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울증에 걸린 공무원입니다 35
우울증 증세에 술이 안 좋다는 이야기는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애당초 술이라는 게 그런 존재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커피를 자제하라는 건 좀 당황스럽더군요. 대다수 직장인들이 그러하듯 저도 커피 중독에 가깝고, 몇 년 동안이나 하루에 세 잔씩 꼬박꼬박 마셔 왔습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한 잔. 점심 먹고 나서 한 잔. 오후에 일하다가 피곤하면 한 잔.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갑작스레 커피를 끊으라니요.
의사의 설명은 이랬습니다. 카페인은 각성 효과가 있는 물질인데, 그건 곧 몸을 긴장 상태로 만드는 작용이다. 그런데 지금 환자분은 과도한 불안과 긴장 상태에 있어서 안정제를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안정제의 효과를 감소시키는(=길항작용하는) 카페인 섭취는 줄이는 게 좋다.
너무나 명확한 설명이라 일단 머리로는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실천하기 쉬웠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니,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실패했습니다. 커피는 도저히 끊을 수 없더라고요.
상태가 영 좋지 않아서 안정제인 벤조디아제핀을 많이 먹던 시기에는 온종일 잠이 덜 깬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커피라도 마시지 않으면 제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였지요. 그러다 몸이 점차 호전되면서 벤조디아제핀 복용량을 줄이게 되었지만, 좀 완화되긴 했을망정 머리가 멍한 건 여전하더군요. 그런 상태에서 다시 출근을 해서 일을 하려니 도저히 커피를 마시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중에는 그렇다 치고 주말만이라도 끊어 보려 시도했지요. 그러니 이번에는 웬걸, 부작용으로 두통이 오는 겁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서 버티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주말에도 여전히 커피를 입에 달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저 자신과 타협한 결과, 저는 커피를 '줄였습니다.' 하루 석 잔에서 두 잔으로 말입니다. 아침에 한 잔, 점심 때 한 잔, 그리고 이후로는 가급적 먹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럭저럭 버틸 만하더라고요. 물론 아예 안 먹을 수 있다면야 그보다 좋을 수는 없겠습니다. 하지만 그게 맘대로 안 되니 말입니다.
사실 이 글도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테이블에는 커피가 아닌 에이드가 놓여 있습니다. 오늘치 커피는 다 마셨으니까요. 물론 제 맘대로 정한 기준이고 어떤 의학적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석 잔 보다는 두 잔이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자고 일어나 내일 아침이 되면, 하품을 늘어지게 하면서 출근해서는 라떼 한 잔을 손에 들고 사무실에 들어가겠지요. 그렇게 또다시 하루치 커피와 하루치 일이 시작될 겁니다.
언젠가는 하루에 커피 한 잔만으로 줄일 수 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당분간은 어려울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