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곰과장 이야기 20
충주맨 김선태 팀장의 사임과 관련하여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말들이 인터넷을 떠돌고 있습니다. 당혹스러운 건, 아무리 봐도 공무원이 아닌 게 명확한 사람들이 마치 공무원인 척하면서 아는 체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먼저 한 가지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세상에 시기와 질투가 없는 조직 따윈 존재하지 않습니다. 소위 잘나가는 사람을 질시하는 건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으레 나보다 일은 못 하면서도 상사에게 잘 비비거나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인 사람이 승진한다면서 투덜거리곤 합니다. 개뿔, 그렇게 말하는 사람치고 진짜 일 잘하는 사람은 못 봤습니다. 물론 어딘가에서는 그런 경우도 일어나겠지요. 하지만 대체로 승진이 빠른 사람들은 대부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충주맨은 남들보다 빠르게 승진할 이유가 차고 넘치는 사람입니다. 대한민국 역사를 통틀어서도 그보다 더 강렬한 대중적 인지도를 가진 공무원은 드물 겁니다. 일반직 공무원으로서 유례없는 성과를 냈습니다. 이런 사람을 승진시키지 않으면 그거야말로 이상한 일이겠지요. 그리고 실제로도 충주맨은 공직생활 9년 만에 6급 팀장을 달았습니다. 빠르죠. 그리고 그게 정상입니다. 빨라야죠.
그런데 앞서 말했다시피 어느 조직에서건 승진이 빠른 사람, 남들보다 젊은 나이에 높은 자리에 올라간 사람은 질시를 받습니다. 충주맨도 그랬을 겁니다. 본인 스스로 밝힌 일화들도 있거니와 세상이 원래 그렇습니다. 일 못하는 사람들일수록 남을 헐뜯는 데 능숙한 법이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시장이 바뀌게 되었으니 그런 시기와 질투를 막아줄 방파제가 없어진 셈이 아니겠냐고, 그러니까 나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누군가는 그리 생각할 법도 합니다. 저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공무원 조직만의 특징이 있습니다. 대다수 공무원 조직의 최종의사결정권자는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들어오는 선출직 공무원이라는 사실입니다. 조직의 규모가 큰 중앙부처보다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지방자치단체에서 근무할 때, 이 점이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선거란 기본적으로 전쟁과 흡사합니다. 승자가 모든 걸 독식합니다. 하지만 기한이 있죠. 임기 4년입니다. 과거의 전쟁처럼 패자의 목을 쳐서 후환을 없애는 건 불가능합니다. 비록 지금은 내가 이겼지만 4년 후에 또다시 그 상대와, 혹은 그보다 더 경쟁력이 높은 상대와 피할 수 없는 전쟁을 치러야만 합니다.
그렇기에 선거를 통해 새로 뽑힌 승자는 그 시점부터 차기 전쟁의 준비에 돌입합니다. 이른바 조직 정비에 나서죠. 이는 반드시 숙청을 동반하는 과정입니다. 대체로 기획, 홍보, 총무, 자치 등 전임자와 밀접할 수밖에 없는 주요 부서의 과장이나 팀장급 중간관리자들이 그 대상이 되곤 합니다. ‘전임자 시절에 잘나간 사람’이라는 딱지를 달고 말입니다. 대체로 소속 정당까지 바뀐 경우에는 대규모로 벌어지고, 정당이 그대로인 경우에도 어느 정도로는 꼭 일어나는 일입니다.
문제는, 어느 조직이나 그렇듯, 결국 일 잘하는 사람은 얼마 안 된다는 점입니다. 이른바 주요 부서의 중간관리자들 중 윗사람의 비위를 잘 맞추거나 구린 일을 잘 처리해 주어서 그 자리에 올라간 사람이 없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단지 일을 잘한다는 이유로 발탁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수한 자원이 많고 조직 규모가 커서 대체인력을 찾기 쉬운 중앙부처와는 달리, 인적 자원이 한정된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대체자를 찾기도 어렵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새로운 지자체장도 사람을 써 보면 알게 됩니다. 누가 일을 잘하고 누가 못하는지. 그래서 단체장이 바뀌면 주요부서의 중간관리자들이 이른바 한직으로 우르르 좌천되었다가, 일이 년가량 지난 후에 다시 주요 부서로 복귀하는 웃지 못할 경우가 흔합니다.
더군다나 충주맨은요? 일개 기초지자체 팀장이 아니라 전국에 이름이 알려진 인물입니다. 새로운 시장이 이 사람을 쓰지 않는다는 건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유선이 자기는 제갈량을 쓰지 않겠다고 뻗대는 꼴이나 다름없죠. 소속 정당이 어디든 간에 마찬가지입니다. 선출직 공무원의 지상 명제는 다음 선거에서의 승리입니다. 그리고 충주맨은 그 승리에 가장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인물이죠. 그런데 이런 사람을 쓰지 않는다고요? 진심으로 묻고 싶습니다. 아니 왜요?
만일 제가 충주맨의 입장이라면, 오히려 ‘후임자가 나를 쓸 테고 그러면서 더 많은 것을 요구할 것 같아서’ 사표를 내지 않을까 합니다. 그냥 망상의 나래를 펼쳐 보죠. 새로 온 시장이 이제 유튜브에 자신을 주 1회 이상 등장시키라고 한다면? 자신과 친한 정치인을 출연시키라고 압력을 넣는다면? 자신의 업적을 노골적으로 홍보하라고 지시한다면? 본인을 밀어주는 지역 유지의 개인사업을 언급하라고 한다면? 뜬금없이 정치 유튜버를 데려와서 합방시킨다면? 가능성은 충분하죠. 실제로 지금도 여러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니까요.
물론 저는 충주맨이 아니니까 그 속마음이야 알 길이 없고, 딱히 적극적으로 짐작해 보고 싶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대로 조직에 남아 있는다면 어떠한 형태로든 스트레스가 극심할 것 같긴 합니다.
어쨌거나 충주맨은 사표를 냈고, 이제 본인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가 공직사회에 남긴 족적을 매우 긍정적으로 봅니다. 일을 잘하면 승진으로 보답받아야 한다는 공직사회의 원리를 가장 보기 좋게 드러낸 사례니까요. 간혹 착각하는 분들이 계시지만 실상 연공서열에 따른 승진 시스템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바로 인사권자 자신입니다. 연공서열에는 인사권자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적어서 자신의 권한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도 있고 해서 아마도 충주맨 이후 공무원 조직의 인사권자들은 조금이나마 더 실적주의로 기울게 될 겁니다.
아마도 충주맨은 후배 공무원들, 특히 일 잘하고 재주 있는 공무원들에게는 긍정적인 모범사례이자 본받고 싶은 존재로 남을 겁니다. 물론 본받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겠습니다만, 그런 사례가 아예 없는 것과 실존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죠. 여하튼 충주맨도 그렇고 지금 전국 각지에서 일하고 있는 여러 유능한 공무원들에게도 두루두루 좋은 일이 많으면 합니다. 어쨌든 새해니까 말입니다.