙니다. 약을 복용하고 있는 와중에도 여러 가지 증세들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내가 예전으로 돌아오지 못했다는 사실에 좌절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꾸준히 병원을 다니면서 약을 드신다면 분명 나아질 수 있을 겁니다. 저처럼요. 


비용 문제를 궁금해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의료보험 적용이 되다 보니 한 번 방문하여 상담하고 약을 받는 데 대략 만 원에서 이만 원 사이의 비용이 들더군요. 그 돈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나 자신을 구하는 비용이라고 생각하면 또 그보다 저렴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혹 마음이 아플 경우에는 정신의학과 방문을 꺼리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여담입니다만 저는 병원에 갈 때마다 심리 검사를 받고 있습니다. 첫날에는 네 가지인가를 한꺼번에 했고 그 다음부터는 방문할 때마다 하나씩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검사실이 북적이거나 할 일은 없습니다. 검사 문항을 카톡으로 받아서 대기실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제출하는 방식이거든요. 제가 이런 말을 하기에는 아직 조금 이른 나이인 것 같습니다만, 정말로 세상이 참 좋아졌습니다. 

이전 03화 우울증에 걸린 직장동료에 대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