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울증에 걸린 공무원입니다 34
직장이란 대체로 스트레스를 대가로 돈을 주는 곳입니다. 그렇기에 스트레스를 푸는 건 중요한 문제죠. 특히나 요즘처럼 정신 건강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점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오히려 몹시 어렵지요. 또 사람들은 대체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자신만의 방식을 가지고 있는데, 그 방식이 서로 맞지 않아 충돌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은 회식 자리를 열고 술을 마시는 걸로 스트레스를 풉니다. 알코올의 힘을 빌려 같은 팀의 직원들과 솔직한 대화를 나누고, 2차로 노래방에 가서 어깨동무를 하고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면서 한 방에 스트레스를 날려버리죠. 그 사람에게 있어 인간 관계란 행복과 즐거움의 원천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MBTI식으로 표현하자면 극단적인 E 성향인 거죠.
반면 어떤 사람은 집에서 쉬는 걸로 스트레스를 풉니다. 집에서 게임을 하든 책을 읽든, 아니면 드라마를 보든 간에 여하튼 혼자 즐기는 취미를 선호합니다. 이들은 대체로 스트레스를 차곡차곡 쌓아두는 타입이고, 해결할 때도 차곡차곡 단계적으로 스트레스를 풀어갑니다. 대인 관계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기가 빨리는' 느낌이 들어서 집으로 가고 싶어합니다. 극단적인 I 성향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문제는 이 두 사람이 같은 조직에서 협업할 때입니다. 일손이 많이 들어가는 특정 프로젝트를 두 사람이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고 가정해 보죠. 그 과정에서 협력이 이루어졌지만, 당연히 충돌하는 일도 있었을 겁니다. 일이란 원래 그런 법이니까 말이죠.
전자는 일이 마무리되었으니만큼 한 잔 하러 가고 싶습니다. 그에게 있어 술자리란 사람이 친해지는 가장 빠르고 강력한 수단입니다. 함께 술잔을 나누고 말을 놓으면서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눈다면 그걸로 지금까지 받았던 스트레스를 죄다 날려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그간 서로 충돌했던 부분도 눈 녹듯 사라질 테지요. 그래서 그는 말합니다.
"주임님! 한 잔 하러 가실까요?"
그런데 후자는 생각이 전혀 다릅니다. 몇 주 동안이나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니 지칠 데로 지쳤습니다. 어서 바삐 집으로 가서 아늑하고 포근한 침대에 몸을 던지고 싶습니다. 야근하느라 한참 동안이나 손대지 못했던 게임도 해야 하고, 사다 놓은 채 펼쳐보지도 못한 책도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쉬고 싶습니다. 그래야만 스트레스를 풀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대답합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먼저 들어갈게요."
전자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굳어 버렸습니다. 자신이 내보인 호의를 단칼에 거절당했다고 느꼈으니까요. 한편 그 모습을 보고 후자도 마음이 상했습니다. 내가 따라갈지 말지는 당연히 나 자신이 결정할 일인데도, 적반하장 식으로 저 사람이 오히려 화를 내는 이유를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하여 두 사람은 서로 기분만 나빠졌습니다.
두 사람 중 누구에게도 잘못은 없습니다. 다만 성향이 다르고, 나아가 스트레스를 푸는 방식이 서로 다를 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각자의 방식이 오히려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어버립니다.
이런 스트레스는 직원 개개인에게 있어서도 매우 큰 문제이지만, 사실 조직 단위에서 더 큰 문제입니다. 조직 구성원들의 스트레스가 관리되지 않으면 어딘가에서 반드시 문제가 생기거든요. 모든 조직에는 반드시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들을 대규모로 모아 놓았으니 문제가 없으면 말이 안 되지요. 그런데 스트레스는 이런 문제의 발생과 진행을 가속화합니다. 때로는 간단한 대화 정도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조차, 스트레스의 영향을 받으면 극단적으로 폭발하기 일쑤입니다. 실제로 그런 장면들을 눈앞에서 목격한 적도 여러 번이고요.
그래서 저는 관리자로서 직원들의 스트레스를 관리해야만 합니다. 그렇기에 때로는 '싫어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식을 합니다. 때로는 '싫어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페에서 일대일 면담 시간을 가집니다. '누군가가 원하는데도 불구하고' 업무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경우가 있고, '누군가가 원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때로는 으싸으싸 앞장서서 추임새를 넣습니다. 직원들의 성향이 저마다 다르고 그걸 일괄적으로 해소할 방안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부서 전체의 스트레스를 줄여야 하는 게 제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을 하면서 - 당연하지만 - 저 또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습니다. 맙소사.
저도 나름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잘 안 되는 경우도 많아요. 또 스트레스가 짧은 기간에 한꺼번에 몰려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더더욱 대처가 어렵지요. 그러다 보니 우울증에 걸리고도 하고, 뭐 그렇습니다. 남들의 스트레스를 풀어내려다 보니 제 스트레스가 쌓이는 격이지요.
그럴지라도 제가 이끄는 부서의 스트레스 관리는 제가 해야 하는 일이기에 저는 할 겁니다. 다만 조금 더 영리한 방법은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저도 살고 부서도 살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