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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곰 Aug 15. 2023

TCI 기질검사, 예민한 사람

나는 우울증에 걸린 공무원입니다 30

최근에 어쩌다 보니 흔히들 TCI라고 말하는 기질-성격 검사를 받아보게 되었습니다.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더군요. 간략하게 말하자면 사람의 선천적인 ‘기질’과 후천적인 ‘성격’에 대해 일곱 가지 기준으로 측정하는 검사입니다. 기질에는 자극추구, 위험회피, 사회적 민감성, 인내력 네 가지 척도가 있고 성격은 자율성, 연대감, 자기초월 세 가지 척도로 나뉩니다. 


결과지를 받아보니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른 항목은 그렇다 치더라도, 유독 자극추구와 위험회피 성향이 둘 다 극단적으로 높게 나오더라고요. 


자극추구가 높다는 건 뭔가 새로운 경험을 적극적으로 찾는다는 뜻입니다. 아주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한 번도 가 보지 않았던 식당에 가서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메뉴를 주문하는 걸 즐기는 거지요. 놀이공원에서는 모든 놀이기구를 타 봐야 직성이 풀리고, 일을 할 때도 계속 해 와서 익숙해진 업무보다는 새로운 업무를 선호합니다. 사람이 자동차라면 자극추구는 액셀러레이터 같은 역할을 합니다.      


한편 위험회피가 높다는 건 뭔가 위험해질 것 같은 상황을 두려워한다는 뜻입니다. 즉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미리 회피하거나 예방하려 드는 겁니다. 식중독이 걱정되기에 여름에는 회를 멀리하고, 일을 할 때는 최악의 경우를 가정한 후 미리 대비를 해 놓으려 합니다. 불확실함이 존재하는 상황 자체에서 불편함을 느끼지요. 사람이 자동차라면 위험회피는 브레이크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이 두 가지가 모두 극단적으로 높다는 건 일견 모순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앞뒤가 안 맞는 건 아니고, ‘자극적이고 새로운 걸 추구하면서도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비하려 한다’ 정도로 해석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좋게 표현하자면 매사에 꼼꼼하게 심사숙고하는 사람, 나쁘게 말하자면 지나치게 사소한 데까지 신경을 쓰고 미리 걱정하는 예민한 사람이 되어버린다고 합니다. 자동차로 비유하자면 도로가 텅 비어 있을 때는 액셀을 깊숙하게 밟아 스피드를 즐기면서도 앞에 다른 차가 보이면 즉각 브레이크를 밟는 성향인 셈이지요. 


너무나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에 저도 모르게 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예민하다는 단어는 여러 가지 의미로 쓰입니다. 제 경우에는 일을 하면서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는 일이 많지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고,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해결책을 완벽하게 준비해두려 합니다. 사사건건 신경을 쓰고 자주 안절부절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남들보다 정신적으로 쉽게 지치곤 합니다. 그걸 예민한 성격이라고 한다면 저는 확실히 예민한 사람입니다. 


물론 요즘은 의도적으로 그러지 않으려 노력하는 중입니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좀 내려놓고 대충 하려는 거죠. 그러나 쉽지는 않습니다. TCI검사에서도 기질은 '유전자의 영향으로 타고난 선천적인 것'이며 '잘 변하지 않는다'고 설명하더라고요. 원래 타고나기를 그렇다 보니 변하려 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TCI검사는 또 하나의 길을 제시해 줍니다. 바로 후천적인 '성격'이지요. 내면에 있는 기질을 바꿀 수 없다면, 대신 밖으로 드러나는 성격을 바꾸면 된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지금까지 꽤나 많은 성격 변화를 겪어 왔습니다. 특히 우울증 이후에 상당히 많이 변했습니다. 그게 마냥 긍정적일 수만은 없겠지만, 어쨌거나 저도 저 나름대로 노력은 하고 있는 셈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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