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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만원짜리 벌룬투어는 안할래

사진 한 장 짜리 튀르키예 여행 (둘째날)

by 글곰

미리 예약해 두었던 벌룬투어 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원래 17.5만원으로 예약했는데 가격이 올랐다면서 네 배 가까운 60만원을 부른 것이다. 바로 취소해달라고 했다. 뭐랄까, 기분이 팍 상해버린 탓이었다. 그 돈을 쓰지 못할 거야 없었지만 그 돈을 내고 나면 즐거움보다 기분나쁨이 더 클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덕분에 아침 늦도록 늦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새벽부터 울려대는 카톡의 진동이 아니었더라면 계획대로였으리라. 자기 전에 알람을 죄다 꺼놔야겠다는 교훈을 얻으며 잠에서 깨어나 아침식사를 먹으러 갔다. 그 때문에, 그 덕분에, 저 사진과 같은 장관을 구경할 수 있었다. 심지어 공짜로.


밥을 먹은 후 그린투어를 하러 갔다. 버스 좌석 앞뒤 간격이 너무나 좁았던 탓에 나는 몸을 옆으로 돌린 채 삐뚜름하게 앉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걸 제외하면 다 좋았다. 데린쿠유 지하도시와 셀리메 수도원을 구석구석 살펴보면서 과거 그곳에 거주했던 이들의 삶을 상상해보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으흘랄라 계곡의 트래킹 코스를 따라 걸으면서 주변 풍경을 즐기는 것도 좋았다. 중간에 들른 카페에서 수십 마리의 거위와 오리를 키우고 있었던 건 꽤나 당황스러운 광경이었지만.


아침 아홉 시 오십 분에 시작한 투어는 저녁 여섯 시가 훌쩍 넘어서야 끝났다.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자마자 나는 어제 갔었던 와인 식당으로 향했다. 전날의 기억이 너무나 좋았던 때문이었다.


좋은 선택이었다. 오늘 주문한 메뉴들도 어제 먹은 것만큼이나 맛있었고, 온종일 돌아다니며 피곤해진 몸에 와인이 스며드는 건 무척이나 매혹적인 경험이었다. 아마도 내일, 데니즐리행 야간버스를 타기 전에도 나는 이곳에서 저녁을 먹으리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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