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곰 Sep 03. 2023

우울증 약 없이 극복?

나는 우울증에 걸린 공무원입니다 32

브런치는 제 글을 읽어주는 분들이 어떤 유입 경로를 통해 찾아오셨는지를 알려 줍니다. 통계 페이지를 보면 어떤 검색어를 통해서 접속했는지도 알 수 있지요. 바로 그곳에서 이 글의 제목을 발견했습니다. '우울증 약 없이 극복'. 왜일까요. 구태여 그런 키워드를 검색해 본 이름 모를 그분은 어째서 굳이 약을 먹지 않고 우울증을 극복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저는 우울증을 극복하는 데 약의 도움을 아주 크게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항상 강조합니다. 우울증 증세가 보이면 병원에 가라고. 그리고 상담을 받은 후 필요하다면 약을 처방받아서 먹으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그게 쉬운 일이 아닐 수도 있겠지요. 


정신건강의학과에 가서 진료를 받는다는 사실 자체에 거리낌이 드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매일 꼬박꼬박 약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 그리고 약물이 자신의 뇌와 정신에 작용한다는 점이 부담스럽거나 두려울 수도 있지요. 실은 저도 간혹 그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제가 복용하는 약이 제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가끔씩 이유 모를 생리적 거부감이 고개를 듭니다. 저라는 인간이, 한낱 약 따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보잘것 없는 존재로 전락한 것 같은 기분이지요.   


약을 먹고 싶지만 몸에 맞지 않아서 부득이하게 못 먹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제 직장 동료는 약을 처방받았지만 부작용이 너무 심해서 몇 차례나 종류를 바꿔 가며 고생해야 했습니다. 구체적인 통계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런 사람들이 의외로 적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병원비와 약값 같은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요. 나아가서는 보험 문제도 있습니다. 우울증 약을 복용하려면 진단명이 나와야 하는데, 그렇게 정신 관련 질환이 기록으로 남으면 보험 가입이 아예 안되거나 혹은 보험료가 크게 오르는 일이 잦다고 합니다. 보험회사 입장에서는 향후 보험료를 지급해야 할 가능성이 높으니 기피하는 거지요. 




하지만 그 모든 사항을 감안하더라도, 저는 역시 우울증 극복을 위해서는 약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의사가 아닙니다. 그러니 제 주장에 의학적 근거 따위는 매우 빈약합니다. 그저 저는 지독한 우울증을 겪어본 경험자로서, 약의 도움 없이 인간의 의지만으로 그 끔찍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뿐입니다. 그건 마치 칼에 찔려 내장이 흘러나온 상처를 빨간약과 대일밴드만으로 해결하려 드는 무모한 도전처럼 느껴집니다. 


물론 몸과 마음이 무척 건강한 사람이라면 이겨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애당초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굳이 별다른 이유 없이 약을 거부할 이유가 있을까요.  


가끔씩 드는 우울증 약에 대한 거부감을 저는 부작용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약이 효과가 있다면 부작용도 있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적어도 제게 있어서는 부작용보다 효능이, 제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도록 막아 주었다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결과가 훨씬 더 크게 다가옵니다. 


약이 몸에 맞지 않아도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약이 있습니다. 의사와 지속적으로 상담하면서 약의 종류와 분량을 조절해 가면 됩니다. 비용 또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대한민국의 건강보험 제도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에도 큰 도움을 줍니다. 제 경우에는 진료비와 약값을 합쳐서 한 달에 대략 4만원 정도가 듭니다. 아주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의료급여가 별도로 제공되니만큼, 일반적인 경우 이 정도는 아주 부담스러운 금액은 아닐 겁니다. 


다만 보험 가입 제한은 확실히 존재하는 불이익입니다. 특히 연령대가 높다면 더 크게 다가오는 부분이지요. 그러나 보험의 존재 이유가 미래의 질병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면, 그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의 명확한 고통을 감내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그건 아무래도 언어도단인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만에 하나 저 검색어를 통해 제 브런치에 들어온 분이 이 글을 보신다면,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약을 드세요, 라고 말입니다. 

이전 07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