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곰 May 24. 2023

우울증에 걸린 직장동료에 대해

나는 우울증에 걸린 공무원입니다 15

예전, 그러니까 제가 우울증에 걸리기 몇 해 전에, 같은 부서에서 근무했던 직원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적이 있습니다. 상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지만 같은 사무실 안에서 근무하던 직원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제게도 매우 큰 충격이었습니다. 나중에 그 직원과 친했던 직원이 말해 주기를, 한때 어느 시점에서 상태가 매우 안좋아 보였지만 그 이후로 몇 달 동안 상당히 괜찮아진 걸로 보였고 그런 선택을 하기 직전까지도 아무런 조짐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우울증에 걸린 이후로 제 증세에 대해 상당히 많이 찾아 보았습니다. 하지만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알기 어려운 것이 우울증이었습니다. 사람마다 나타나는 증세가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살이 찌지만 어떤 사람은 살이 빠지고, 어떤 사람은 잠이 늘지만 어떤 사람은 불면에 시달립니다. 게다가 이른바 '정신병'에 대한 편견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증세를 남들에게 감추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저는 감히 그 직원이 그런 선택을 하기까지의 과정을 짐작할 수도 없거니와 감히 짐작할 엄두조차 내지 못합니다. 그저 제가 가장 상태가 나빴을 때를 떠올리면서 그보다 더 힘들었겠구나, 하고 안타까워할 따름입니다. 




공무원의 자살은 더 이상 드물지 않은 기삿거리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무려 13일 연속으로 서로 다른 공무원이 자살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서글픈 일입니다. 그리고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어쩌면 저도 그렇게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에 심리상담 센터와 병원을 찾아갔고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발작을 일으켰지만 그때마다 혼자 있지 않았기에 어찌어찌 버텨냈습니다. 위아래를 막론하고 주위 사람들은 제가 쉬어도 된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병가를 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매우, 정말이지 매우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저처럼 운이 좋지는 않을 겁니다. 특히 직위가 낮은 직원일수록 더욱더 그렇겠지요. 직위가 낮은 직원은 스트레스가 큰 현장 업무를 직접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위계서열이 강한 공무원 조직의 특성상 윗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고작 며칠 동안 연가를 내는 것도 어려울진대, 하물며 중장기적으로 휴식을 취하는 일은 아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그 사람 본인이 책임감이 강한 성향이면 더욱더 그렇습니다. 관료조직의 본질적인 경직성도 직원 개개인에 대한 관심을 방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목숨에 비하면 직장에서의 책임감 따위는 한낱 티끌만큼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물론 다 때려치우고 사표를 내라는 말은 아닙니다. 내가 돈을 벌어 먹고 살 방도가 없다면 현실적으로 생계 유지가 불가능해집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당연히 우울증도 더 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들이 있고, 그렇기에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주었으면 합니다. 지난 글 (10화 우울증으로 병가 사용이 가능합니다 (brunch.co.kr))에 썼듯 공무원이라면 연가, 병가, 질병휴직 등의 선택지가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울증에 걸린 후, 비교적 상태가 괜찮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퇴근길에 늦게까지 남아 야근을 하던 직원을 보았습니다. 그 직원은 키보드에 머리를 박은 채 쉬고 있다가 제가 퇴근하는 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나 인사를 하더군요. 저는 피곤해 보인다며 일찍 퇴근하라는 뻔한 인사를 건넨 후 사무실을 나와 건물 현관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왜냐면 조금 전 그 직원이 키보드에 머리를 박은 채 멍하게 있던 모습이, 상태가 안 좋을 때의 저와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망설인 끝에 그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지금 1층으로 내려오시라고. 잠시 시간 좀 내 달라고. 한참 후 내려온 직원을 데리고 근처 카페로 가서 한동안 이야기를 했습니다. 예상대로였습니다. 그 직원은 얼마 전부터 정신의학과에 다니면서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고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저와 비슷한 시점에 증세가 나타났더군요. 저는 상사와 직원 사이가 아니라 같은 질환을 앓고 있는 동료로써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상사로써 지시했습니다. 쉬어도 되니까 당장 연가 신청하고 일단 쉬라고. 그런 후에 할 수 있는 방안들을 찾아보자고.




우울증에 걸린 모든 분들에게 이야기드리고 싶습니다. 


쉬어도 됩니다. 그러니 쉬세요. 

이전 02화 우울증의 치료제에 대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