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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곰 Sep 17. 2019

후한시대의 인재 채용 방식

삼국지 토막지식 06


  한나라의 인재 채용 제도를 이른바 향거리선제(鄕擧里選制)라고 합니다. 전한의 무제 시절에 이 제도가 정립되었는데 간단하게 말하자면 추천제입니다. 누군가가 똘똘하고 괜찮아 보인다 싶으면 일단 그 사람에게 벼슬을 내려 달라고 중앙정부에 추천하고, 그렇게 벼슬살이를 시작한 후 진짜 일을 잘하면 차츰 승진시켜 주는 거죠. 


  그럼 추천을 누가 하느냐? 지방관이 합니다. 주(州)와 군/국(郡/國)의 수령들이 매년 한 명씩 인재를 중앙에 추천하는 거죠. 추천 기준은 무엇이냐? 대체로 유교적 규범이었습니다. 재능이 뛰어나면 수재(秀才), 어질고 착하면 현량(賢良), 행동거지가 바르면 방정(方正), 효성스럽고 청렴하면 효렴(孝廉), 바른말을 잘하면 직언(直言) 같은 식이었지요. 하지만 너무 번잡하여 후한시대로 가면서 대략 수재와 효렴 정도로 정리가 됩니다. (수재는 후한시대의 시작과 함께 명칭이 무재(茂才)로 바뀌었습니다. 광무제의 이름이 유수劉秀였기에 피휘를 해야만 했거든요.)


  물론 그 한계는 뚜렷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누가 훌륭한 인재인지 수령이 알 수가 없었죠. 당시 태수 한 명이 관할하는 지역의 인구는 현대 한국사회의 시/군 수준이었고 넓이는 심지어 도 단위에 육박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이 사는 곳의 시장이 그 동네 고등학교 3학년 2반 17번 친구의 능력을 얼마나 알겠습니까? 수령은 외부에서 굴러들어 온 돌이라 그 지역 사정에는 영 어두운데 말입니다. 더군다나 시험 점수라는 게 존재하지도 않을뿐더러 수령이 그 인재와 만나 대화라도 한두 마디 나누려면 수레를 타고 몇 날 며칠을 가야 하는 세상이죠. 


  게다가 그 채용 기준이 워낙 애매했고 실무와는 별 상관도 없었어요. 효성이 지극한 거랑 일 잘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재주가 뛰어나다고는 하는데 그걸 누가 구체적으로 확인해 봤겠습니까? 결국은 원래 벼슬하던 사람의 아들이나 손자가 추천되기 일쑤였습니다. 그렇게 벼슬은 특정 가문에 대대손손 계승되다시피 했고 그런 식으로 여러 가문들이 세력을 키워 이른바 호족(豪族)이 되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빽이 최고라는 식이지요.  


  그런 상황에서 천하가 난세로 치달으며 군웅들이 저마다 자신의 세력을 구축하니, 향거리선제는 껍데기만 남았을 뿐 거의 붕괴되다시피 합니다. 수령이 중앙정부에 인물을 추천하는 시대는 끝난 거지요. 대신 개인 간의 사사로운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등용되는 경우가 부쩍 늘어납니다. 조조에게 수많은 인재들을 추천해 주었던 순욱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되겠네요. 혹은 춘추전국시대에 유세하며 천하를 주유하던 이들처럼 스스로를 홍보하며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때쯤 유행했던 것이 바로 ‘인물평’입니다. 즉 사람을 잘 평가하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그게 곧 그 사람의 평판이 되는 식이죠. 뭔가 순환논리처럼 느껴집니다만 당시에는 이게 상당히 중요했습니다. 세상이 혼란스럽다 보니 중앙정부든 아니면 야심가들이든 간에 모두들 유능한 인재를 갈구하고 있었지요. 하지만 막상 누가 잘난 사람인지 알아보려 하니 그럴 수단이 전무한 수준이었거든요. 기존의 인재 채용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가 구체적으로 말해 주는 겁니다. ‘이 사람은 이런 재능이 있어요!’라고요. 요즘으로 치면 헤드헌터인 거죠. 그러니 인재를 채용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얼마나 편했겠습니까. 물론 개나 소나 이런 인물평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었고, 천하에서도 이름난 학자나 유명 인사에게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허소입니다. 흔히 자(字)를 따서 허자장이라고 알려져 있는 사람이지요. 


  그런 시대적 배경 하에서 기존의 인재 채용 제도와 새로운 제도를 동시에 통과하며 입신양명한 인물이 바로 조조입니다. 허소에게 인물평을 받아내어 이름을 알렸고, 스무 살에 효렴으로 천거되어 벼슬을 시작했습니다. 지위 높은 환관이었던 할아버지의 힘(집안빨)이 한몫했으리라는 정황까지 포함한다면 그야말로 당시 인재 발탁 방법이 조조의 한 몸에 죄다 모여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이러한 어지러운 인재 채용 방식을 재정비한 제도가 바로 구품관인법(九品官人法)입니다. 한나라가 멸망하고 위나라가 건국된 이후에 도입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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