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곰 Aug 28. 2023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나는 우울증에 걸린 공무원입니다 31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전부 모인 건 오랜만이었습니다. 원래 아홉이었지만 한 명은 일찍 세상을 떠났고 또다른 한 명은 싸우고 나갔기에 이제는 일곱이 남았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모였던 우리는 밤마다 각자의 집에서 게임을 했고 낮이면 학교에 모여 온종일 게임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십여 년이 넘은 지금, 우리는 사회에 지쳤고 육아에 비틀거리지만, 여전히 모여서 게임 이야기를 합니다. 오래된 친구란 좋은 참 좋은 겁니다.  


친구들이 모였으니 술잔을 기울이기 마련이죠. 저는 우울증에 걸렸다가 지금은 상당히 괜찮아졌다는 이야기를 터놓았습니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까닭을 설명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사십대가 넘어가니 다들 이런저런 근심과 걱정을 한 아름씩 끌어안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정신의학과에 가는 사람이 참 많다는 사실을. 그리고 정신의학과에서 도움을 받은 사람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을. 그러니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용기를 내서 가 봐도 된다는 사실을.  




우리 일곱 명은 저마다 직장은 다를지언정 모두가 월급쟁이입니다. 남의 돈을 받아서 먹고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각자의 조직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는 과정에서 때로는 다른 사람과 부대끼기도 하고 치이기도 합니다. 한 직장에서 십 년이 넘도록 붙어 있는 친구도, 최근 들어 새로운 직장으로 옮겨간 친구도, 야망이 있어 위로 올라가려는 친구도, 가늘더라도 최대한 길게 가는 게 목표인 친구도, 다들 제각기 애쓰고 있더군요. 그런 과정에서 저마다 차이는 있을지언정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하기야 당연한 일입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스트레스 없는 직장이 대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다들 눈가에 피곤함이 잔뜩 쌓여 있었습니다. 늘어난 뱃살은 운동 부족이 큰 원인이겠지만, 동시에 스트레스에서 기인한 음주와 폭식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게임을 해도 이제는 과거처럼 새벽 5시까지 달릴 수가 없습니다. 아이를 재운 후 게임을 하려 마우스를 잡더라도 열두 시도 되기 전에 의자에 앉은 채 머리를 처박고 잠들기 일쑤입니다. 피로에 찌들어 있다 보니 스트레스를 풀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 게 우리네 현실입니다. 




현대인의 우울증은 나날이 늘어가는 추세라고 합니다. 특히 한국인의 우울증 유병율은 무려 36.8%에 달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 이유가 단지 현대인들이 나약해졌기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과거에는 견딜 수 없어서 술을 퍼마시다 알코올 중독으로 직행한 사람들이, 혹은 그저 모든 걸 감내하고 억지로 참으면서 간신히 살아가던 사람들이, 혹은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들이, 이제는 그러는 대신 정신의학과에 가서 치료를 받는 거겠지요. 


저와 친구들의 나이가 마흔을 넘어 사십대 중반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는 대략 십오 년쯤 되겠군요. 그간 꾸준히 누적되어 온 스트레스만 해도 상당할 겁니다. 게다가 이쯤 되면 직장 내에서도 단순한 일꾼이 아니라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되거든요. 심지어 몇몇 대기업은 벌써 퇴사와 노후를 걱정해야 할 시점이기도 합니다. 이래저래 우울증 걸리기 딱 좋은 시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다들 별일 없이 살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종종 만나 수다를 떨고, 게임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술을 마시고 안주를 집어 먹고, 애 키우는 이야기도 하고, 가끔은 심각한 고민도 은근슬쩍 내놓으면서, 그렇게 매년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울증 따위와 인연을 맺는 일이 없도록 말입니다.  


어쨌거나 실로 오랜만에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이전 06화 TCI 기질검사, 예민한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